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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i Jun 29. 2024

<재벌집 막내아들> 욕하지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여러 의미에서 참 대단했다. 일단 론칭 후 불과 몇 회 만에 평소 집에서도 얼굴보기 힘들던 우리 가족 구성원들을 TV 앞으로 소환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 만으로 레전드다. 예전처럼 편성이 막강한 힘을 가지던 때면 모를까, 요즘은 지상파 레귤러 예능조차 어떤 요일에 방영하는지조차 점점 잊고 살게 되는 판국이다. 더욱이 본방이 끝날 때 까지 몇 시간만 더 기다리면 내 방 침대에서 1.5배속에 자막까지 곁들여 볼 수 있는데, 그 몇 시간 조차도 기다릴 수 없어 엔데믹 라이프를 뒤로하고 빠르게 귀가해 TV를 켜게 만들다니... 


이 드라마의 가장 대단한 점은 이와 같은 영향력을 나 뿐만 아닌 우리 가족 모두에게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별 일이나 싶을 수도 있지만, 막강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조차 동생의 벽을 뚫지 못했고, <더글로리>는 아빠의 벽을, <무빙>은 엄마의 벽을 뚫지 못했다. 이 처럼 각자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우리 가족 4명 모두를 과몰입하게 한 드라마는 <재벌집 막내아들>이 처음이었고, 최근 동생이 다시 독립해 나갔으니 아마 다신 없을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파격 그 자체였던 금.토.일 주 3회 편성도 격주마다 킹받는 홀수화 엔딩을 선사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화제성 붐업에 꽤나 효과적이었다. JTBC로서는 이 작품은 된다는 믿음으로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건데, 넷플릭스가 여러 에피소드들을 일시 공개해 화제성을 일시에 폭발시키는 것과는 또 다르게 이 경우엔 주말의 시작과 끝 모두를 해당 드라마와 함께하며 지속적으로 화제되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주 2회 편성 대비 당장은 조금 손해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 승부수가 제대로 먹혀들어간 덕분에 무너져내려가던 금토 드라마 슬롯을 토일 드라마로 성공적으로 전환해내며 <대행사>, <닥터 차정숙>, <킹더랜드> 등을 연이어 터뜨리지 않았나.


