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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Jun 05. 2024

아무거나와 괜찮다. 2

내 마음의 휴지통은 어디에 있을까?

괜찮아. 나는 괜찮아. 나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걸까. 정말 괜찮기는 한 걸까. 이런 말을 하는 나는 마음의 거짓말쟁이이다.


내가 ‘아무거나’와 같이 습관처럼 자주 쓰는 말은 ‘괜찮다’이다.

나에게 이 말이 무서운 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이거 괜찮아?”

“응. 괜찮아.”

“이번에 이렇게 해도 괜찮겠어?”

“응. 괜찮은 것 같아."

“싫으면 말해도 돼.”

“아냐. 괜찮아.”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목소리도 아니고 상대방이 물으면 

그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늘 ‘괜찮다’ 말해주는 착한 나 자신.

정말 괜찮은지 자신에게 묻지 않고 상대방을 먼저 챙기는 나. 

‘괜찮다’라는 말을 하면서 착한 척하고 싶어지는 나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저 사람 자상하고 착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싫다고 말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걸까? 

그럼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나쁜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말을 통해 착한 사람으로 길들여져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괜찮다’고 해서 정말 괜찮았던 적은 별로 없다.

언제나 상대방은 배려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배려하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나 사실 그때 괜찮지 않았어. 괜찮은 척한 거야.’라고 후회하거나 우울해했다.

나에게 사기꾼이 있다면 그건 바로 ‘괜찮아’라고 말하는 나 자신일 것이다. 

나를 착각하게 만들고 속이는 단어. 이 말이 무서운 두 번째 이유이다.

이 말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이 세뇌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말하다 보면 정말 순간적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습관처럼 사용하게 된다.

불편하고 힘든 순간을 피하기 위해 ‘난 괜찮아’라고.

어찌 보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 같지만 내 마음을 속이는 말이기도 하다.

마치 무서운 일을 앞두고 나를 달래기 위해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사실을 무서운 거다.

그리고 그 무서운 마음을 솔직히 마주할 용기가 없는 눈속임인 것 같다. 


가야 할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주변에서 내 상태를 보고 중요한 일이 아니니 힘들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나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미련하기도 하다.

주변에서 ‘괜찮다’ 했으니 괜찮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그래야 했던 걸까.

사실 나는 내가 정말 괜찮아진 줄 알았다. 내 입에서 그 말을 하는 순간 놀랍게도 나는 괜찮아졌다. 

착각을 했거나 내가 나를 속인 것이다.

결국 그날 나는 심하게 아팠다.

누구를 위한 나의 선택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긴장이 되거나 떨릴 때 이 말을 하면 순간적으로 괜찮아질 때가 있다.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를 속이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솔직하게 부딪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이거 어때’라고 물어왔다.

나는 그날따라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정말 싫어서 ‘난 별로야’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순간 당황한 듯 보였다. 평소의 나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나도 솔직히 당황한 친구의 모습에 자신감이 줄어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마음에 진심을 담아두지 않고 내보였기 때문이다.

그다음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서로가 원하는 방향을 마주할 수 있었다. 행복한 결말이었다. 

내가 내 마음을 표현해도 불편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 힘들다 말을 하고 아플 때 아프다 말을 하니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마냥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내 마음에 힘을 주었다. 

나를 습관처럼 속이지 않아도 좋았다.

안 괜찮은 것은 안 괜찮다. 그것도 내 마음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마음에 당당해지는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무조건 ‘괜찮다’라는 말대신 ‘안 괜찮다’는 것을 당당히 말해야겠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거야. 다만 이것 또한 지나갈 테니 힘내보자’라는 말로 나를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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