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작년인가, 피검사를 하다가, 당뇨 전단계니까 조심을 하셔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냥 뒷전으로 흘려 버렸는데, 언제부터인가 몸의 콘디션이 영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식곤증이 심해지고, 눈이 침침해지고, 단 것이 땡기고, 이상하다 싶어서 유튜브의 영상을 찾아봤더니, 당뇨 증상이랑 너무 같아서 겁이 살짝 났다.
아니나다를까 혈당 검사를 해봤더니, 공복 혈당이라는 것이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관리를 안하면 약을 먹어야할지도 모른다는 말씀에, 약을 먹는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일단은 식이요법도 해 보고, 살도 빼보겠다고 기운없이 말만하고 나왔다.
당뇨까지 걸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노화에 노쇠에, 반갑지 않은 불청객으로 인해 영 몸과 마음이 있는대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이 마저 피하지를 못한다면, 어쩌면 이대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있는대로 온 힘을 다해, 잠시 소풍나간 나의 에너지를 불러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힘없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모습은, 내 사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갈 때 가더라도 이런 나약한 모습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평소 생활습관이 당뇨를 불러일으킨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난 정말 억울하다.
나만큼 하루 일과를 루틴까지 만들어서 실행하고 있는 노인있으면 나와보라는 식으로, 생활습관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우리 집 양반하고 나하고의 식사 패턴을 딸내미가 보고는 마치 병원 밥 같다고 할 정도였다.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어서 다음 날 새벽 4시 전에는 무조건 일어나서 하루의 루틴을 시작한다.
삼식이 아저씨를 모시고 사는 덕분에, 우리 집 하루 세끼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차려먹는다.
새벽 5시 반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아침은 6시에 먹는다. 그것도 대충 아무 것이나 먹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영양가 챙겨가면서 아주 잘 먹는다,.
하루 세끼를 거의 집에서 먹다보니, 아침부터 밥을 먹는 것은 위가 조금 부담스러운 것 같아서, 아침은 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먹는데, 여기에다가 과일하고 샐러드까지 곁들인 아주 근사한 아침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점심은 정확히 12시에 나름 진수성찬을 차려서 먹는다.
웬 반찬이 이렇게 많냐는, 허구한 날 말도 안되는 잔소리를 남편한테 들어가면서 차리는 음식이다.
외식을 거의 안하는 대신, 최상의 재료로 식탁을 꾸민다.
그리고는 저녁은 5시 반에 되도록이면 간단히 먹을려고 노력을 한다.
이렇게 하루 세끼를 정확한 시간에 식사를 하는 아주 반듯한 생활습관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서, 아무리 당뇨 전단계라고는 하지만, 정말로 나한테 당뇨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잘못하다가는 당뇨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또 죽기살기로 당뇨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가뜩이나 노화가 아닌 노쇠라는 반갑지 않은 친구가 찾아와서 영 살 맛이 안나는데, 당뇨까지 걸릴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날, “신성한 ,이혼”이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접하고는, 라면과 레드와인의 환상적인 궁합에 그대로 꽃혀버려서, 툭하면 신라면에 레드와인 한 잔을 곁들이는 건방진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한 잔 이라고는 하지만, 이것 또한 작은 글라스로 한 잔이니까, 반 잔 정도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는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마츠다 부장님의 하이볼 마시는 모습이 너무도 근사해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하이볼까지 업데이트를 시켜버렸다.
자기가 무슨 바텐더라도 되는 양, 하이볼에 필요한 잔이랑, 칵테일 지거라는 계량컵까지 구입을 해서는,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면서 하이볼을 만들었다.
이것도 딱 한 잔이 나의 주량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 이 나이에 이 정도도 못해?, 난 충분히 즐길 권리가 있어’라는등, 쓸데없는 오만가지 이유를 갖다대며, 있는대로 멋을 부리면서 폼생폼사로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점점 더 살이 찌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내 인생 최대치인 61.5kg 라는 말도 안되는 몸무게를 기록하고 말았다.
키라도 조금 큰 편이라면, 이 몸무게가 주는 의미가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겠지만, 나처럼 짜리몽땅한 사람한테는 61.5키로라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몸무게가 52키로였던 것을 생각하면, 8년만에 자그만치 거의 10 kg 가까이 찐 것이다.
정신이 바짝 났다.
당뇨까지 걸릴 순 없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모든 병의 근원은 지나치게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생긴다고 한다.
“나이들면 통통한 게 보기 좋아!”라는 우리 집 양반의 말에, 마냥 방심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굴이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고, 손과 발이 가늘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만 보고는 많은 사람들이 살쪘다는 생각을 안한다.
늘 배를 있는대로 가리고 다녔기에, 내가 다이어트중이라고 하면, 그 몸에 무슨 살을 뺀다고 그러냐고 오히려 야단을 친다.
내가 갖고 있는 기저질환에는 무조건 살을 빼야 한단다.
고혈압을 비롯해서 부정맥, 무릎 관절염, 허리 협착증, 골다공증, 게다가 이제는 당뇨까지 걱정을 해야한다.
흔히들 말하듯이, 이 나이에 무슨 시니어 모델을 할 것도 아니고, 어디가서 예쁘게 보일 일도 없고, 살쪘다고 사는데 무슨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심한 병에 걸려, 행여 남은 인생 병상에 드러누워 살게 될까봐, 그것이 제일 두려운 것이다.
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해온 것 중의 하나가, 죽는 순간까지 절대로 남한테 민폐끼치지 않고 살다가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은 내가 관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독하게 마음먹고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벌써 4개월이 됐다.
