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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i Nov 23. 2023

세기의 매치:오펜하이머 vs 바비

영화 <오펜하이머> 감상문

러닝타임 3시간에 달하는 <오펜하이머>가 <바비>를 꺾은 유일한 국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의 위업의 결과로서 존재하는 핵의 위협을 코앞에 둔 국가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옆 동네들에서는 상영조차 못하는 <오펜하이머>는 놀란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궤를 보인다. 우선 배급사부터 워너 브라더스가 아닌 유니버셜 픽쳐스이며, 가상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을 주제로 꼽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간극들을 통해 옅볼 수 있는 것은 아카데미 수상을 향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지독한 갈증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 수 많은 실존 인물들 중 하필 오펜하이머였어야 했을까?


신화의 시대부터 민족 단위 국가가 대세인 요즘에 이르기까지 한 사회의 역사, 전통, 그리고 영웅은 시대와 체제를 막론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선별되어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되 전파된다. 악마의 편집은 사실 인류의 유구한 핵심역량이었으며, 그러한 점에서 현대는 신화의 시대에서 조금도 진보하지 않았다. 역사는 체제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통은 생활 양식을 규정하기 위해, 영웅은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기 위해 여전히 이야기로써 전파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의 약한 고리로 지목되어온 부분 역시 바로 역사/전통/영웅이다. 원탑 패권국의 위치에 있을때는 캡틴아메리카, 슈퍼맨 등 가상의 인물만으로도 충분했던 “위대한 나라”는 2008년을 기점으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2008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베이징 올림픽의 해였다. 이 때를 기점으로 미국 내부에서는 민주주의 체제 대비 월등히 빠른 의사결정 속도를 보이는 중국-싱가폴의 권위주의 체제를 경계해왔다. 이는 민주적 질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일종의 혼란, 내지 "최소한 호율성 측면에서는 미국의 질서가 월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을 포괄한다. 그리고 현 시점의 미-중 패권 싸움은 이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점차 미래에 대해 말하는 영화는 줄어들고 과거를 되집는 텍스트들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보다 위협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국내에서 민족적 성취로 해석된 <미나리>의 아케데미 수상 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미나리>는 그 동안 하나로 뭉쳐질 수 없었던 미국의 민족/인종적 다원성을 “이민자”라는 정체성으로 훌륭하게 통합해냄으로써 아카데미의 주목을 이끌어낸다. 이민자 가정의 세대 간 갈등과 화합에 대한 영화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쓰>, 서로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하나의 사회에 통합되는 과정을 그려낸 <엘리멘탈>, 이주민들의 방랑자로서의 정체성을 훌륭한 영상미와 함께 전달한 <노마드랜드> 등 최근 제작된 소위 말하는 볼만한 영화는 모두 “미국인 정의하기” 내지 “미국적인 것” 찾기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에 걸맞는 훌륭한 영웅을 발굴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미국인 정체성을 지닌 이민자 2세가 2차 세계대전 승전에 결정적 역할 수행. 막 이런저런 고민도 하는게 진짜 아이언맨 실사판 같음. 근데 심지어 유대계 백인, 남성임.” 이 얼마나 아카데미가 환장할 인물인가... 원래 신화적 영웅들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탄생하기에, 마녀사냥에 의해 난자당해 한차례 죽어버린 “오펜하이머”는 새로운 패권 전쟁을 시작하는 미국 입장에서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시체이며, 아카데미 역시 이에 화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미국 입장이야 그렇겠지만 우리 인류는 아직 핵의 위협을 조금도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오펜하이머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하기에 아직은 너무나도 이르다. 과학과 정치를 떼고 봐야한다? 정말 순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상온초전도체“ 소동 당시 열성적으로 퍼졌던 수많은 밈들이 무얼 말하던가? 과학은 언제나 정치적이었고, 권력 지향적이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우리 영화계의 부진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일본 사회의 아픔을 봉합해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를 통해 미국 사회에 훌륭한 영웅상을 제시한다. 이처럼 영화, 그리고 극장 문화의 가치는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개개인의 영상 플랫폼 프로필 화면을 초월해 사회 전체에 화두를 던지고, 공동체의 아픔을 공유/치유하며, 결과적으로 사회를 통합해내는 힘에 존재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게 아픔을 봉합하고, 또 어떠한 지향점이 제시되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전성기라 감히 일컬을 수 있던 시절에, 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성장을 향한 광신도적 추종”과 “약탈로 실현되는 계층상승 욕망”을 유머러스하게 꼬집어냄으로써 그 부작용으로 탄생한 우리 사회의 기형적 단면을 드러냈던 우리 영화의 재기를 염원하는 바 이다. 아 근데 티켓값은 진짜 쫌 노답이긴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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