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뒷 Boo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어쏭 Nov 28. 2023

다시는 암컷을 무시하지 마라

<암컷들>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 루시 쿡

우리가 몰랐던 암컷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관습과 제도, 미디어 콘텐츠
의 현재와 미래를 건너
섬북동 리더십까지 이야기하게 된 건에 대하여


권위 있는 수컷이 무리를 이끌고, 암컷은 고분고분하게 뒤따른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수컷은 번식을 위해 암컷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 진화의 주도권을 잡으며 발전해 왔고, 수동적이고 조신한 암컷은 수컷의 선택을 받아 그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에 그친다. 진화생물학계에서 ‘다윈 가라사대’로 이어져온 암컷에 대한 고정관념은 지금까지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란 이분법적 편견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어쩌면 망상에 가까운 그 뿌리 깊은 오해와 착각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진짜 암컷들의 세계를 만났다.



1. <암컷들>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평을 나눠봅시다.


진  김혜리 기자의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됐다. 방송을 정말 재미있게 들어서 섬북동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또 정말 어렵게 읽었다. 특히 생물학에 관련된 용어들이 많아 낯선데다 발제에 대한 부담으로 더 읽기 어려웠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가?ㅎㅎㅎ 그래도 요즘처럼 성에 대한 담론이 풍부하고, 젠더 갈등과 이슈가 많은 시점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여전히 내가 가진 편견들, 그리고 편견을 넘어서고 싶은 마음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다. 

예  책을 읽으면서 최근 봤던 다큐가 생각났다. 한 지질학자가 엄청 크고 특이한 동굴을 발견했는데, 너무 균일하게 깎여 있어서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추적해 보니 약 1억 년 전쯤에(정확하진 않지만) 나무늘보가 손톱으로 긁어서 만들어진 지질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나무늘보는 작고 느리지만 과거에는 매머드만큼 컸기 때문에 그런 동굴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처럼 생태계에 내가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됐다. 아직 책을 읽는 중인데, 성 고정관념과 차별을 다룬 부분에 대한 남자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광  생물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다른 개념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상당한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그동안 과학이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었음을 알려주는 과학 도서로서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주제에 대한 사례가 너무 많아 초반엔 흥미로웠지만,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지루하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임팩트 있는 사례를 간추린 요약본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정  뒤로 갈수록 편집도 이 작가의 수다를 제어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ㅎㅎㅎ 하지만 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매 장이 충격적이고 너무 희한한 동물이 많이 나와서 유튜브로 찾아보면서 읽었다. 그리고 다윈부터 이어져온 과학계의 의도적인 암컷 배제를 보면서 열이 받기도 했다. 결국 새끼는 암컷이 낳는데 그럼 암컷이 기본 성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정신 나간 것(과학자들)들이 있나!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 책이었다. 

옥  나 역시 초반에는 용어도 낯설고 진도가 안 나가서 힘들었다. 책을 다 못 읽을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갈수록 흥미진진해졌다. 전에 읽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처럼 최근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지, 고정관념을 다루는 여러 자기 책을 읽었는데, 우리 모두 그런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주로 철학이 앞서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를 해왔다면 과학이나 사회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늘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인간의 사고와 관념이 작용하는 법이고, 이제야 세상이 그동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 새로운 파도에 몸을 맡긴 기분으로 책을 읽었고, 현시대에 적절한 화두를 던지고 있어 좋았다. 저자가 다큐 감독이라서 그런지 현장감 있게, 디테일한 재미도 놓치지 않고 글을 써서 더 재미있었다.

