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장마와 추운 겨울만 있었던 것 같은 나의 이십대
어렸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꾀병을 부려서 학원에 한 달 한 두 번씩은 빠진 게 지금까지 무언갈 오랫동안 지긋이 할 수 없는 것이 말이다. 두 번의 조현병 발병 그리고 대기업 입사와 퇴사, 다이나믹하면서 힘들었던 시간들. 뭔가 재밌지도 관심 가지도 않지만 카페 가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맛집에 가는 것은 좋다. 내가 평범한 걸까?
처음 병이 발병했을 때는 6개월의 캐나다 어학연수를 끝내고 열정적으로 대학교를 다닐 때였다. 조별과제들과 각종 공모전 준비 그리고 재수강하는 과목들로 한창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사고회로에 고장이 났다.
갑작스럽고 과다한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발병원인은 알 수 없다.
나는 수없이 후회했다. 뭔가를 한꺼번에 많이 할 생각을 하지 말고 꾸준하게 천천히 할걸. 빠른 취업을 하기 위해서 한 일들이 되려 탈이 났다.
갑자기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나와 관련된 일이라느니, 남자 선배가 나를 좋아한다느니,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교 친구들이 사실 모든 연관된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이 아직까지 나를 낯부끄럽게 만든다. 게다가 집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면서 이 일들은 단지 3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상해진 나를 보며 엄마는 당장 월요일에 대학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시켰다. 내 기억에 한 삼일정도는 약에 취해있다가 울기만을 반복했다. 물을 뜨러 가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병원에서 하는 각종 요법 시간에 울기만 했다. 그저 같이 참여하는 환자분들이 안쓰럽게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보드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고 색칠공부도 하면서 병동 생활에 적응을 해나갔고 변비 때문에 고생한 기억도 있다.
한창 벚꽃 필 무렵밖에 한창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의사 선생님께 외출을 조르던 그때 내 나이는 스물두살이었다.
퇴원을 하고도 약에 취해 있던 6개월 간 얼굴은 많이 부었고 심심했다. 정말 심심병이 도져서 아버지를 많이 괴롭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재밌고 싶은 그 마음. 딱 그런 마음이었다.
대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일상생활은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엄마가 데리러 오고 데리러 가는 대학생활을 6개월 정도 하다 보니 다시 산책도 좋아하고 자격증 준비를 하는 취준생이 되어 있었다.
1년에 기사 자격증 2개와 토익, 토익스피킹 준비 그리고 남자친구도 사귀면서 어느 이십 대처럼 활기 넘치는 시간을 보내다가 처음 이력서를 쓴 대기업에 덜컥 붙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직속상사분께 지독한 괴롭힘을 당한 끝에 3일을 잠도 못 자고 다 나았다는 착각으로 약을 먹지 않았더니 다시 재발을 하게 된 것이다.
난 정말 내가 다 나은 줄 알았다. 만성 변비도 나을 만큼 몸 상태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상태는 아니었나 보다. 정말 싸이 흠뻑쇼를 가는 차 안에서도 울고 새벽에 울고 회사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결국 휴직 신청을 해서 6개월간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한 두 달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많고 그 일들은 내가 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게 회사. 그걸 잊고 있었다.
처음엔 허탈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토익과 운동, 대학교 2학년 어학연수와 병의 시작 대학교 3학년 산업기사와 토익, 대학교 4학년 기사 2개와 토익.
뭐가 바쁘다고 급하게 해 왔던 것일까. 이제 난 쉬기로 했다. 여행도 다니고, 집에서 심심함에 절어 있기도 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갔을 땐 부서 이동을 원했고 그동안 공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곳의 사람들은 너무 인자하신 분들이었지만 전문지식이 없던 터라 적응하기 힘들었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하기 전 3개월 전부터 너무 가기 싫었다. 하루 종일 주변 사람들한테 가기 싫다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 같다는 말만 해댈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뭔가에 이끌려 팀장님께 말씀드렸고, 그렇게 힘든 입사에 비해 퇴사는 순식간에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