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오십의 기술”, “이제 나는 명랑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이신 이호선 교수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셨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 함께 지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통할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서로 너무 잘 알기에 오히려 더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고,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을 콕 찌르는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 상담 복지학과 학과장이자 한국 노인 상담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호선 교수님은 이런 문제의 해법으로 ‘발작버튼’과 ‘안심버튼’을 이야기한다.
교수님은 수많은 강연과 방송에서 가정의 평화 비결을 특유의 재치로 풀어내시는데, 그중에서도 이 두 단어는 부부의 삶을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발작버튼이란 배우자가 절대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당신 때문에 일이 안 풀려“, ”늘 당신이 문제야”같은 말이다.
내뱉는 사람은, 순간적으로는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관계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든다.
인생 칠십 년을 살아보니 저절로 알게 된다.
이 발작버튼은 마치 절대 눌러서는 안되는 빨간 스위치 같다.
잘못 눌렀다가는 작은 다툼이 큰 전쟁으로 번져 며칠씩 냉전을 이어가게 만든다.
나이 들수록 체력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은데, 괜한 말 한마디가 남은 기운마저 빼앗아간다.
반대로 안심버튼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다시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말이다.
“그래도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야”같은 따뜻한 한마디는 싸움의 불씨를 단번에 꺼버린다.
큰돈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니지만, 그 효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크다.
이호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부부도 서로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자동차도 사용 설명서가 있고, 스마트폰도 초기 세팅 방법이 있듯이, 부부 사이에도 상대를 대하는 기본 규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규칙이란 것이 그리 복잡하지가 않다는 교수님의 설명에 마음이 놓인다.
단 두 가지, 발작버튼은 건드리지 않고, 안심버튼은 자주 눌러주는 것, 이것이 전부다.
젊었을 때는 “누가 옳으냐”를 따지는 싸움이 많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몸도 약해지고 나니, 옳고 그름보다는 “얼마나 빨리 화해하느냐”가 훨씬 중요해졌다.
결혼 생활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매일 밥을 같이 먹고, TV를 같이 보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쌓아가는 시간이 곧 결혼 생활이다.
그 일상 속에서 발작버튼을 누르지 않고, 안심버튼을 자주 누른다면, 부부는 그럭저럭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종종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며 후회할 말을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작은 흉터가 남았다.
이제는 알겠다.
인생 후반전의 부부 평화는 거창한 선물이나 화려한 여행에서 오는 게 아니다.
바로 ‘말 한마디’에 달려 있는 것이다.
누구나 발작버튼을 갖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외모에 대한 말일 수도 있고, 지나간 실수일 수도 있다.
반대로 누구나 안심버튼도 갖고 있는 것이다.
“당신 덕분이야”, “고마워”, “있어줘서 다행이야” 같은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결국 부부란 오래 살수록 서로의 버튼을 잘 아는 기술자가 되어가는 사람들이다.
작은 말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폭발시키기도 하고, 또 다른 말 한마디가 얼어붙은 관계를 단숨에 녹이기도 한다.
칠십 대라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야 이호선 교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발작버튼과 안심버튼,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부부는 충분히 행복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부부의 평화는 결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작은 기술 속에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잊지 말자.
발작버튼은 건드리지 말고, 안심버튼은 자주 누르자.
이 간단한 원칙 하나면, 남은 생애가 훨씬 평화롭고 따뜻해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 집 양반한테는 오로지 “발작버튼”만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안심버튼이 없는 사람과 살려면, 결국 내가 그 버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 입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는 듣기 어렵지만, 내가 먼저 “그래도 당신이 늘 곁에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라고 먼저 말하면, 못 들은 척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럭저럭 견딜 힘이 생긴다.
결국 부부란 서로에게 없는걸 채워주며 살아가는 존재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왜 나만 참아야 해?”라는 억울함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평화란 절대로 공짜로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먼저 져주고, 먼저 웃어 주고,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야만 찾아온다.
나이 들어 서로의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은 지금, 괜한 말 한마디로 상처를 주는 것보다, 싱겁더라도 안심버튼 같은 말을 자꾸 꺼내는 게 훨씬 낫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