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찌 Dec 19. 2023

아이 Yes or No (5)

아이 안 낳는 건 불효?

한국에서 한국 남자로 자라고 살아온 남편은 언젠가, 어머니에게 손주를 안겨드려야 된다는 은근하고도 분명한 부담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연세의 어머님들이 으레 그렇듯, 남편의 어머니도 아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결혼하기를 바라시고 손주를 데려오길 기대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만나기 전부터 이미.

꼭 대를 잇는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어른이 되는 게 인생이고 복이라는 생각이 이유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거기에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타고난 성품이 더해졌을 것이고.


아마 이런 류의 부담감,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바라는 것을 해드리지 못하는 죄책감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할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특히 불효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것이고 심지어는 부모의 바람을 내 바람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부모자식 관계가 서로 분리된 인격들 간의 관계가 아닌, 한 덩어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효'라는 지극히 유교적인 개념을 들고 와서 그렇지, 아이 안 낳기로 한 결정에 부모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건 내가 사는 유럽에서도 들어본 말이다.

위에서 썼듯이 부모와 분리가 다 되지 않은 자식의 경우 부모의 바람을 이뤄주지 못하는 데에 대한 죄책감은 서양인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20대 백인사람은 30대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남자친구는 어린아이가 둘 있는 이혼남성이다. 이 여성과 내가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내 남자친구는 이제 결혼도 하기 싫고 아이도 둘이면 충분하대."

나: "어? 그런데 너는 나중에 아이 낳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 "그런 적이 있긴 한데, 지금은 사실 자신도 없고 안 낳는 쪽으로 기울고 있어."

나: "그래?"

그: "응. 그런데 남자친구랑은 이렇게 합의 봤어. 이제 우리가 사귄 지 3년이 됐고 나는 서른 살이 되려면 앞으로 2년이 남았잖아. 그래서 서른 살 까지는 관계를 지금처럼 유지해 보고 결정하려고. 그렇게 서로 합의를 봤어. 그냥 나한테 시간을 좀 더 주고 싶어. 지금으로선 아이 낳고 키울 자신이 없는데, 안 낳는다고 생각하면 사실 우리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안 좋기도 해."

나: "너희 부모님이 왜?"

그: "나는 삼 남매 중 첫째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유일한 자식이니까. 둘째 동생은 게이고, 셋째 동생은 연애에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내가 안 낳기로 하면 우리 부모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기회를 영영 못 갖게 되는 거지."


나는 유럽인이, 그것도 내 또래 여성이 자기 부모를 생각하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를 예뻐할 기회'를 뺏는다는 생각을 할 줄 몰랐다.

그에 비해 나는 내 부모와 분리가 너무 잘 됐는지, 내 부모가 '마땅히 누려야 할 할머니 할아버지로서의 복'이라는 것에 대한 감각도 없고 그게 내가 이뤄드려야 하는 소원이라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이를 낳아서 손주를 안겨드리는 게 효도라는 개념도 상당히 생소하다.

그러니까 정상가족에 대한 이상은 소위 개인주의 사회라는 서양에도 있는 거다. 꼭 혈육인 아이를 낳아야지만 내가 부모가 될 수 있고, 내 부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다른 가족형태를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대안적 가족'에 대해 알긴 알지만 동등한 형태라고 여기지 않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편견. 그것도 아주 강력한.


새로운 가족인 '아이'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족은, 특히 정상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엔, 정말 크나큰 한 덩어리의 상처와 짐이 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 Yes or No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