영  사실 책을 아직 하루밖에 못 읽었는데, 빨리 읽기보다 자분자분 음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충격적인 내용도 많은데 X, Y 염색체가 진리인 줄 알았고 Z, W는 있는 줄도 몰랐다. 교과서에 담긴 지식이 너무 작고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지난주에 동물원에 가서 하이에나를 봤는데 정말 크더라. 알고 보니 그 하이에나가 암컷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암컷 하이에나의 생식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봤을 텐데 아쉬웠다.ㅎㅎㅎ 원앙 암컷과 수컷을 보면서도 미모 빈부격차가 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암컷이 빈약한 게 아니라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고 진화한 결과였던 것이다. <암컷들>을 다 읽고 동물원에 한 번 더 가야겠다. 책 표지와 카피까지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2. 11장에 걸쳐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모두 놀라운 이야기의 연속이었는데,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진  1장 ‘암컷이란 무엇인가’를 보면 동물을 암컷, 수컷 둘로만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고, 성이란 여성에서 남성까지 하나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변화하고 결정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 암컷에서 물 밖으로 나오면 수컷이 되는데, 에스트로겐 성분에 과다 노출되면 다시 암컷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제초제에 그 성분이 많아 제초제를 많이 뿌린 지역은 개구리는 전부 암컷으로 변할 수도 있다니 정말 신기하더라. 생태계는 당연히 암컷과 수컷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상식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관습적이고 다양성을 무시한 전제인지 알게 됐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7장 암컷들의 살벌한 싸움 이야기. 그렇게 귀여운 미어캣이 인간 다음으로 가장 잔인한 동물이고, 무리에서 암컷 대장만이 임신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암컷에게 번식 가능성이 있다면 그게 자기 새끼나 손녀라도 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며 암컷도 수컷 못지않게 치열하며 경쟁하는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  암컷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10장이 이르면 무성생식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계속 새롭고 충격적인 내용의 연속이었는데, 이제 더 놀랄 이야기는 없겠지 싶은 순간에 급기야 수컷은 필요 없고, 암컷들끼리도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ㅎㅎㅎ 아니, 얘기가 이렇게까지 간다고?! 10장이 가장 충격적이었고, ‘그래, 나중에는 수컷도 필요 없는 시대가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  나는 수컷들도 젖이 나온다는 내용이 정말 놀라웠다. 모유수유가 정말 엄청난 고통이거든. 새끼는 내가(암컷) 낳고, 모유수유는 네가(수컷) 해라. 그게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면 남자들한테 위임해주고 싶다.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ㅎㅎㅎ 2차 세계대전 이후 갑자기 영양상태가 좋아진 남성에게 실제로 젖이 나왔다는 사례를 보고 인간에게도 가능한 일이라니 놀라웠다.

예  새끼를 잡아먹는 수컷에 관한 이야기에서 호르몬을 조작하면 수컷도 모성본능을 일으켜 암컷처럼 새끼를 돌보게 된다는 내용이 재미있었다. 인공수정처럼 결혼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술은 동물계에서 가능했기 때문에 이후에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미래에는 여자 혼자 임신하는 것을 넘어 호르몬 조작으로 출산에 남자를 이용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이 암암리에 비싸게 팔리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

옥  나는 실생활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임신과 호르몬에 대한 부분. ‘섬북동’에서 호르몬에 대한 책도 다뤘었는데 대부분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 책에선 좀 더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게 됐다. 산후우울증의 경우도 편견을 버리면 약물치료도 못할 일이 아닌데, 그런 사회적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면 더 좋은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은 상상력이 부족하다. 특히 정부나 기관에서 규정을 만드는 사람들은 더더욱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먼저 나설 수 있는 분야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획기적인 상상력으로 어떤 세계를 구현하면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회가 더 발전하는 케이스들이 있다. 하지만 최근엔 문화예술 콘텐츠마저 비슷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연 자체에 서프라이즈한 이야기가 넘치는데! 자연과 동물의 세계에서는 당연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금기시하고 외면했던 이야기를 참고하고, 열린 마음으로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좀 더 참신하고, 충격적인,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광  글을 쓰는 작가들의 경우 역량 문제도 있지만 시장의 다양성 문제도 있다. 장르만해도 우리나라는 소비되는 장르의 범위가 좁다. 시장이 형성된 장르도 많지 않고 SF같은 장르도 여전히 마이너다. 그나마도 SF에서 AI가 화제라고 하면 그와 관련된 주제만 주로 소비된다. 작가들이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산업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영  한국은 산업집약적이고 돈이 되는 스토리에 몰리는 경향 탓에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여기(상해) 와서 지내보니 ‘틱톡’ 같은 콘텐츠를 보면 듣도 보도 못한 게 정말 많다. 한국 시장은 눈에 보이는 것 자체가 적다. 한국이 좋은 것 3가지만 보인다면 여기는 좋은 것부터 안 좋은 것까지 10가지가 있다. 비록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더라도 일단 종류가 많다. 그게 차이점인 것 같다. 있는 데 관심이 적은 것과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보니 한국이 작다. 얼마나 앞서가고 트렌디한가의 차원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종류의 다양성이 있는지 그 부분이 놀랍더라.

