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수 할배 Aug 03. 2024

영어에 웃고 배구로 뜨고!

(30화) 오르간은 롤러코스터

무언가를 배우고, 때맞추어 익히면 역시 기쁘지 않겠느냐? 

공자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입학생 440명 중의 입학생 중에 나의 위치는 앞에서 설명했다. 당시에 교육대학은 2년제였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1학년 첫 학기 때는 편하게 지내고 싶어 하였으므로 1학년 1학기에 조금만 충실히 수업해도 성적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하여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우리 반에는 부산교대에 수석으로 들어온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수석이었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그는 입학식 때 선서를 했고, 반에서 그런 소문도 들렸다. 


내가 그 학생에게 이런 부탁을 하였다. “너는 우리 학교를 수석으로 입학을 했고 요즈음 대학가에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책에서 소개된 스터디 그룹이 유행한다. 그러니까 어떤 학생들이 너에게 스터디그룹을 하자고 제안할 거다. 그러면 그 그룹에 나를 포함시켜라.” 입학한 후 첫 학기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겠지만 수석 입학생이 마음씨가 고와서 나의 말에 동의했다. 


며칠 뒤에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수석입학생은, 여학생 두 명이 자기에게 와서 이렇게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자기들 두 명과 수석, 그리고 우리 반의 꽃미남 남학생 S, 이렇게 네 명이 함께 공부하자". 수석학생 T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서 여학생들에게, “우리는 한 명 더 있다.”라고 응답했단다. 여학생들이 급우 한 명을 더 데려 오기로 약속하였으며, 남학생 셋 여학생 셋 이렇게 여섯 명이 그룹으로 공부하였다. 수석학생은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그룹멤버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였다. "시험칠 때 커닝을 하지 않는 학생이 커닝하는 학생들보다 성적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자." 멤버들은 모두 동의하였다.  


T는 서울의 유명 대학교 법학과를 다니다 교사가 되고 싶은 희망을 품고 우리 학교에서 입학했다. 원래 공부를 잘했겠지만 특히 영어를 잘했다. 그 친구가 학교의 영어교재를 번역하면 나는 받아 적어두었다가 통째로 외워서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영어 시험은 모두 번역하는 문제로 출제되었다. 기분 좋게 A+학점을 받았다. 


재미로 들려주는 이야긴데, 영어 담당 교수는 나에게, 나중에 총장이 되신 진쾌현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다. 진 교수님이 영어 교수에게 우리 학교에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을 소개해달라고 했었던 거 같다. 진 교수는 나에게 영어 관련 자료를 주면서 해석을 부탁했다. 그 자료를 보니 학술 자료라서 그런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내가 그 영어를 해석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더니 진 교수님이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무용 점수도 잘 받았다. 1학년 1학기 때 무용 수업을 진행한 여 교수님은 보통 수업에서는 우리 반 남학생들끼리 수업을 하였다. 그러나 왈츠와 같이 남녀가 파트너가 되어 추는 사교춤을 배울 때는 여학생반과 합반하여 진행하였다. 왈츠는 나에게 익숙한 댄스였다. 지난 1년간 교회 청년들의 무도회에 참여한 덕분에 춤의 다양한 스텝과 자세를 알고 있었다. 


무용 수업에서의 왈츠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두 줄로 원을 만들어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추었다. 여학생 줄에서 춤을 추던 교수님이 어느 순간 나의 파트너로 되어 함께 춤을 추었다. 교수님은 내가 매우 부드럽게 리드한다고 칭찬을 하셨다. 기말 시험에 왈츠의 포지션에 대하여 설명하라는 문제가 큰 비중으로 출제되었다. 나는 왈츠의 모든 자세와 흐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림을 곁들여서 제출하였다. 당연히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1학년 1학기에는 전교에서 5등 안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터디 그룹, 수석 친구 T, 교회에서 배운 Social Dance 덕분이었다.


교육대학교는 초등교사를 양성하므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을 배웠다. 국어와 수학은 물론이고 예체능도 배운다. 그래서 재미있는 과목과 힘든 과목이 섞였다. 가장 힘들었던 과목은 음악 오르간 수업이었다. 교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오르간을 쳐 본 기억이 없다. 오르간은 두 학기에 걸쳐서 배웠다. 첫 학기는 그런대로 진도를 따라갔다. 두 손을 사용하여 섬집아기와 애국가도 연주할 수 있었다. 그 실력을 지금까지 유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학기의 오르간 수업은 어려웠다. 우선 재정적 여유가 없어 교재를 구입하지 못했다. 방학 동안에 오르간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게다가고 수업내용의 수준도 높았다. 체르니 100을 배우는 학생이 피아노 소나타 곡으로 시험 치는 거 같았다.  이런 악재들이 겹쳐서 내 생애 최저 학점을 받았다. 대학교부터 박사과정까지에서 유일한 D 학점! 


체육 수업은 나의 육체적인 한계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놀이와 구기 운동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기능은 의욕에 반비례하여 높지 않았다. 그런데 체육시간에 육상을 배우다 보니 매트 위에서 구르기와 기계체조의 기본기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서 자신감이 생겼다. 앞 구르기에서 배운 대로 몸이 접혔다가 벌떡 일어서졌다. 신기했다. 


체육수업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기술은 배구였다. 교수님은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배구를 자주 하기 때문에 배워두면 쓸모가 있을 거라고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독려했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키가 크지 않아 중, 고 시절에 배구를 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배구를 배우면서 수비와 공격을 해 보니 교수님이 제시한 기준을 모두 통과할 정도로 기대 이상의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스파이크를 배우면서 A퀵과 B퀵을 할 수 있어 스스로 놀랐다. 초등교사로 근무하던 7년 동안 우리 학교 배구팀의 공격수로 활약했다. 20대라서 가능했었다. 그때는 그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네스북에 오를 기이한 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