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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AUCA Jan 14. 2024

하바나의 배신 PART-1

1년 만에 다시 찾은 시간의 도시 하바나, 쿠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매캐한 공기 속에 느껴지는 짭짤한 바다 내음,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내달리는 형형색색의 옛날 자동차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허름하지만 품위 있는 건물들, 그리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게 하는 그 음악들까지도. 

이것들에 매료되어 주저 없이 다시 찾은 하바나는 1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는 듯했다. 

그래, 나도 네가 엄청 그리웠어. 

작년에 열흘동안 하루에 10km 씩을 걸으면서 여행을 했던 곳이라, 올드 하바나의 거리는 자주 들렀던 동네처럼 몹시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 모퉁이를 지나면 커피를 아주 잘 만드는 카페가 있고,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칵테일을 잘 만드는 아주 힙한 루프탑 바가 있고, 저 길 건너에는 그리 저렴하진 않지만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는 것쯤은 이미 다 알고 있어서, 두 번째 여행인 우리에겐 여행객들이 가지는 그 흔한 경계심 따위는 그리 없었다. 문제는 항상 방심하고 있을 때 나타나곤 한다. 방심은 항상 나위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랬다. 




사건 발생 당일. 

그날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눈이 부신 하바나의 아침 햇살을 등지고 호텔에서 나와, 브런치를 잘한다고 소문난 카페에서 아점을 먹고 나니, 하바나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 하늘을 비집고 내려오는 소나기 빗줄기마저도 하바나의 각양각색들의 예전 건물들과 어우러져 멋스러운 분위기 연출에 일조하는 듯했다. 우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지붕이 있는 교회 앞 정원에서 다른 이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20 여분이 지나자 비는 금새 그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향하기 위해 반대쪽으로 돌아서 가던 찰나, 사건은 그 찰나에 발생했다.



"Ola, Amigo."(안녕, 친구!) 하바나의 길에서는 쉽게 현지인들이 관광객들에서 친근함의 표현으로 이 말을 연신 내뱉는다. 하바나 특유의 친근함과 부담스럽지 않은 그들의 호의적인  태도들도 역시 우리가 하바나를 다시 찾은 이유 중이 하나였다. 나보다 걸음이 조금 빠른 남편은 3 발자국 앞서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바로 따라가고 있었던 터라, 그 낯선 이들의 "Ola Amigo"인사가 왠지 여느 때와는 약간은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뭐랄까, 여느 때보다는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그 몇 초간의 순간이 지나고, 나는 바로 남편한테 물었다. "여느 때와는 좀 다르네, 주머니에 소지품 다 있지?" 남편은 "음, 다 있어."


그 짧디 짧은 대화가 끝나고 5초쯤이 지났을까, "내 전화기!"

남편의 입에서 "MY PHONE"이란 혼잣말이 토하듯 흘러나왔다. 난 "MY PHO.."까지만 들었지만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고, 몸은 반사적으로 뒤로 돌아 아직도 빗물이 고여 질척이는 하바나 시내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This is not happening!"(일어 나선 안돼!)

"This is not happening!"(일어 나선 안돼!)

미친 사람처럼 이 말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그들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밖에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신용카드, 은행카드, 운전면허증, 호텔카드, 그리고 작년에 거금 $1600 불을 주고 산 새 전화기까지, 거기에 모두 들어있는 개인 정보들 까지. 현대인들에게 휴대폰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더 이상 말을 해 무엇하랴. 

평소에 영화를 많이 봐 오던 나는 보통 소매치기범들이 어찌 행동하는 줄 알듯했다. 훔친 물건은 보통 다른 공범한테 재빨리 넘기고, 둘이 다른 길로 뿔불이 흩어지는 법. 그래 그거였다. 난 그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난 이쪽으로 갈 테니 너는 저쪽으로 가서 찾아봐." 30도에 가까운 하바나 시내를 미친 듯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녔지만 물론 그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 지도 알 수 없었다. 


허탈하게 돌아온 호텔 로비에는 더 허탈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남편이 미리 포기한 듯 세상에서 제일 처량한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 있었다. 

"경찰에 신고할까?" 남편이 물었다. 

"뭐 경찰들이 한낱 소매치기범들을 잡아주겠어?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네 맘이 더 편하다면. 그래, 가서 경찰에 신고하자."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를 해줘야 했었기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20분 정도를 걸어서 근처 하바나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서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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