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타가 '공부 잘하는 약'이라 팔린다는 동네에 삽니다
ADHD 관련, 잊을만하면 약물 오남용에 대한 기사가 뜬다. ADHD 약을 먹으면 집중력이 오르니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이 심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기사들 중 상당수는 강남3구를 겨냥한다. 강남3구의 콘서타 처방건수는 서울 25개 구 중 1-3위를 달리는데, 그 이유는 메틸 페니데이트가 '집중이 잘 되는 약', '공부 잘하는 약'으로 소문이 나 불법 혹은 편법 처방을 받기 때문이라는 거다.
정말 그럴까.
우리 가족은 강남3구에 거주 중이다. 아이들이 영유아일 때 살다 이런저런 이유로 둘째 초등까지 약 8년 정도 다른 지역에 살던 중, 첫째 중등 즈음에 다시 돌아왔다. 남들이 학군지에 입성하려는 시기에 밖으로 나갔고 남들이 입시를 위해 도망친다는 시기에 들어온 셈이다. 애들 선행이 동네 꼴찌 수준인 거 생각하면 (엄밀히 말하면 동네 꼴찌 정도가 아닌, 전국 하위 수준이다) 교육열이 높은 편은 아닐 거 같다. 다시 돌아온 이유도 교육 때문은 아니었고.
아이들의 ADHD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아이들이 중등, 고등이 될 때까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기 때문일까? ADHD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일까?
첫째는 초등 입학 전까지는 행동이 약간 느리고 조용한 아이 정도였다. 6살에 한글을 익히면서 찡찡거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애들은 다 그렇지 않나 생각했다.
제일 처음 난관은 초등학생 받아쓰기였다. 초등 1학년, 아이 학교 적응 동안 잠시 휴직을 했던 나는 매일 받아쓰기 연습을 할 때마다 2, 3시간씩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닌 첫째 때문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나는 복직 예정이었기에 아이는 돌봄에 있다 왔다. 다른 아이들은 다 돌봄에서 받아쓰기 연습을 하고 온다는데, 내 아이는 기가 막히게 매번 어떻게든 받아쓰기 연습을 하지 않고 돌아왔다. 초등 받아쓰기는 1-10번까지 있고 처음에는 단어로 시작해서 뒤로 가면 문장들을 쓰게 된다.
아이는 자, 받아쓰기 숙제를 하자, 1-10번까지 한 번 써보자 하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딴 소리를 하다 자리에 앉혀 놓으면 하기 싫어 몸을 배배 꼬다 나중에는 훌쩍훌쩍 울었다.
"아니 이게 뭐가 어려워. 그냥 보면서 천천히 써보자."
"흐엉......"
"그래도 한 번 쓰고 가야 0점 안 받지. 틀려도 괜찮아. 일단 한 번 써보자."
"흐엉..... 싫어......"
화내고 어르고 달래다 보면 2시간은 후딱 갔다. 애니까 그럴 수 있지 생각하려 했지만 내심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그거 두세 번 베껴 쓰고 불러주면 적는 거 다 해도 30분이면 끝날 텐데 어떻게 그게 싫다고 몇 시간을 울 수 있는 거지. 우는 시간에 했으면 벌써 다 끝나고 놀텐데.
