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원이 다른 검소와 절약 수준의 최재천 교수님!

업글할매의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최재천 교수님의 차원이 다른 검소와 절약 수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강의가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 채널에서 열렸다.


평소 깊이 존경해오던 교수님이기에 이미 구독은 물론 알림 설정까지 해 두었는데, 덕분에 이런 강의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어서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최재천 교수님은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셨다.


오랜 세월 미국에서 생활하다 귀국해, 한국 생태학 연구와 대중 강연을 이어오고 계신다.


학문적 업적도 빛나지만, 무엇보다 일상에서 실천하시는 절약의 철학이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미국 지폐는 $1, $2, $5, $20, 그리고 $100불짜리가 있다.


얼핏 들으면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이 중에서도 $20의 존재감은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은 환율이 올라 거의 3만 원 가까이 되지만, 예전만 해도 대략 2만 원 정도였다.


금액만 놓고 보면 큰돈 같지 않아 보이지만,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최재천 교수님한테는 ‘마지노선’이자 생활의 기준이었다.


나 역시 미국에서 오랜 세월 장사를 했기에 이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당시만 해도 신용카드 사용은 지금처럼 흔치 않았고, 대부분의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졌다.


손님이 20불짜리를 내면, 거의 모든 가게들은 형광펜처럼 생긴 위조지폐 감별 팬을 꺼냈다.


지폐에 쑥 그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만큼 위조지폐도 많았고, 그만큼 20불의 가치가 컸던 것이다.


100불짜리는 더했다.


보통 동양 사람들 아니면 잘 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괜히 무심코 지갑에 넣어 들고 다니다가는 언제 어디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의 십만 원과 미국의 백 달러는 액면가가 비슷해 보여도 그 무게감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던 것이다.


최재천 교수님 역시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유학 시절 학생 신분으로 지내면서, 본인이 쓸 수 있는 최대한도를 20불로 정해두셨단다.


그야말로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이었다.


교수님은 늘 지갑에 20불짜리 한 장을 소중히 간직하며, 웬만해서는 그 지폐를 쓰지 않으려고 애를 쓰셨다.


그런데 하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쳐, 지갑 속 20불짜리를 떨리는 손으로 꺼냈는데, 세상에나! 그 지폐가 오랫동안 접힌 채로 지갑 속에 있다 보니 접힌 부분이 삭아 있었던 것이다.


꺼내는 순간 삭은 부분이 뚝딱 떨어져 나가, 결국 그 돈으로 물건을 사지 못하고 은행으로 곧장 달려가 새 지폐로 교환을 하셨단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명색이 교수로서 어쩌다 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지갑 안에 20불짜리 한 장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신다.


여전히 지갑 속 20불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교수님은 웃으신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평생을 지탱해온 절약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왜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드는지…


우리 또한 미국에서 살 때는 20불은커녕 1불 한 장에도 벌벌 떨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아껴가면서,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서는,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조금은 쓰며 살았다.


남에게도 베풀고, 나 자신에게도 베풀며 살았다.


교수님처럼 한결같이 알뜰하게 살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교수님의 변함없는 절약 정신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단순히 돈을 아끼는 습관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철학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절약은 인생을 무겁게 만드는 족쇄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버티게 하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자린고비’라는 말의 유래는 조선 영조 때 충북 음성군에 살던 ‘조륵’이라는 양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는 소문난 구두쇠였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저녁 밥상 이야기다.


밥상 위에는 반찬 대신 천장에 매달린 굴비 한 마리가 있다.


밥을 먹을 때마다 그 굴비를 힐끗 바라보며, 짠맛을 입안에 떠올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먹지 않고 눈으로만도 반찬을 삼은 셈이다.


또 여름에는 부챗살이 상하는 게 아까워서, 부채를 부치지 않고 손에 고이 쥔 채 얼굴만 좌우로 흔들어 바람을 얻었다니, 절약도 이런 절약이 없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는 인색했던 양반이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배불리 먹이고, 함께 즐겁게 했다는 일화다.


구두쇠로 알려진 그가 사실은 남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로 최재천 교수님이 떠오른다.


