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읽은 동화의 끝은 늘 똑같다. 주인공은 시련을 이기고, 마침내 행복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우여곡절 끝에 아이 둘 다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복용한 첫날부터, 첫째는 나 집중 잘 돼, 심장 좀 빨리 뛰는 듯, 집중 떨어지고 있어 등의 피드백을 줬는데 메틸 페니데이트의 혈장농도 곡선과 피드백과 너무도 일치했다. 농담으로 "너 인간 혈장농도 측정기야? 어떻게 그렇게 반응이 정확하냐." 했을 정도.
둘째는 콘서타는 첫째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를 못 느꼈지만 SSRI인 졸로푸트 복용 후 감정 기복 및 강박이 많이 완화되는 걸 느끼면서, 지금은 감정이 출렁거리거나 큰 이유 없이 불안 초조한 때가 있어도 금세 그 감정이 지나갈 거라는 걸 알기에 예전처럼 폭발하고 충동적으로 뭔가 저지르는 일이 줄었다.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렇게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을. 아이들이 약을 먹기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 분명 발전은 있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과잉행동-충동 우세형 (ADHD-HI) ADHD였으면 자라는 과정에서 기관, 학교 등의 피드백도 빨랐을 거고 치료도 빨리 시작할 수 있었을 거다. 그랬으면 아이들의 습관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약의 도움을 받으며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 교정 등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첫째는 부주의 발현형 (ADHD-PI), 일명 조용한 ADHD이고 둘째도 산만함이 없진 않지만 교사들이 통제할 수 없다거나 남을 방해하거나 학습이 많이 떨어지는 유형은 아니어서 첫째 고등학생, 둘째 중학생이 되어서야 ADHD 진단을 받았다. 우리 때는 고등학생 때 시작된다던 사춘기. 그 사춘기가 중2병이 되더니 이제는 초5병이라는데, 사춘기가 한참 진행 중인 시점에야 진단을 받은 거다.
사춘기의 특징이 뭘까요?
감정기복과 반항심.
부주의하고 눈치가 없고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어렵고 정리정돈이 안 되는 아이들이 약을 먹는다고 갑자기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청소년이 되지 않는다. 약은 이러한 일들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던 뇌의 문제를 완화시켜 줄 뿐이다. 결국 스스로 바뀌겠다는 의지를 갖고 노력을 해야 한다.
부모 말을 잘 따르고 규칙을 잘 지키던 아이들도 반항을 한다는 사춘기에 "얘들아, 이제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봐야지, 정리정돈 습관을 들여아지, 사회성을 좀 더 길러보자." 한들, 흔쾌히 따를 리 없다.
"약 일찍 먹고 할 건 낮에 하고 일찍 자."
"아니 엄마, 요즘 누가 그 시간에 자요. 요즘 애들 다 한 시 두 시에도 깨어 있는데 왜 맨날 나만 12시 전에 자라고 뭐라고 해?"
"걔들은 불규칙적으로 살아도 뇌가 잘 보조해 주겠지만 약을 복용하는 너는 규칙적으로 살아야 약발도 받거든?"
"방에 있는 프린트물 좀 같이 치우자. 방바닥에 널어놓으니 청소를 못 하겠어. 과목별로 분류해 놓아도 왜 다시 다음 날이면 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
"에이. 내가 할 테니 그냥 냅둬. 내가 할게."
"언제? 너 저번에도 네가 치운다 하더니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 시작할 때까지 바닥에 계속 있던데? 결국 내가 너 데리고 치웠잖아."
"이번에는 진짜 치울게. 지금은 좀 쉬고."
어찌나 둘 다 매사에 뺀질대는 지.
원래 모든 애들은 저런 건가, 나도 저랬나 싶은데, 문제는 나도 보통 아이가 아니었던 거 같아서 대조군이 없다. 아니 난 안 저랬다고... 그런데 그거 강박 때문이었던 거 같은데 그렇다고 애들에게 강박을 가르칠 수는 없잖아. 대체 보통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지?
진료 갔을 때, "선생님. 요즘 애가.... 하는데 이거 ADHD 때문이 아니고 사춘기라 그런 거죠?" 했더니 웃으셨다. 선생님, 제가 진짜 구별이 안 되어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어도, 좀 더 희망 있는 미래로 가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