    이처럼 <재벌집 막내아들>은 누가보더라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가슴 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경험했던 과거 이벤트들을 주인공과 함께 훑어본다는 점은 얼핏 <응답하라> 시리즈와 유사해 보이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1988년도와 같은 특정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려 노스텔직하게 소구되었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현재 우리 사회의 큰 틀이 마련된 산업화와 민주화 직후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요컨데 <응답하라>가 "그땐 그랬지..."라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 때 샀다면..."의 심리, 즉 우리 사회 저변에 존재하는 거대한 계층 이동 욕망을 자극한다. 본디 주변부에 위치했던 주인공이, 기적으로 제 2의 기회를 얻어 복수를 위해 순양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점차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며, 종국에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엿한 후계자가 되어가는 진도준의 성장기를 지켜보며 우리 모두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뼈빠지게 노력해서 드디어 성공의 문턱에 선 순간 난데없는 사고로 진도준은 죽어버리고, 윤현우의 인생으로 돌아오는 결말은 충격을 넘어 어딘가 불합리해 보였다. 진도준이 애기 때부터 순진한 척 연기해가며 조금씩 조금씩 애써 쌓아온 부와 명예가 일시에 0이 되어버린 이 엄청난 결말을 기쁘게 받아들일 시청자는 많지 않았고, '결말 빼면 완벽했던 드라마'라는 평가와 함께 K-드라마 역대 최악의 엔딩 자리를 두고 <파리의 연인> 아시발꿈 엔딩과 경쟁하게 되었다. 드라마 작가도 우리 모두가 원하던 결말을 익히 알고있었을 바, 그럼에도 이악물고 이런 엔딩을 보여준 것에 대한 분노는 이내 작가들 간의 위계 의식이 드러난 사건 아니냐는 해석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다시말해 드라마 작가가 웹소설 작가보다 우월하다 여겨 웹소설 작품은 마음대로 난도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당시엔 나도 이러한 주장이 꽤나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다시 <재벌집 막내아들>을 정주행하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아직 회귀가 일어나기 전 윤현우는 순양가 관련 기본 정보를 읊으면서, 막내아들에 대한 정보는 비어있다고 언급하는데, 회귀 이후 다시 윤현우로 돌아온 세상에는 그 빈 칸이 진도준의 활약상으로 채워져 있다. 즉, 드라마판의 작가는 회귀 이전의 세계와 회귀 이후의 세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윤현우가 사고를 당한 시점에 진도준으로 회귀해 살아가며 축적한 기억들은 윤현우의 몸으론 접근 불가했을 종류의 것인데, 이는 또 다시 윤현우에게로 이식되어 윤현우를 구원해낸다. 물론 진도준이 모든 것을 독식했다면 도파민은 터졌겠지만, 윤현우의 인생은 억울한 죽음에서 영영 구원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는 윤현우-진도준-윤현우로 이어지는 일종의 이어달리기이다. 웹소설과 달리 '대중'을 타겟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진도준이 모든 성취를 독식하는 엔딩은, 자칫 "이번 생은 가망이 없어요"로 읽힐 수 있어 경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며, 물론 이를 설명하는 과정이 다소 미흡했다고 보여지지만, 그런 의미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은 종편 채널인 JTBC 드라마로서 손색없는 엔딩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작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아야할 지점은 따로 있었다. 이를테면, 원작에서 윤현우는 40대 기혼 남성였으므로, 회귀 이후의 로멘스 역시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윤현우로서 40년을 살고, 회귀해 20년을 더 산, 도합 60대에 가까운 진도준옹이 20대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그런 설정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최근 방영된 tvN <졸업>에서는 스승과 학생 간의 사랑조차 남녀간에 로맨스로 환원시켜 제시하는 마당에, 60세 도준옹의 구애가 대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원작에선 진도준이 순양을 인수할 당시쯤엔 이미 순양 이상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또한 드라마로 옮겨오며 소위 '너프'를 먹게 된다. 한국 대중이 상상할 수 있는 우리 사회 계층 꼭대기는 '재벌'이 한계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최근 <선재업고 튀어>가 유래없는 성공을 거두며 'OTT 플랫폼은 제작을 거절한 스토리'라는 사실이 이 드라마의 성공을 부각하는 요소로 지목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OTT 오리지널과 TV 드라마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잘못된 견해이며, 그 자체로 이야기들 간의 위계를 나누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OTT 오리지널은 시리즈의 지속적인 인기보다는 화제성을 일시에 폭발시켜, 한번의 결제를 유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빈지워칭을 유도할 수 있도록 일시에 다회의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아직 광고 수익에 의존하고 있는 TV 드라마의 경우, 채널을 돌리다 잡힌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나 극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몇 주간 끌고갈 수 있는 요소,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광고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캐스팅이다. 그런 관점에서 <선재업고 튀어>와 같은 로코 장르는 여전히 OTT 플랫폼들에게 관심작이 아닐 수 밖에 없고, 설사 OTT 오리지널로 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만큼의 인기를 구가하기란 여러웠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들은 제시된 위치에서 각자만의 가치를 가지고 선택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웹 소설, 웹툰, 애니메이션에 더해 TV 드라마와 OTT 오리지널 시리즈, 영화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둘러쌓여 살고있다. 각 플랫폼은 각자만의 타켓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스토리 전개 내지 콘텐츠 릴리즈 전략 역시 천차만별이다. 물론 한 가지 형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야기가 다른 형식으로 재제작되는 일 또한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웹 소설로서의 <재벌집 막내아들>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각각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듯, 모든 이야기 가치는 제시된 위치에서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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