옥  언니 말을 듣고 보니 이 책을 한 줄로 말하면 ‘문제는 다양성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이 점점 단조롭고 획일적으로 흘러가면서 인간은 결국 위기에 봉착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있는데, 핵심은 다양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  이 책을 발제하기로 정했을 때, 앞으로 문화예술 콘텐츠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ㅎㅎㅎ <암컷들>에 워낙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흥미로운 사례가 많은 덕분인 것 같다. 

광  이 책은 우리가 생물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들을 다 뒤집는다. X염색체와 Y염색체로 남녀가 나뉘고 암컷과 수컷이 구분된다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기존 이분법적이고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우리에게 자리 잡은 고정관념을 뒤집어주는 부분들이 좋았다. 최근 알게 된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는(인간은) 가장 먼저 도착한 정자가 수정되어 태어난,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태어난 존재라는 믿음이 있지 않나. 그런데 과학적으로 첫 번째 정자는 무조건 부딪혀서 죽고, 둘에서 네 번째 정자가 수정된다고 하더라. 한마디로 첫 번째를 피한 운 좋은 정자가 태어난 것뿐이다. 자기계발서에서도 많이 인용되고, 때론 정치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는 그 이야기도 고정관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에서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선이 좋았다. 교육이 우리를 이분법적인 틀 안에 가둬버리면 우리는 뭘 알고 모르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3. 암컷에 대한 수많은 연구 사례를 통해 인간 사회에 뿌리 박힌 성 고정관념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가진 또는 각자 경험한 성차별이나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시다.


진  오래된 일이긴 한데 직장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여직원 몇 명이 있었다. 선임을 중심으로 친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일도 그들끼리 하려고 하고, 결속력이 강해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기 쉽지 않았다. 결국 그들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남직원들 사이에서 그들이 ‘여자라서 독립적이지 못하고, 편 가르기를 한다’고 얘기하더라. 근데 그때는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보니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성별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성향일 뿐이었다. 요즘은 남성적이다, 여성적이다 같은 표현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만 엄마랑 통화할 때 아빠 뒷담을 하게 되면 여전히 ‘남자들은 왜 그럴까? 남자라서 그래’라는 말을 하게 되지만.ㅎㅎㅎ

예  이런 일은 여자가 해야지, 이건 남자가 해줘야지 같은 표현은 주로 남녀의 신체적인 특성과 관련 있는 경우라서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차별에 대해 생각나는 두 가지는 담배와 면접이다. 10년 전만 해도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상사들이 여자가 무슨 담배를 피우냐고 말하곤 했다. 지금은 그런 시선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리고 면접에서 늘 여자라는 성이 문제가 됐다. 미혼이면 아직 결혼을 안 해서 문제, 기혼이면 임신과 출산이 문제였다. 임신을 했다고 모든 여자가 일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개인이 삶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뿐인데. 게다가 능력이 동등하거나 심지어 여자가 더 나은 자격을 갖췄어도 여자의 연봉이 남자보다 적은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인 뒷받침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사회의 인식이 개선되고 기업 차원에서 지원되어야 하는 문제인데, 복지를 지원한다 해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의 압박도 여전히 존재한다.