종이접기, 클레이 만들기는 몇 시간을 앉아서 조물조물 잘했다. 수학 연산 숙제 등도 히잉 소리는 냈지만 그럭저럭 앉아서 했다. 그런데 받아쓰기 전날이면 아이는 하교해서 몇 시간을 울고 불고 난리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받아쓰기 때문에 복직을 못 하는 건가 고민하던 중에 지역 카페에 글을 올렸다. '아이가 받아쓰기를 할 때마다 몇 시간씩 울고 불고 너무 힘듭니다. 돌봄에서 보통 해온다 하는데 저희 애는 매번 안 해와요. 받아쓰기 교습소라도 찾아야 하나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지역에 아는 사람이 없는 직장 다니는 부모로서는 지역 커뮤가 1차 소통 창구다)
그 글의 댓글들은 대부분, '힘들겠어요. 열심히 시키시고 습관 되면 언젠가는 좋아지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다 그렇죠.'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어릴 적에 쓰기를 안 싫어해서 몰랐던 거지 애들은 다 저런 건가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던 중 (받아쓰기 울음은 2학년까지 계속되었다) 둘째가 초등 입학 후 돌봄에서 받아쓰기를 연습해 오고 내게 '엄마 나 내일 받아쓰기하니 연습하는 거 도와줘.' 하는 거 보고 다 저런 게 아닌 건 맞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중등 입학 후, 이 아이는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웩슬러 검사 및 상담을 받았고 그 결과는 '엄마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둘째는 불과 3살 때부터 사람을 가렸는데, 어린이집 평가를 보면 3살에는 고집이 세고 다루기 힘들다, 4살은 손이 가는 게 없고 영리하고 착하다, 5살은 영리하고 규칙을 알려주면 잘 이해한다, 6살은 고집이 있고 두루두루 원만하게 잘 지내는 성격은 아니라는 거였다. 어떤 선생님은 이렇게 편한 애가 없다 했고 (말만 그런 건 아닌 게, 단체로 있는 거 보면서 저건 편애 아닌가 싶은 거도 몇 번 봤다) 안 맞는 선생님들은 고집이 있다며 아이를 껄끄럽게 생각했다.
초등 입학 후, 아이의 교우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학폭 걸어야 하나 했다 상대방의 사과를 받고 학교에서 인지하는 정도로 끝난 정도라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초등 3학년에 올라갔고 어른들과의 관계는 나름 좋았지만 또래와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둘째의 문제는 무엇일까 싶어 심리상담을 하기로 했다. 역시나 정보 따위는 없던 나는 지역 카페에 심리 상담 어디가 좋을까요 물어봤고 누군가 지역 복지관에서 해봤는데 좋았다 댓글 달아주셨다. 전화해 보니 주말에도 예약이 가능했다.
아이는 풀배터리를 받았다. 중등에 받은 검사지와 비교해 읽어 보면 웩슬러 검사지는 거의 비슷한 패턴이고, 선생님과 대답할 때 애가 선생님 반응에 민감하다거나 이상한 고집을 부린 거도 비슷했던 거 같다. 심지어 검사지만 읽어도 아니 얘 검사할 때 굉장히 산만했구나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예시. '가족동적그림검사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어떤지 물어보고 올게요'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 그러나 받은 진단은 달랐다.
- ODD with Emotion Problem (반항장애)
- Child-Parents relation problem
이 진단지에 근거해서 놀이치료를 하던 중 놀이치료 선생님이 나를 탐탁하게 보지 않는 눈치여서 왜 그럴까 싶었는데, 어느 날 진료실에서 치료가 끝나고 상담 중 첫째 전화를 받게 되었다. 통화가 끝나고, "죄송합니다. 첫째가 언제 끝나냐 전화를 했네요." 했을 때 놀이치료 선생님의 반응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OO이(둘째)에게도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 적 있으세요?"
"네?"
무슨 말인가 싶어 선생님 얼굴을 보는데, 얼굴이 매우 싸늘했다. 아, 저 사람, 지금까지 내가 애를 방치하고 애를 미워한다 생각하는 거였구나.
둘째는 초등 3학년부터 밖에서 아이 취급을 하는 걸 싫어했다. 사람들이 볼 때 애정표현을 하면 자기를 어린이 취급하는 거니 기분 나쁘다 했다. 집에서는 매일 뽀뽀로 잠을 깨우고, 잘 때 뽀뽀하고, 사랑한다 쓰담쓰담하는 거 좋아해도 밖에서는 손을 잡기만 해도 질색을 했다. 그러니 누가 있는 앞에서는 나도 애정 표현을 잘하지 않았다.
