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담은 음식
내가 7, 8살 때쯤이다.
동네에서 같이 놀고 있던 친구가 자랑을 했다. 어제저녁 가족들과 돈가스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그때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가스가 뭐지?
그것이 돈가스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그 후 아버지의 직장 동료분이 돈가스를 사줘서 이게 돈가스구나 감탄하며 먹었는데,
나름 강렬한 기억이었는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돈가스를 먹을 때면 가끔 그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어릴 적 돈가스는 고급 음식이었다.
경양식이라 불리며 레스토랑에 가야 먹을 수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아버지의 월급날이 되면 가족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돈가스를 먹었다.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을 하면 어떤 수프를 먹을 건지 고르고 밥과 빵 중에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주로 크림수프와 빵을 골랐는데, 집에서는 자주 먹을 수 없는 것이라 당연했다.
어설픈 칼과 포크질로 돈가스를 부지런히 먹고 나면 마지막 차례는 후식이었고,
그 달달함으로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그때는 돈가스의 바삭함보다 소스의 맛과 후식의 종류가 식당을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돈가스를 좀 더 자주 먹게 되었다.
집에서 엄마가 솜씨를 부려 돈가스를 튀기면 바로 먹거나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었다.
그리 두툼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지만 갓 튀긴 돈가스에 케첩을 뿌려먹는 것은 언제나 맛있었다.
언제부턴가 직접 만드는 돈가스보다 꼬마, 미니라 불리는 냉동 돈가스로 도시락을 싸는 날이 늘었는데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돈가스의 개수가 더 중요할 뿐이었다.
집에서는 동생들과,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누가 몇 개를 먹었는지 나름 중요한 문제였다.
분식집에서도 돈가스를 먹을 수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과 차이가 났지만,
가까운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돈가스는 언제나 반가웠다.
돈가스를 싫어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고, 매일 먹어도 좋을 인기 만점인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돈가스는 늘 함께였다.
점심으로 먹어도 좋았고, 저녁으로도 좋았으며, 술안주로도 좋았다.
한 친구는 돈가스를 정말 좋아해서 술을 마실 때면 늘 안주로 돈가스를 시켰다.
그러던 돈가스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소스보다는 고기의 두께와 튀김옷의 바삭함으로 본연의 맛을 보여주는 돈가스.
일본식 돈가스가 유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먹는 사람이 직접 간 참깨를 넣은 소스와 푸짐한 양배추는 새로운 맛이었다.
바삭하고 두툼한 고기는 씹는 느낌을 주었으며, 포만감을 주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일본식 돈가스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맛있게 하는 가게들이 계속 늘어갔다.
튀김옷은 더욱 바삭해졌고, 고기는 부드러워졌다. 찍어 먹는 소스 또한 다양해졌다.
하지만 옛날식 돈가스의 인기도 꾸준했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경양식 돈가스는 많이 줄었지만, 추억의 맛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리고 여전히 맛있다.
나는 그날 먹고 싶은 종류에 따라 돈가스를 주문한다. 어느 것이 더 맛있거나, 더 좋아해서가 아니다.
종류에 상관없이 나에게 돈가스는 돈가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아니면 어떤 돈가스를 더 좋아할까?
내 기억 속 돈가스는 언제나 맛있었다.
레스토랑에 갈 때면 예쁘게 단장하던 어머니와 설레는 가족들의 표정이
돈가스의 맛을 더욱 감동적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는 돈가스를 좋아하나 보다.
돈가스는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 있는 음식이자,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내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던 돈가스를 지금 어린아이들도 먹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크고 내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즐겨 먹고 있을 음식 같다.
다음에는 어떤 돈가스가 유행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