본인 생활은 검소하게, 그러나 남에게는 베풀며 사는 모습이 꼭 닮아 있다.


사실 우리 집에도 ‘자린고비’가 한 분 계신다.


저녁이 되면 불은 꼭 필요한 것만 켜고, 반찬도 절대 예쁜 접시에 덜어서 먹지 못한다.


그냥 반찬통을 통째로 놓고 먹어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설거지를 줄여야 물도 아낀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날은 반찬 통 위에 씌워둔 랩을 반쯤만 열어놓고 그 틈으로 젓가락을 넣으라고 한다.


그런데 어떨 때는 젓가락이 잘 안 들어가서 신경질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투덜대지만, 우리 남편은 너무도 태연하다.


그 랩마저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자기 생활에는 야박하다 못해 짠물까지 쏙 빼먹을 만큼 인색한 양반이, 남을 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금을 쓴다는 것이다.


절약해서 모은 돈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놓고, 아낌없이 쓰는 그 뒷모습은 사실 나를 감동시키곤 한다.


“역시 우리 집 양반, 멋진 사람이다” 싶다가도, 문제는 그 ‘큰손’ 정신이 왜 나한테만은 발휘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속 좁은 여인네라서 일까.


가끔은 나를 위해서도 그 통 큰 지갑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속이 터질 때가 있다.


세상 누구보다 절약을 잘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베풀 줄도 아는 양반이지만, 그런데 그 베풂의 1순위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억울해서, 오늘도 나는 혼자 투덜투덜거린다.



최재천 교수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옷 중에 제법 특별한 옷이 하나 있다.


이른바 ‘낚시 조끼’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1984년, 하버드대 앞에 이 옷을 파는 매장이 문을 열었단다.


개점 첫날부터 세일을 대대적으로 했지만, 그 조끼는 교수님 눈에는 여전히 넘사벽 가격이었다.


너무도 마음에 들고, 너무도 갖도 싶었지만 차마 사지를 못하고 그저 만지작거리며 바라보고만 계셨단다.


그걸 지켜보신 사모님께서 얼른 집어 계산대로 가져가셨다.


정글을 누비며 연구하는 교수님께 꼭 어울릴 만한 옷이라 여기셨던 것 같다.


주머니도 한두 개가 아니고, 튼튼하고 멋스럽기까지 한 그 조끼는 교수님께 단번에 인생 아이템이 되었다.


그렇게 1984년에 산 옷을 지금까지, 무려 41년 동안 즐겨 입고 계신다.


세계 곳곳 정글 답사에도 함께 했고, 일상에서도 애용하셨다.


그만큼 사랑이 담긴 옷이고,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비싼 옷이라서 제 역할을 단단히 한 셈이다.


댓글 하나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교수님 옷의 90%는 사모님 지분입니다.”


실제로 교수님은 손이 떨려서 비싼 옷을 못 살 것 같다.


아마도 옷장 속에 있는 ‘좋은 옷’들은 대부분 사모님 손길이 닿아 마련된 게 분명하다.




우리 남편도 옷을 하나 사면 거의 평생을 입으려고 한다.


요즘은 옷이 잘 찢어지지도 않으니 더더욱 버릴 기회가 없다.


내가 낡았다고 슬그머니 치웠다가는 그날 무사하지 못할 게 뻔하다.


우리 집 양반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미국에서 산 청바지를 아직까지 입고 있으니, 이것 또한 교수님처럼 4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찢어져야 새로 바꿔줄 텐데, 이상하게도 미국 청바지는 세월과 함께 멋스러움이 더해진다.


우리는 같이 쇼핑이라는 걸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남편 몰래 옷을 사서 들고 온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늘 같은 멘트를 한다.


“세상에, 이거 완전 거저 주웠어~~"


”이렇게 좋은 것이 2만 원이래~~“


교수님의 마지노선이 20불이었다면, 거의 50년이라는 세월을 고단한 이민 생활을 해온 우리 집 양반의 마지노선도 역시 2만 원이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 남편은 2만 원이 넘으면 난리가 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폐를 쓰던 시절이 돈의 가치를 더 피부로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손에 잡히는 무게가 삶의 무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감각이 조금씩 희미해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체크카드 외에는 그 어떤 카드도 만들지 않는다.


