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 세상의 모든 숨탄것들 위해, 진관우 작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양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영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는 인터뷰팀 ONF입니다.
한 사람의 ON과 OFF를 함께 조명하며
그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ONF의 의미이자 목적입니다.
ON: 직업, 일, 사회적 시선에 노출되는 대외적인 모습의 '나'
OFF: 일을 제외한 일상, 휴식, 다소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2023년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던 어느 겨울날, 숨탄것들의 발자취를 담은 <숨탄것들의 숨결을 따라서> 전시회 현장에서 숨탄것들의 작가이자 대표, 진관우님을 만나 뵈었다.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관람객과 소통하는 호스트의 모습은 추운 날씨가 잊힐 만큼 열정적이어서 그와 대화를 나눌 순간이 더욱 기다려졌다. 과연 ONF는 수많은 시작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안녕하세요 진관우 작님. 인터뷰 시작에 앞서 ONF 구독자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글로 그림 그리는 작가이자 생물 다양성 인식 제고를 위한 팀, 숨탄것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진관우입니다.
숨탄것이라는 단어가 꽤나 생소하게 들리는데요. 숨탄것들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숨탄것은 한자어인 ‘동물’의 순우리말입니다. ‘숨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여러 가지 동물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사실 동물 외에도 숨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많잖아요? 식물이나 미생물도 숨을 쉬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을 붙여서 이 세상에 숨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숨탄것들을 통틀어서 다양한 생물 다양성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 동물을 한글로 그려낸 작품이 숨탄것들의 시작이자 정체성이죠, 멸종위기 동물과 한글을 어떻게 연관 지어 작품으로 창작하게 되신 건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온라인 키즈 클래스를 진행한 적 있었는데, 그 클래스를 진행하면서 나중에 전역해서는 멸종 위기 동물 관련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그림을 활용해서 클래스를 운영하면 좋을 것 같아서 우리에게 친숙한 반달가슴곰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반달가슴곰의 귀가 한글의 비읍같이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반달가슴곰을 그냥 그리는 게 아니라, 한글로 그린다면 아이들에게도 더 신선하고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글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멸종 위기 생물을 위한 숨탄것들의 활동이 한글을 알리는데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어요. 2023년에는 올해의 우리말 사랑꾼이라는 상을 수상하시기도 하셨고요. 한글과 관련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불리지 않음으로써 사라지는 이름들에 대한
인식을 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연구했던 동물들 중에 ‘노랑배 청개구리’라는 친구가 있어요. 배가 노란 청색 개구리라서 순우리말로 노랑배 청개구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어요. 이렇게 동물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순우리말 이름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런데 모르니까 불리지 않게 되는 거죠. 그래서 숨탄것들의 그림에 그들의 이름을 실음으로써 그들에게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랑배청개구리 같은 다양한 생물의 이름들을 어떻게 다 외우시는지도 궁금해요.
의식적으로 공부를 하는 거죠. 다양한 생물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 곳곳으로 답사를 다니다 보면 결국 아는 만큼 보여요. 내가 이 친구의 이름을 모르면 발견하고도 그냥 놓치게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답사 전에는 최대한 조사를 많이 하고 가요. 공부를 하고 가면 답사지에서 그 친구들을 봤을 때 더 반갑기도 하고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유명한 시구에서 알 수 있듯 이름은 타인에 의해 명명되는 순간부터 그 대상에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이름은 불리는 것이 곧 쓰임새일 테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실재하는 대상의 인식도 이름에서부터 시작되며,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것은 실존을 위협받는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숨탄것들에서 멸종 위기 동물의 그림을 한글로 그리는 것도 사라져가는 그들의 이름을 불리게 해줌으로써 그들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이름’ 너무도 당연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답변이었다.
최근 발간된 숨탄것들의 신간인 [지구의 숨결 1권]에 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겠죠, 표지부터 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적인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구의 숨결 1권]은 시베리아 호랑이, 흰올빼미와 같이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멸종 위기 동물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숨탄것들의 첫 저서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환경을 주제로 한 책이니까 쓰레기와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고 여러 방법을 찾다가 친환경 종이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E-북이 가장 적합한 선택지였지만, 개인적으로 어린 친구들이 책을 보려면 직접 펼쳐봐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출판사에서 많이 도움을 주신 덕분에 감사하게도 FSC 인증 표지를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적인 부분 외에 책을 준비하며 내용적으로 신경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내용적으로는 일단 최신 이슈를 다루고 싶었어요. 환경 관련 이슈들이 생각보다 급박하게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이슈가 갱신돼서 나오는 책들이 되게 적어요. 그래서 동물 쪽에서 만이라도 내가 최신 이슈들을 다루자는 생각이 첫 번째였습니다. 두 번째는 동물들에 대한 정보에 신뢰도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각종 논문과 해외 보건 센터 내용을 통해 신뢰도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열심히 했습니다. 현재 작업 중인 2권에서는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해요. 정보가 없는 친구들이 많아서 고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완성되면 친숙하게 알고 계시는 동물들도 많을 거예요. ‘얘도 멸종 위기라고?’ 하는 친구들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숨탄것들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데요. 진관우 작가님께서 교육 현장에 나가실 때 중점적으로 신경 쓰시는 부분은 뭘까요?