영  나는 인식이나 상황을 받쳐줄 수 있는 언어부터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에게 여성스럽다고 표현하는데 그 말이 아니면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인식을 반영하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어울리는 다른 말을 찾고 싶어도 말이 부족하다. 남자답다, 여성스럽다라는 그 표현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정  청순하다고 말하면 되지. 남자들한테 많이 쓴다.ㅎㅎㅎ

진  특히 아이돌 덕후들은 으뜸이에게 표현의 한계가 없다. 성별과 상관없이 다양한 표현을 한다.

옥  K-POP 문화나 한국 아이돌을 처음 본 외국인들은 그들이 게이 아니냐며 놀란다고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는데 K-POP이 앞장서고 있는 게 아닐까.ㅎㅎㅎ 그들을 향한 팬들의 표현도 젠더의 경계가 없고, 그들의 헤어나 메이크업 등 스타일 면에서도 기존의 관습을 깨부수고 있는 것 같다.

정  그런 분위기를 대중화시킨 부류가 팝 씬의 팬덤이기도 하다. 그 흐름이 계속 퍼져나가고 있고, 과거에 주로 남성을 위한 표현이었던 ‘멋있다’는 말도 요즘은 여자들에게 흔하게 쓰니까.

영  여성스럽다는 말이 언젠가는 없어질까?

옥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표현을 쓰는 세대와 아닌 세대로 나누어질 수도 있겠다.

광  대중문화보다 학문에서 그런 변화가 더디다. 오히려 과학 용어부터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정  내가 요즘 쓰고 있는 웹툰의 주인공이 여자 경찰이고, 멘토 역할을 하는 형사가 있는데 이름은 강유진, 남자로 설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림을 보니 여자 형사로 나왔더라. PD한테 따졌더니 그제야 강유진이 남자였다는 걸 기억하더라. 하지만 그동안 등장한 단역이 대부분 남자였고, 주인공인 여자 경찰에게 멘토가 되는 여자 형사가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PD의 말에 내가 설득됐다.ㅎㅎㅎ 결국 여자 형사로 바뀌었는데, 그때 세대차이를 느꼈다. 요즘 20대들에겐 경찰이 여자 상사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위에 여자 상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세대차이를 경험했고,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깨달았다.



4. '6장 성모마리아는 없다 : 상상을 초월하는 어미들'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던 모성애의 반전과 이면을 볼 수 있는데요, 모성애에 대한 평소의 생각, 또는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이야기 나눠봅시다.


진  6장을 보면 뉴런의 자극에 따라 모성본능도 조절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새끼를 돌보게 하는 ‘갈라닌 뉴런’과 영아살해 충동을 일으키는 ‘우로코르틴 뉴런’은 암수 모두 존재하고, 수컷도 갈라닌을 자극하면 암컷처럼 새끼를 돌보는 성향이 강해지지만 같은 수컷의 우로코르틴을 자극하면 새끼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모성본능은 암컷 고유의 본성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뉴런의 자극으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암수 모두가 가진 특성이었던 것이다. 자연에서 모성본능이란 새끼를 향한 어미의 무족건적인 희생이 아니라 최대한 많이 번식하고, 자손을 멀리 퍼트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약한 새끼는 죽이기도 하고, 어미 스스로 위험을 느끼면 임신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환경에 따라 최선의,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옛날에 집이 가난해 아이를 입양 보낸 부모의 이야기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최선의 선택 아니었을까? 또 산후우울증을 겪으며 아이를 버거워하는 엄마의 모습도 모성본능의 신화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광  남성 호르몬, 여성 호르몬 같은 개념처럼 모성본능도 고정관념을 만드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양육애, 양육본능이라는 말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6장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모든 생명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타고난 본성도 있겠지만, 새끼를 죽이거나 지키거나 그것은 처한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최근 출생률이 떨어지는 것 역시 환경의 영향이 아닐까. 현대 사회가 본인의 생존에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도 낳지 않는 것이다. 사회가 어떻게 더 좋은,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영  그러니까 모성본능이라는 것이 결국 생존본능과 관련되는 것이다. 나도 아이를 안고 있다가 베란다 밖으로 떨어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제때 못 자고, 못 먹고, 못 싸고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니 내가 죽을 것 같았고, 그로 인한 폭력성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도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드니까 자기 후손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위협받으면 양육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양육자의 생존권, 기본권이 갖춰지면 이후에 양육은 어느 정도 의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감당할 수 있다. 