그 흔한 백화점 카드 하나 없다.


당장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편리함이 결국은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원칙은 늘 같다.


“꼭 필요한 건 모아서 현금으로 사고, 내 힘에 부치는 건 애초에 사지 않는다.”


큰돈은 없어도, 이 작은 원칙 하나 덕분에 지금의 평안한 우리 노후가 주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재천 교수님의 20불, 우리 집 양반의 2만 원이라는 철학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다.


절약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지혜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도 해져가는 옷에 깃든 애착처럼, 절약의 정신도 결국은 오래도록 우리 삶을 붙들어 주는 힘이 된다.


5F2417AF-B34F-4BD4-B081-4CEB3769FD4B.png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절약과 검소의 상징으로 누구 못지않게 이름값을 하시는 분이 바로 최재천 교수님이다.


평소에는 집도, 옷도, 생활도 최대한 아껴 쓰며 친환경적인 삶을 고집하시는데, 어느 날 그 절약 정신이 뜻밖의 사고로 이어졌단다.


교수님은 늘 친환경 대나무 칫솔을 사용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칫솔이 금세 털이 드러 누운다는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버리면 될 일을, 아깝다는 생각이 앞섰다.


결국 교수님은 가위를 가져와 눕은 부분을 싹둑 잘라내셨다.


모양새가 그럴듯해지자 “이제 새 칫솔처럼 쓸 수 있겠다!"라며 뿌듯해하셨단다.


그렇게 한참을 무심히 양치질을 이어가던 어느 날, 혀끝에 자꾸 뭔가 걸리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결국 치과를 찾으셨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충격적이었다.


브릿지를 해 놓은 자리가 너무 딱딱한 칫솔모에 닦이다가 뒤틀리며 노출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방법은 임플란트뿐이었다.


견적은 무려 수백만 원에 달했다.


그때 교수님은 할 말을 잃으셨단다.


칫솔 하나 아끼려다 엄청난 돈을 쓰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대단한 깨달음을 얻으셨단다.


“아, 너무 아낀다고 해서 늘 좋은 건 아니구나~~”


그 말씀을 하실 때 교수님 얼굴에 멋쩍은 웃음이 번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습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8ACC9E8F-0509-4B5D-89F8-B46CBAA736D1.png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최재천 교수님이 요즘 들어 크게 발전한 점이 하나 있으시단다.


집이며 옷은 여전히 절약의 본능을 따라 사시지만, 먹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생각이 달라지셨다는 것이다.


“내 몸 안에 들어가는 건 내 건강을 위한 거니까, 이제는 옛날처럼 무조건 싼 것만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교수님의 이 말씀이 참 인상 깊었다. 여전히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데 가서 코스 요리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신선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것은 찾아 드시려고 애쓰신다니, 절약의 철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이다.


나는 삼식이 아저씨와 함께 산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외식은 특별한 기념일이나 누군가 초대했을 때가 아니고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집밥 인생’이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달리했다.


외식을 하지 않는 대신, 집에서 먹는 밥만큼은 가능한 한 최상의 재료를 쓰자는 것이다.


신선한 채소, 좋은 고기, 제철 해산물, 이런 것들을 찾아다니며 차려낸 밥상이야말로 나의 작은 호사다.


나는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요리하는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래서 집밥이라고 해서 대충 차리고 싶지 않다.


오히려 외식을 잘 하지 않으니, 집에서만큼은 근사하게 차려내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정성껏 차려낸 밥상 앞에서 늘 튀어나오는 남편의 한마디다.


“웬 반찬이 이렇게 많아?”


그 순간 맥이 탁 풀린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와, 그저 배고픈 것만 면하면 된다는 고리타분한 남편하고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인 것이다.




최재천 교수님의 절약 이야기가
이토록 따뜻하게
다가올 줄이야…


검소하지만

결코 인색하지 않은 삶,


아끼되

나눌 줄 아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짜 절약의 정신이며,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추성훈 아조씨 마초 스테이크 ln 제주 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