아이는 평가지 등에서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진 않았다. 놀이치료 피드백을 이야기할 때도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평가지만 봐도 나는 애에게 신경 쓸 물리적, 정신적 여력이 없는 사람이었고 (심리평가지 하나 작성했을 뿐, 나는 심리상담사와 별도로 이야기한 것도 없다. 왜 나는 물리적으로 아이를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된 건지 나는 아직 모른다.) 놀이치료 선생님은 내심 나를 애에게 애정 표현을 안 하는 부모라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왜? 나는 맞벌이를 했지만 집에는 애들이 초등 고학년이 될 때까지 입주 시터를 뒀고 애들이 어느 정도 큰 후 육아휴직을 쓰기도 했으며 낮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퇴근 후 식사를 하면 애들과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어주고 산책을 했다. 주말이면 집 앞에 있는 공원이라도 놀러 갔고 아쿠아리움과 놀이공원 정기이용권을 끊어 자주 나가곤 했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아이를 물리적으로 더 신경 쓸 수 있었을까. 일을 한다는 이유로 나는 왜 늘 타인에게 부족한 엄마로 평가되어야 하는 건가.
상담과 놀이치료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이 끝났다. 일하는 엄마의 자괴감만을 남긴 채로.
위의 사건들 이후 나는 다시 강남3구 주민이 되었고, 동네 커뮤니티 글을 읽던 중 조용한 ADHD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커뮤니티 검색을 하던 중, 내가 '엄마 때문, 엄마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을 받은 그때에도 이곳에서는 ADHD 검사를 받아보세요, ADD일 수 있어요 라는 댓글이 달린 것들을 보았다.
똑같은 문제를 물어볼 때, 다른 지역에서는 애들은 원래 그래요, 엄마가 더 신경 쓰세요 라는 답을 얻지만 이 지역에서는 우리 애가 비슷한데 ADHD 진단을 받아 치료 중입니다 라는 답을 얻는다. 그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이 ADHD인가?
지금은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줄었다 해도 아직도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는 걸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신과 진료 기록 남아도 괜찮나요 질문도 꽤 보인다. 그럼 이미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성인이 된 아이들의 부모의 '괜찮다'는 댓글이 달린다. 취업 때 개인 의료 기록 제출 안 합니다, 괜찮아요 우리 애 성인이 되었지만 아무 문제없어요 등등.
강남3구의 부모들은 대체로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다. 학습만이 아니라 교우 관계 등 포함이다. 의사인 부모들도 많아서인지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이 낮은 편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이곳에는 ADHD 진료로 입소문이 난 정신과가 다른 지역보다 많다. 다른 문제인데 ADHD로 오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 집처럼 다른 지역에서는 ADHD 소견을 듣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들은 경우도 있을 거다.
그리고 우리 집의 경우,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아 우리의 문제는 누가 잘못했다 누가 나쁘다의 문제가 아닌 ADHD라 그럴 수도 있는 거라는 걸 알면서 가족 전체가 책임감, 자책감 등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게 문제지, 알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니까.
오남용이 없다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공부량은 상상 초월인데 이 동네는 더 하다. 거기에 애들의 뇌는 약 기운이 떨어지면 스위치 끈 기계마냥 꺼지곤 한다. 약을 먹으면 잠이 안 오는 것도 맞다. 그럼 당연히 오남용도 있겠지.
하지만, 약을 먹이는 부모들의 상당수가 '공부 잘하는 약'이니 ADHD가 아닌데도 그냥 먹인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커뮤니티에 고민글을 올려도 학습 고민만으로 ADHD일 수 있으니 병원에 가보시라는 댓글은 올라오지 않는다. 충동성이 강하다거나 사회성 문제까지 있을 때 보통 ADHD도 생각해 보시라는 댓글이 붙는다. 내 경험으로는, 강남3구의 콘서타 처방건수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의 부모들은 ADHD의 다양한 증상에 대한 조언을 들을 계기가 다른 동네보다 높고, 정신과 진료에 대한 심리적 장벽은 다른 동네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에 살던 지역의 카페를 보면 예전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글에 달리는 댓글 중 ADHD를 언급하는 댓글이 보인다. 여러 기사들과 오은영 박사 포함 전문가들이 제작한 프로그램과 유튜브 등으로 ADHD 관련 인식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