동호회에 관하여
법원에는 여러 동호회가 있다. 등산, 합창, 축구, 골프, 마라톤, 공연관람 등, 각 법원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동호회마다 회원 수에 따라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꽤 동호회가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법원의 인사는 6개월에 한 번 씩 (매년 1월 1일과 7월 1일) 이루어지고 평균적으로 1년 마다 직원들은 새로운 보직으로 이동한다. 부서 이동이 잦은 편이지만 서너 명이 독립적으로 팀으로 일하기 때문에 같은 과에 근무하면서도 연관 업무가 없거나 자리배치가 멀면 서로 일 년에 몇 마디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동호회는 나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서나 직역의 사람들을 공과 사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계단참의 역할을 한다.
나는 지금 노르딕 동호회와 기타 동호회에 가입되어 있다. 비공식 동호회로는 특히 노르딕 동호회는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절에 가입했는데 나이나 직급을 떠나 운동으로 사람을 사귈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구독하는 월간지 샘터에 동호회를 소개하는 글을 투고를 한 적도 있다.
* 특집 운동으로 되찾은 몸 건강, 마음 건강 (월간 샘터 2020년 3월호, 통권 601호)
- 커피 한 잔 대신 노르딕워킹 23쪽
운동과 담을 쌓고 살던 내가 생활체육인이 된 계기는 2년 전에 걸린 A형 독감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살배기 딸, 아내와 격리된 채 병원에 누워 있으려니 후회가 밀려왔다. 평소에 산책 한 번 하지 않으면서 건강을 자신하던 나를 반성하며 앞으로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나자 내가 일하는 인천지방법원의 노르딕워킹 동호회에 흥미가 생겼다. 북유럽 사람들이 타는 노르딕스키를 변형한 운동이라는 점이 이색적인 데다가 점심시간에 스키 스틱을 양손에 쥐고 힘차게 걷는 동료들이 활기차고 즐거워 보였다. 곧바로 동호회에 가입한 나는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대신 야외로 나갔다.
동호회 활동은 일주일에 이틀은 실내 스트레칭, 하루는 근처 공원을 30분간 걷는 스케줄이었다.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점심시간의 달콤한 휴식을 포기하려니 마음속에 온갖 유혹이 생겼다. 운동하러 나서기 전마다 ‘오늘 하루 쉰다고 건강이 나빠지겠어?’라고 속삭이는 내 자신과 힘든 싸움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고 운동한 지 두달쯤 지나자 변화가 나타났다.
한파가 닥쳐도 독감은커녕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지니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져 민원처리량이 많은 부서로 전보되어서도 수월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원고와 피고, 채권자와 채무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히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내 숨통을 틔어주는 것은 노르딕워킹이다.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걷는 순간만큼은 북유럽의 설원을 달리는 듯 가슴이 탁 트여 스트레스 따위는 훨훨 날아가버린다.
(박동민, 회사 동호회 ‘노르딕워King'활동을 활력소 삼아 스트레스 없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올 여름에 태어날 둘째와의 만남이 벌써부터 무척 기다려집니다.)
법원 동호회의 최대 장점은 자율성이다. 구성원은 직역별로 판사, 일반직 직원, 보안관리대원, 속기사, 관리직렬, 행정직렬 등으로 구성되는데 남자보다는 여자 분들이 동호회 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편이다. 판사들과는 아무래도 직역이 다르다보니 좀 서먹서먹하고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편인데, 나머지 직렬 들과는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지내는 편이다. 회비도 적고(대개 월 1만원 이하) 출석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절에 대부분의 동호회 활동이 위축, 축소되어 아직까지 모임이 그 이전보다 활성화된 것 같지는 않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도 많아서 대면하는 활동이 부담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변화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얼굴을 마주보고 몸이 닿고 숨을 나누는 활동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인간의 협력적 유전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니까. 내가 가진 온기는 남에게 건네 주어도 적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