노인들의 다이어트는 젊은 사람들하고는 다르게 해야 한단다. 옛날 방식으로 무조건 굶거나 적게 먹는 식으로 했다가는, 온 몸의 근육이 다 빠져나가, 까딱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더 빨리 저 세상으로 불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공부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덕분에, 부지런히 노인이 할 수 있는 다이어트를 조사해가면서 실천을 했다.
갑자기 빼지 말고 서서히 빼기로 했다.
그리고 무조건 잘 먹기로 했다.
요새는 잘 먹어야 잘 빠진다고 했다가,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우리 집 양반한테 잔소리를 있는대로 들었다.
매사에 도움이 안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의, 나를 위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그동안 힘들고 외로울 때, 나에게 큰 위로를 안겨다주던 맥주랑 와인, 그리고 하이볼까지 당분간 끊기로 했다. 완전히 끊을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아직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몸이 좋아질 때까지로 기한을 정했다.
앞으로 남은 나의 노후 생활에서, 아무리 근사한 레스토랑을 가도, 좋아하는 술 한 잔 정도도 못 마신다고 생각하면 괜히 쓸쓸해 지는 것이다.
아무리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폼 좀 잡으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Due-Date를 5kg 감량에 성공할 때까지로 잡은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라면, 우동, 빵, 떡볶이도 일체 입에 안댔다. 하루 2잔 이상을 마시던 그 달달한 커피믹스도 완전히 끊었다.
그대신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으로 대체를 하고, 칼슘 보충을 위해 우유랑 두유를 부지런히 마셨다.
느끼해서 별로 안좋아하던 들기름도 샐러드에 듬뿍 뿌려서 완전 건강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두부랑 생선은 하루 걸러 식단에 추가했다.
고기도 자주 먹고, 싫어하던 닭가슴살도 샐러드랑 곁들여서 먹고, 그대신 혈당을 올린다는 과일은 줄였다.
그렇게 많이 먹으면서 무슨 다이어트를 하냐는 남편의 말처럼, 오히려 다이어트 하기 전보다 더 잘 먹었다. 그것도 아주 영양가 있게 잘 먹은 것이다.
나만의 건강노트를 만들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의 움직임을 적기 시작했다. 아침, 점심, 저녁, 무엇을 먹었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그날의 운동량도 기록하면서, 하이라이트 색깔로 한 눈에 나의 활동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마음 먹어서 안되는 일은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늘 다이어트한다고 말로만 했었지 진짜로 다이어트에 성공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젊어서도 성공하지 못 한 것을, 칠십이 넘어서, 그것도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니까, 이제서야 정신차리고 성공을 한 것이다.
61.5kg라는 끔찍한 숫자에서 시작을 한 것이, 오늘 아침에 드디어 54.7kg라는 아름다운 글씨로 바뀌었다.
자그만치 6.8kg나 뺀 것이다. 그것도 아주 배불리 먹으면서.
원래 목표는 5kg만 빼자는 것이었는데, 하다보니 또 열심히 하게 됐다.
이것으로 일단 나에게 주어진 미션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덕분에 당뇨에 대한 걱정도 한시름 놓게 됐다.
하면 되는 것이다.
병원을 찾아오는 어르신들한테 늘 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질문이 있단다.
”운동은 열심히 하세요?“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 결같이 ’아주 열심히 한다‘였다.
문제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오로지 걷기만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유산소 운동만 갖고는 절대로 하루 하루 빠져나가는 노인들의 근육을 보충할 수가 없다는 설명에, 노션에 운동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부지런히 실천을 했다.
걷기또한 필수이지만, 그냥 걷기만 해서는 운동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에, ‘인터벌’이라는 운동을 곁들였다.
10분을 세팅해놓고, 나의 최대한의 심박수를 이용해서 빠르게 그 시간에 맞춰서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5분 정도 천천히 걷고, 다시 또 10분을 빠르게, 이런 식으로 아침 식후에 한 시간을 운동을 하고나면, 유산소 운동도 되고, 근력운동 또한 함께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오히려 한 시간내내 걸을 때보다, 오히려 더 수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심한 운동도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해서, 집에서 유튜브 틀어놓고 따라할 수 있는 간단한 근력운동을 선택해서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나가는 방향으로 틀을 잡았다.
목운동, 어깨운동, 허리운동, 무릎운동 위주로 열심히 하다보니, 이것또한 몸의 근육을 지키는데 꽤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지난 4개월에 걸친 나의 노력이, 배불리 먹으면서, 근육또한 지켜내는 건강한 다이어트로 성공을 한 것이다.
그동안 늘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이유는 그만큼 절실하지가 않아서 였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다이어트보다는 시원한 맥주 한잔, 폼나게 마실 수 있는 와인 한 잔, 그리고 맛있는 하이볼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이, 다이어트의 목적보다 더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우아하게 살고 죽느냐의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다보니, 저절로 해결이 된 것이다.
노쇠가 왔다고 지나치게 겁먹지도 말자.
이것 또한 노력하면 어느정도 천천히 가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손으로 직접 글을 쓰라고 하는데, 오른 손 두 손가락을 마음대로 사용을 못해서, 디지털 노트에 감성을 더할 수 있는 굿노트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직접 쓰는 손글씨만큼은 못하더라도, 이렇게 감성을 불러 올 수 있는 스티커등을 사용을 하다보면, 이것 또한 치매 예방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조금 괜찮을 때 부지런히 공부해뒀던 나의 디지털 실력이, 젊은 사람들 눈에는 다소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할매만의 디지털 노트로 재 탄생을 했다.
참으로 뿌듯하다.
이런 맛에 앞으로도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