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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민 Jan 22. 2024

법원에서 생긴 일 5

스몰토크에 관하여 

출근해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차 한 잔을 하러 정수기가 있는 휴게실에 갔다. 정수기에서 나오는 온수가 미지근해서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는 시간, 삼삼오오 직원들이 모여 잠시 담소를 나눈다. 아침은 드셨나, 어디가 아프냐, 피곤해 보인다, 날씨가 추워졌다, 사실 별다른 내용은 없다. 그래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온기가 담긴 말을 건네는 과정에서 위안을 받는다. 다정과 다감은 물질이 아니라 자세에 가깝다. 내가 손에 쥔 것이 없어 당장 당신에게 건네 줄 것은 없지만 조그마한 무엇이라도 쥐어 주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는 그 소소한 움직임에 다정다감이 묻어나는 것이다.


스몰토크(small talk), 사전적으로 '일상적이고 소소한 대화, 대화를 시작하거나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형식적인 잡담' 그런데 이게 의외로 어렵다.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그나마 화제를 찾거나 말을 건네는 게 수월하다. 그러나 얼굴만 아는 아파트 같은 동 주민과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나이나 직급이 한참 차이가 나는 사람과 밥을 먹거나 길을 같이 걸어가야 할 때, 어린이집 하원 때 잘 모르는 아이와 같은 반 부모를 만났을 때 같은 상황에서 선뜻 말이 잘 안 나온다. 설령 한 두 마디 형식적인 인사말을 하더라도 그 다음 말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나라나 집단의 문화나 개인의 성격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몰 토크를 잘 못한다고 한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 상대방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부터가 난간이다. 외국 사람들은 보통은 상대의 이름을 묻고 불리길 원하는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호칭을 정하는 것부터 어렵다. 상대방의 나이와 사회적 위치 등 호구 조사가 끝난 뒤에야 상대를 특정할 수 있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선생님, 이모님, 삼촌, 아버님, 어머님 같은 보편적인 성격의 통칭이 등장하는 것 같다. 관계에 있어서서열이 매겨지는 순간 상위자와 하위자간에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다.

예를 들어 나는 한 달에 한 두 번씩 시 창작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그 모임은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이 스펙트럼이 넓다. 우리는 서로 동민님, 정은님처럼 이름에 '님'만 붙이고 서로 존대한다. 물론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끼리는 편하게 반말하지만.


다음으로 말을 아끼는 문화가 있다. 눈치 문화가 있다는 말인데,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앞선다. 자칫 그 말로 인해 내가 불이익을 입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입술 앞까지 도착한 말의 앞길을 막는다. 


스몰토크는 말로 하는 악수다. 나는 너에게 악의가 없고 너를 해칠 마음이 없다는 메시지를 몇 마디 말 속에 담아 공기 중으로 전송한다. 돌아오는 말 속에 나도 그래, 그럼 우린 서로 적은 아니네, 안심한다. 이것은 진화적으로 낯선 존재나 상황을 마주쳤을 때처럼 두려움에 대처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사회적 본능이다. 마음대로 잘 안되지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말을 건네겠다. 부디 당신이 웃어주길(^^). 스몰토크는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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