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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May 29. 2024

아무거나와 괜찮다. 1

내 마음의 휴지통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습관처럼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오늘 뭐 먹을래?”

“아무거나.”


“오늘 뭐 할까?”

“아무 데나.”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아무거나, 둘 다 좋아.”


그 첫 번째가 ‘아무거나’이다.

주로 원하는 것이 없을 때나 고르기 힘들 때, 다 상관 없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때는 정말 다 좋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 별로라는 말인지 나 자신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눈치채고 네가 알아서 잘 골라줘’라는 또 다른 표현 같다.


언제부터 이 말을 주로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하였다.

나의 생각을 분명히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의견이 다르면 충돌할 수 있으니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괜찮으면 그냥 따라주자라는 마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불필요한 오지랖과 쓸데없는 배려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다른 이의 마음마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일까.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아무거나’라는 말을 배려처럼 사용하면서 점점 습관이 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어도 먼저 ‘아무거나’라는 말을 내뱉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다시 물어봐주겠지 기대하거나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했다.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 내가 ‘아무거나’를 말하면 상대방은 정답을 맞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하지 못한 걸까? 거절당하는 것이 싫은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기 마음에 책임지기 싫고 상대방이 결정해 주길 바라는 

스스로가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선택을 남에게 미루는 책임감 없는 못된 버릇이었다.


내가 ‘아무거나’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단순했다.

어느 날 내가 무엇을 먹을까 남편에게 물어보니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나와 달리 의견이 분명한 사람이었기에 의아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웬일로 아무거나라고 말해?”

“내가 이것저것 말해도 별로라고 할 거잖아. 어차피 자기가 생각한 게 있는데 못 정해서 물어보는 거 아냐?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당신이 더 먹고 싶은 거 먹어.”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남편을 고문 아닌 고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택은 못하겠고 원하는 것은 대략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해봐라며. 고쳐야겠다.


그다음부터 나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아무거나’ 대신 ‘솔직히 이것저것이 고민인데 잘 모르겠어.’라고 해보자. 

‘나는 이게 조금 더 좋은 것 같아.’라고 솔직히 마음을 표현하자.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일단 ‘아무거나’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에 이헌주교수가 말하는 <내 욕구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본 적이 있다.


“아무거나라는 말을 쓰지 말고 랜덤으로라도 내가 하나 찍어서 말해보세요.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입니다. 

나는 내 입장에서 제안하는 것이니 작은 거라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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