옥  그동안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아이를 버리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남성 감독들의 전형적인 시선에 화가 나곤 했다. 왜 여성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얄팍하게 다루는지, 관객들이 무엇에 공감하길 바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 역시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화만 냈었는데, 상황에 따라서 엄마가 아이를 버리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했었다. 물론 남성 감독들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버리는 여성 캐릭터를 편든다기보다 나 역시 편견이 있었다는 점을 반성하게 됐다.

예  나는 영화 <브로커>에서 아이유가 연기한 캐릭터가 떠올랐다. 아이를 팔기 위해 가격을 흥정하고, 좀 더 좋은 집으로 보내야 한다고 조건을 따지는 모습에서 경제적인 욕심과 엄마로서의 모성본능이 모두 느껴졌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엄마와 아이 모두의 생존이 걸린 일이고, 그런 면에서 엄마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갈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어미든 새끼든 생태계는 강한 존재만 살아남고, 그것이 곧 진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연이 진화하고 발전하듯 인간 사회도 제도적인 부분에서 발전이 필요하다. 여자만 힘든 육아가 아니라 양육본능이라는 말처럼 남녀, 사회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5. 가부장적 프레임을 벗어나 ‘보노보’나 ‘범고래 여족장’의 사례처럼 ‘자매애’라는 힘이 바탕이 되는 리더십을 경험해 본 적 있나요? 리더십에 대한 각자의 의견과 경험을 나눠봅시다.


진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요즘 회사 경영진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성과가 좋지 않아 직원들 모두 걱정이 많은데, 위기 상황일수록 리더가 조직을 이끌어가는 방향에 따라 구성원들이 많은 영향을 받지 않나. 오직 매출 올리기에만 혈안이고 직원들 정서는 안중에도 없는 윗선의 태도에 새삼 분노하고 있는데, 보노보 사회의 자매애나 범고래 여족장을 중심으로 한 유대와 결속력 이야기를 보며 그런 리더십이 조직에 필요하다고 느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성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더 궁금하기도 했고.

영  경험이 많아야 거기서 얻은 지혜로 힘과 포용력도 생길 텐데, 여성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부족하고, 경험치가 적으면 리더 위치에 올라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배우기 어렵다. 시어머니 자리에 있을 때와 회사 리더 자리에 있는 것은 다르지 않나. 하지만 시어머니에겐 나름대로 살림을 이끌어가는 지혜가 있다. 어떤 경험이 쌓이느냐에 따라 리더십에도 차이가 있는데,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여자들은 사회적 리더 자리에 오르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옥  나는 리더십 문제도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고, 리더 자체가 신자유주의에 젖어 애초에 포용력 있는 리더십은 갖추지 못한 것이다. 주변에 많은 여성 리더들이 있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딱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영  공공연하게 얘기하지 않나. 매출이 곧 인격이라고.

진  회사를 20년 넘게 꾸려온 사람이라면 할머니 범고래처럼 오랜 세월 쌓아온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그들만의 헤리티지를 조직 구성원들에게 전수해 주는 분위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당장 눈앞의 이익(매출)만 가지고 일희일비하며 사람을 평가한다. 위기 상황에서 직원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는커녕 모두 위기감에 휩쓸려 동요하게 만드는 그들의 방식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영  아마 그들도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만나기는 처음일 것이다. 해녀의 리더십이 생각나는데, 물길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시장이나 산업군에서는 노하우가 쌓일 여유가 있고, 그것을 전수함에 따라 힘이 생기고 권력 또는 리더십을 갖게 되는데, 변화의 속도가 빠르니 익숙해지지 않고, 사실상 리더나 팀원이나 처지는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월급을 줘야 하는 입장에서 칼날은 리더의 목에 더 가깝겠지. 그래서 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 것 아닐까.

