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닮았다? ADHD 닮았다!

아이들의 ADHD는 유전인 듯

by 묘묘

몇 년 전 회사 건강검진 옵션으로 간략한 유전자 검사를 선택한 적이 있다. 검사 결과, 나는 유전적으로 카페인 중독의 확률이 매우 높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서 대학 입학 이후에는 하루 3, 4잔 정도를 매일 마셨으며 임신 기간 및 출산 직후를 제외하고는 커피를 끊지 못했다. 40대 중반에 카페인 중독으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카페인 부족으로 편두통이 발생하는 것을 깨닫고 커피 마시는 양을 줄여 최근은 하루 1, 2잔을 마신다. 최근 역류성 식도염이 생겨 끊어야 한다 생각하지만 쉽지가 않다.

암, 고혈압, 당뇨 등의 유전 등 주요 질병도 아니고 커피를 많이 마시는 정도의, 기호식품 선호도가 알고 보니 유전과 관련이라니. 사람은 생각보다 더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구나 생각했다.


둘째가 ADHD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부모님이 좋은 두뇌를 물려주신 걸 고맙게 생각해" 하셨다. 그때 내심 생각했다.

선생님. 그 좋은 두뇌를 물려준 부모가 ADHD도 물려준 거 같습니다. 이를 어쩔까요.


ADHD를 의심하고 병원 예약을 하기까지 ADHD 관련 정보를 많이 검색했다.

대한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의 ADHD 사이트의 정보글을 기본으로 위키 사이트, 대학병원 홈페이지들의 ADHD 관련 정보, 신문기사들, 유튜브,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 중 ADHD 관련 사례 등을 시간 나면 검색해 보다 나중에는 디시인사이드의 ADHD 갤러리의 글들까지 찾아 읽었다. 여러 정보를 접하다 보면 ADHD와 유전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ADHD는 부모에게서 유전될 확률이 40~60%라 아이가 ADHD인 경우 부모가 ADHD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우리 집은 애 둘이 모두 ADHD 판정을 받았다.

첫째가 진단을 받았을 때까지는, 아니 지금껏 나 나름 잘 살아왔는데? 사회성, 운동능력, 안면인식 장애, 약간의 강박과 같이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한데 나를 보고 ADHD와 연관 지을 사람이 있긴 한가 생각했는데 둘째가 진단받는 순간 내 유전자의 문제를 깨끗이 수긍했다.


당첨이네, 나.




성인 ADHD 관련 유튜브를 보면, 자녀가 ADHD 진단을 받은 후 자신도 ADHD가 아닌가 의심해서 검사해 보니 맞더라는 이야기가 종종 보인다.

우리 집의 둘째는 하루의 감정의 진폭이 출렁출렁 극과 극을 달려 기분이 좋아 돌발적으로 노래하며 춤추다 얼마 후 침울해지기도 하며, 사회성이 부족하며, 운동을 잘하는 편인데 구기종목 등은 매우 약하고, 약간의 강박이 있고,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나는 감정기복이 심해 고등학생 때 별명 중 하나가 '조울증'이었고, 중등까지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이후 나름 사회성을 개발하였으며, 운동을 못하는데 구기종목은 특히 못 하고, 약간의 강박이 있으며,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조용한 ADHD인 첫째는, 말과 행동이 느리고 멍 때리는 시간이 길고, 대인관계에 미숙하고, 집중을 해야 할 때 집중을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면 하고 싶지 않아 울고 불고 난리라 아니 그냥 울 시간에 하면 10~20분에 끝내는데 왜 저럴까 생각을 하곤 했다.

ADHD에 우울증이 있는 둘째는, 뭔가 충동적으로 결정해 실행하는 일이 잦고, 감정기복이 심해 엉엉 울다 10분 후 헤헤거리며 웃는 경우도 꽤 있으며, 소수의 절친은 있으나 또래와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어려워하고, 약간의 강박이 있어 완벽에 집착하다 감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평범한 부모라면 둘 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봤을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첫째를 걱정한 만큼 둘째를 걱정하지 않았다. 둘째는 나와 너무도 닮아서.


나는 매우 어릴 적부터, 내가 뭔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들 나처럼 감정이 순식간에 들쭉날쭉해? 또래와 있으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 준비물을 챙기면 몇 번씩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해? 뭔가 실수를 하면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 뭔가 해야 하는데 뒤로 미루면서 뒤로 미루는 나 자신이 싫어서 스트레스를 극한으로 받아? 다들 우울한 때는 나처럼 세상에 안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바닥을 치는 걸까? 아닌 거 같은데.

크면서 나는 그 감정을 적당히 전환하는 법, 강박과 스트레스를 공부 내지는 업무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법, 대인관계를 위한 요령 등을 적당히 습득했다. 시행착오와 타인의 행동관찰 및 벤치마킹, 자기계발 서적의 몇몇 요령 등을 통해서.



아이들이 ADHD 진단을 받은 후, "미안. 아무래도 유전자는 엄마가 제공한 거 같네." 하니 "아니 우리 집에서 엄마가 가장 정상인 아니야? 아빠가 ADHD인 거 아니고?"라는 반응이었다.

아 그래. 너네는 대인관계라는 게 있는지 의심스러운 극내향인에 충동적으로 화를 내고 대화를 하면 곁가지로 빠지기 일쑤이며 사람 얼굴 구별 못 하고 구기종목 등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는 아빠가 있지.


설마 가족 전체가 ADHD는 아니겠지 하면서 웃어넘겼는데, 요즘에는 우리 가족 모두 네 명 다 소위 말하는 정상범주는 아니란 걸 구성원 모두가 내심 받아들이고 있다. 엄마와 아빠 중 누구 닮았니? 저희는 아빠 엄마 다 닮았어요! 아빠와 엄마가 비슷하거든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은 모든 비법과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으니 좋잖아. 네 명이 대화할 때 서로의 증상을 희화해서 놀려도 서로 마음 상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고.


애들 진단을 받은 후 나도 검사받아볼까 하니 남편이 "알아서 뭐 할래? 너 지금 병원 다니면서 치료받을 정도로 불편한 곳 있어?" 하는데 그 말에 수긍했다. 애들 보니 어차피 약을 먹는다고 생활에 루틴이 저절로 잡히는 것도 아닌데, 설령 ADHD라 해도 강박과 기술의 노하우로 적당히 잘 사는 지금에 만족하고 사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