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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은 온다

끄적거림

by 달무지개

“3월인데 왜 이리 춥지? 날씨가 계속 오락가락하네. 도대체 봄은 언제 오는 거야”

코끝을 시린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 위에 살랑살랑 부드러워지기를 바랐다. 무거운 겉옷을 벗고 산뜻하면서 예쁜 색감을 가진 옷들을 얼른 입고 싶었다.

집이나 건물 안 대신 밖에 나가 일상을 즐기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렇게 추운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날이 오기를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요즘 봄이 오긴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공기는 조금 따뜻해진 것 같은데 나는 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3월이 되었고, 미세먼지가 심해지니 봄이 오나 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추운 날씨에 두꺼운 겉옷을 입은 체였다. 설레는 소식 없이 주변은 뒤숭숭한 일이 많았다. 어릴 적 엄마가 챙겨주던 봄나물을 이제는 내가 챙기려니 귀찮기만 하다.

얼마 전 장을 보려고 마트에 갔었다. 과일 자리를 지나다 보니 참외가 할인하고 있었다. ‘벌써 참외가 나올 때인가.’ 남편에게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지금이 참외 먹을 때인가?”

“하우스 재배겠지. 요즘은 나오는 시기가 빨라져서 봄 참외가 맛있대.”

“정말? 여름이 아니라? 와~”

맛있는 과일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만큼 이젠 제철 음식도 날짜가 바뀌는 건가.

그럼 봄은? 봄에 나오는 음식들은?

과일 자리를 지나 채소를 판매하는 곳으로 향했다. 냉이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냉이를 집어 들었다. 냉이 된장찌개를 끓여 먹어야겠다.

그러다 문득 이번 주에 해 먹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기 위해 몸을 돌렸다. 옆에 중학생처럼 보이는 아이가 냉이를 보더니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냉이가 뭐야?”

“???”

“고추냉이 말하는 건가?”

“!!!”

이럴 수가. 요즘 아이들은 냉이를 모르는 걸까. 원래 저 나이에 나도 몰랐었나. 나는 또 한 번 당황스러웠다.

봄이 오면 나는 자연스레 냉이와 달래, 두릅을 떠올린다. 어릴 적에는 먹기 싫은 음식이었다. 제대로 맛도 몰랐다. 하지만 봄이 되면 엄마는 잊지 않고 해마다 그 음식들을 챙겼다. 냉이로는 된장찌개를 끓여 주었다. 달래간장을 만들어 밥에 비벼 먹었고, 두릅을 데쳐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엄마는 봄에 이런 제철 나물을 먹어야 건강하다고 했다.

지금도 꼭 챙겨 먹었냐고 봄의 안부 겸 물어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귀한 음식이었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음식들이 맛있어졌다. 봄이 오면 봄맞이로 꼭 해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지금은 계절 상관없이 구할 수 있는 재료지만, 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겐 언제나 봄이 주는 특별함 같다.

그래서일까. 내게 냉이를 모르는 아이의 물음이 나름 놀라웠던 건. 그럼 요즘 아이들은 봄이 오면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봄의 음식을 알까.

왠지 조금 씁쓸하고 서글픈 마음이 든다. 이곳 마트에 봄은 머무르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날씨를 보면 계속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킬 수 없다. 봄바람을 맞이할 수도 없다.

언제부턴가 봄 하면 미세먼지라는 공식이 생겼다. 봄이 왔다고 좋아해야 하나, 미세먼지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해야 하나. 봄의 하늘이 어떤 색깔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봄이 오는 아기자기한 모습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바깥 온도가 따스해지면서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걸 보니 봄이 왔구나 느낄 뿐이다. 설렘이 없다.

나쁜 공기에 눈은 간지럽고 입안은 텁텁해진다. 뿌옇게 변한 세상에 주변은 잘 보이지 않고 마스크를 쓰니 숨이 답답하다. 마음도 갑갑하다. 원래 봄은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이제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의 봄을 그리워하다, 원망도 하다 봄을 보낸다. 가뜩이나 짧은 봄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니.

봄이 오긴 온 걸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다가 바로 여름이면 어떡하지. 아쉬움이 앞선다. 미세먼지 때문에 밖을 돌아다니기는 싫은데, 봄을 찾아봐야 하나.

오늘도 날씨가 좋지 않다. 내일은 더 안 좋을 것이라고 한다. 바람이 많이 따스해졌지만, 흙먼지 가득한 이 바람을 나는 맞이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밖에 나와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니 알 수 있었다. 내가 이것저것 마음에 안 드는 일을 투정 부리고 외면하며, 좋은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꿋꿋이 와주었다. 봄은.

두꺼운 겉옷에 내가 파묻혀있을 때 봄은 꾸준히 찬 바람을 밀어내고 따스한 온기를 날려 보내주었다.

내가 미세먼지에 창문을 꾹 닫아 버릴 때도 봄은 열심히 새싹을 틔워 꽃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돋아난 연둣빛의 새싹들과 노랗게 피어난 산수유 꽃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하얗게 움튼 목련 몽우리가 그걸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도, 왠지 모르게 느긋해진 발걸음도 봄의 여유겠지. 내가 끓여 먹을 냉이 된장찌개도 봄이겠지? 뿌듯한 마음으로 준비해야겠다.

그렇게 봄은 내게 왔다.

봄… 청개구리.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목련. 벚꽃. 쑥. 냉이. 달래. 두릅. 이 모든 것들이 봄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조용히, 그렇게 봄이 온다. 내가 알지 못해도, 그래도 봄은 온다. 내 마음에 부드럽게 살포시.

안녕! 반갑다, 봄아. 오래오래 머물러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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