옥  우로코르틴 뉴런이 생각난다. 회사도 지금은 위기상황이라 직원들을 죽이려는 뉴런이 자극받고 있는 게 아닐까.ㅎㅎㅎ

정  범고래의 폐경 이야기도 그렇고 인간하고 비슷한 면이 많은데, 그 부분에서 나는 직장이나 사회적인 리더십보다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나는 모계는 외가로부터 내려온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외가의 형제자매가 8명이고 그중 7명이 여자다. 자매들끼리 우애도 돈독하고 외할머니가 우리에게 잘해주신 덕분에 어려서부터 자매애가 무엇인지 많이 경험하며 자랐다. 출산율 저하 문제도 그런 모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가족이 해체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출산과 양육은 엄마아빠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가족이 해체되면서 모든 일은 엄마아빠 둘만의 몫이 됐고, 그중 한 사람은 밖에서 돈까지 벌어야 하니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대가족으로 돌아가서 거기 의지한다? 그것도 해답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나도 할머니 범고래처럼 될 날이 올 텐데 나는 출산과 육아 경험도 없으니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옥  그러고 보니 섬북동이 범고래 무리와 비슷한 것 같다. 언니가 범고래 여족장처럼 우리를 이끌고 있지 않나. 언니를 따라 우리는 더 성장해가고 있고. 언니가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이다.

진  출산과 육아는 몰라도 언니가 우리 중 책은 가장 많이 읽지 않았을까? 앞으로 언니를 할머니 범고래로 불러야 할 것 같다.ㅎㅎㅎ 아마 내가 아직도 회사에 애정이 남아있어 이런 고민을 하는 건가 싶다. 그래도 섬북동에서 내가 기대하는 리더십을 조금은 경험할 수 있어 회사 생활도 견디는 것 같고. 그런데 좋은 리더를 가진 이상적인 회사들이 인터넷을 보면 있긴 있던데…

정  내 생각에 그런 회사는 인터넷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아.ㅎㅎㅎ

예  인터넷에 존재하는 좋은 회사도 그 회사의 직원들은 실제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ㅎㅎㅎ

진  더 화가 나는 점은 함께 일하는 실무진이나 선임들은 그들 나름의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도 경영진 자리로 올라가면 똑같이 변할까?

영  그럴 수 있지. 아니면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할 거야. 경영진들도 독하게 하고 싶어서 그런다기보다 그 자리에 가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옥  아니야. 그렇게 하려고 작정하고 그러는 거야.ㅎㅎㅎ

광  자본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정과 함께 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서 자매애가 바탕이 되는 리더십을 경험하고 있다.

정  왜냐하면 그 모임도 거의 다 여자고, 회장도 대부분 여자가 했거든.ㅎㅎㅎ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놀라운 발견과 암컷에 관한 충격적인 사례들로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고 생각의 범위가 넓어졌듯, 우리 이야기도 예측하지 못한 곳까지 흘러갔다. 그만큼 <암컷들>에 담긴 이야기는 폭넓고 다채로웠다. 지워지거나 왜곡된 ‘암컷’의 진짜 모습과 ‘그녀들’이 일군 자연의 혁명을 통해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노련한 여족장이 이끄는 범고래 무리와도 닮은 섬북동 안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섬북동에서 만큼은 그 어떤 이분법적인 잣대 없이, 각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노력하고, 서로 지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게 우리는 무지개 색으로 빛나고 있다.



<암컷들>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저 / 조은영 역 / 웅진지식하우스

발제일: 2023/11/04 토요일 10:00 ZOOM모임

참석자: 광, 영, 예, 옥, 정, 진 총 6명

매거진의 이전글 ALL WAYS 응원해, ALWAYS 당신 곁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