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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기네스북에 오를 기이한 일들

(29화)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어!

전편에서 말한 부산교육대학 합격은 모든 것이 연합하여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반 동안 직장에 다니다가 5개월 공부하여 부산교육대학에 합격하였다. 나의 일생에서 두 번째 분기점이었다. 첫째는 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서 부산교육대학교에 합격했을까? 도움이 된 몇 가지 사항을 기록한다.  


1. 예비고사 삼수생은 감점했다.

1979년, 우리나라에는 재수생이 많아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력고사를 세 번 이상 치르는 학생은 최종점수에서 3점 깎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 만에 치르는 예비고사였으나, 두 번째로 응시하므로 삼수가 아니라서 감점되지 않았다. 이 제도는 전무후무하여 다음 해에는 없어졌다. 군사정권 시절이라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이 흔했으나, 과하게 생각되었던지, 한 번만에 폐지되었다. 


2. 체력검사가 상대평가였다. 

1978년에는 예비고사에 포함된 체력검사(체력장)의 점수분포가 20점 만점에 16~20점이었으나, 내가 응시한 해에는 11~20점으로 바뀌었다. 나는 17점을 받아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17점이 이 전해까지는 중간 아래의 점수였으나, 1979년의 17점은 아래에 6개 점수대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3. 달리기와 턱걸이에서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다. 

체력장의 100미터 달리기에서 13초 6을 받았는데 이는 생애 최고 기록이었다. 두 명이 달렸는데, 함께 달린 학생을 제쳤다. 뒤에서 센 바람이 밀어주는 것처럼 날아가는 기분으로 달렸다. 평소 연습할 때의 최고 기록은 14초 4였다. 나는 평소에 달리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의 달리기에서는 3등까지 상품을 주었는데 나는 받아본 적이 없다. 


턱걸이를 담당하는 심판은 엄격하였다. 응시자가 배치기를 하면 엄격하게 통제했다. 턱걸이는 19개가 만점이었는데 17개를 했다. 이 역시 인생 최고 기록이었다. 14개까지는 무난하게 했다. 그 뒤에는 힘이 없어서 약 30초 동안 철봉만 잡고 매달려 있었다. 턱걸이를 더 많이 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다. 


체력장을 준비하면서 평소에 악력기로 손가락의 힘을 길렀다. 그래서 철봉을 오래 잡고 있는 것은 가능했다. 철봉에 매달려 20초 정도 그대로 있으니까 심판이 답답하였는지 하나 더 해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속으로 ‘배치기도 인정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배치기로 하나를 했다. 심판은 “열다섯”이라고 큰 소리로 인정해 주었다. 그 소리에 용기를 얻어 잠시 후 하나를 더하고 또 쉬었다가 하나를 더하였다. 이후에는 손가락에 힘이 빠져 미끄러져 내려왔다. 


4. 외사촌이 공부법을 조언했다. 

내가 대학입시 공부하던 해에 외사촌 여동생도 대입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나에게 어떻게 공부하는지 물어보았다.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다고 답했다. 여동생은 성적을 올리려면 자신의 학습 진도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학원 진도대로 공부하면서 예습과 복습을 하라고 제언하였다. 그렇게 3개의 진도를 가지고 공부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부터 과목마다 예습, 복습, 학원 진도에 따라 3회씩 공부하였다. 이 조언은 입시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대학과 대학원 공부할 때도 적용하여 효과를 보았다. 


5. 영어시험은 시간이 부족했다.

예비고사의 영어 시험은 50문제를 50분 동안 푸는 형식이었다. 처음 몇 문제를 푸는 동안 시간을 측정해 보니 1분당 한 문제씩 풀었다. 그러나 뒤쪽으로 갈수록 문항이 길어지고 답을 찾기 어려워서 30문제 정도 풀었을 때 남은 시간이 1분쯤 되었다. 답안지를 빈칸으로 남긴 채 제출할 수가 없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은 문제의 답지에 표시하여 제출했다. 


6. 생물 선생님은 족집게였다. 

예비고사의 과학 과목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하나만 쳤다. 생물을 선택했다. 내가 다니던 학원에서는 야간반 학생들에게 과학 과목을 개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간반의 생물 선생님이 시험일 이전 한 달 동안 매일 한 시간씩 특강을 해 주었다. 당시 생물시험은 15문제가 출제되었는데, 그분은 강좌를 다 마치면서 수강생들에게 "내 수업을 잘 들었으면 13문제는 맞출 것이다”라고 장담하였다. 실제로 그분이 가르친 내용 중에서 13문제가 출제되었다. 그것은 모두 맞추고, 한 문제는 추측으로 정답을 알아냈다. 그래서 15문제 가운데 14문제를 맞혔다. 


7. 내신성적이 유리했다.

나는 내 점수대의 학생들에 비하여 내신 성적이 유리하였을 것이다. 시골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성적증명서를 받기 위하여 부산에서 진도에 가서 교무과장 선생님을 뵈었다. 그분은 성적증명서를 발급해 주면서 나의 예비고사 점수를 물어보셨다. 말씀드렸더니,  “그 점수로 교육대학을 가지 말고 전남대학교의 법학대학에 진학하라”라고 권장하였다. 당시에 문과 학생들 중에서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법대를 가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일들이 내가 대학에 입학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전편에서 대학에 입학한 성적을 공개하였다. 내 인생 최고의 기적에 해당한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 https://namu.wiki/w/예비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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