교육마다 성격이 많이 다르긴 해요.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는 최대한 많은 생물들을 알려주는 게 핵심이에요. 그 지역의 깃대종을 비롯해서 해당 교육 테마에 맞는 생물들을 많이 보여주고 친구들이 직접 한글 동물 그림을 그리면서 그 동물을 기억하게끔 하는 게 주된 목적이에요.
반면 성인 대상 교육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환경적인 문제는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된다는 점을 알리는 걸 중점적으로 신경 써요. 성인분들을 대상으로 환경보호 교육을 하면 온실가스, 탄소 중립 이런 키워드들은 많이 아시는데 생물 다양성은 항상 배제되거든요. 환경 문제들 간에는 유기적인 연결이 굉장히 큼에도 불구하고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은 모르는 분들이 되게 많아서 환경 문제들 간의 연결을 시켜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깃대종 : 한 지역의 생태계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동ㆍ식물
바이오환경과학과를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은데 그 시작점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사실 시작점은 환경이 아니라 동물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로보트 가질래, 자동차 가질래?’라고 물어보면 동물 장난감을 골랐다고 해요. 그래서 처음엔 수의사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해부 실습을 하는 중에 ‘나는 동물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고 싶은 건데 왜 내가 동물들한테 칼을 대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동물과 관련된 다른 길을 찾다가 최재천 교수님과 제인 구달 박사님 강연을 보고 생태학이랑 동물 행동학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쪽으로 진로를 정했어요. 이후에 멸종 위기 동물 관련 활동을 하는 라온하제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공부하다 보니 결국 제가 좋아하는 동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동물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지켜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환경과학과에 진학하고 어떻게 환경을 지킬 수 있을까를 공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반달가슴곰의 귀에서 자음ㅂ의 모습과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리셨잖아요. 어쩌면 사소한 발견이었는데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발상의 전환이 흥미롭습니다. 평소에 도 창의적인 시도를 많이 하시는 편이셨나요?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의미 부여랑 링킹(linking)을 좋아했어요. 예를 들어 조원들의 공통점을 연결해서 조 이름을 짠다거나 일상의 소재에 의미를 부여해서 시를 쓴다거나 이런 것들을 아직도 좋아해요.사실 처음 반달가슴곰 작품을 그렸던 시기가 군대 가기 한 달 전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재미있고 흥미로워 보이기도 했겠죠. 그래서 작은 생각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저희 조 이름은 뭘로 할까요?’라는 질문 뒤엔 항상 눈치싸움이 뒤따른다. ‘흐음,,’ 하며 골똘히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어 결국 조별 활동이 끝난 마지막에 정해지는 조 이름. 그가 조 이름을 예시로 들어 설명했을 때, 역시 발상의 전환이라는 건 엄청난 잠재력과 능력이 필요하다기보단 대상에 대한 관심 어린 눈길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숨탄것들을 함께하고 있는 팀원들을 모을 때 가장 고려한 점은 무엇인가요? 환경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다방면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팀원을 모을 때 이 분야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본 것 같아요. 제가 5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으려 했어요. 순수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되게 마음이 잘 맞아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팀원들의 전공 분야는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문이과, 예체능이 다 섞여 있어요. 제가 한글 동물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분은 미생물을 연구하고 또 어떤 분은 자연의 소리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요. 결국엔 순수한 마음이라는 공통점으로 다양한 사람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최근엔 북극을 다녀오셨던데 북극처럼 언젠가 꼭 방문해보고 싶다 하는 곳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안 그래도 2024년 후반기쯤 세계 일주를 떠날 예정이에요. 그중에서 남태평양이랑 마다가스카르를 꼭 방문해 보고 싶어요. 2023년에 북극에서 빙하가 녹는 모습을 봤으니 2024년에는 남태평양에서 다시 차오르는 걸 보고 싶다는 게 첫번째고요. 마다가스카르는 이번에 지구의 숨결 2권을 준비하면서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마다가스카르는 섬이 굉장히 커서 사방이 완전히 다른 식생을 가지고 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도 정말 다양해요. 책을 준비하면서 사진으로만 봤는데도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그래서 2024년에는 이 두 곳을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보지 못한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도 많은데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모르는 생물은 또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ON, ONF, OFF까지 질문이 꽉 찰 만큼 다양한 시도를 망설이지 않고 시작하시는 것 같아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걱정보단 기대를, 단념보단 도전을 즐기는 진관우에게 시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시작, 비로소 시에 만들 작자로 알고 있거든요. 단어 뜻 그대로 무언가 만들기를 시작한다는 의미잖아요. 그런데 뭔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는 건 어찌 되었든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작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들은 모두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흑역사도 역사라고 하잖아요.
저는 다양한 경험을 물감에, 저 자신을 팔레트에, 제가 그려나갈 미래를 스케치북에 비유하고 싶어요. 팔레트에 물감이 많을수록 스케치북에 더 다채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잖아요. 결국에는 나라는 사람에 내재된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면 더 다채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렇기에 시작은 더 많은 물감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촉발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ditor’s Note
최근 다녀온 북극 여행에서 우여곡절 끝에 북극여우를 발견했던 일화를 들려주던 진관우 작가는 마치 동물 장난감을 고르던 5살 꼬마 아이처럼 신이 나 보였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다는 말을 줄곧 믿어 왔었는데 내가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진관우 작가는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해버리는 길을 택한 것만 같았다. 다양한 생물들을 소개할 때는 신이 난 어린아이 같다가도 숨탄것들의 가치관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사뭇 진지해지는 진관우 작가의 모습을 보며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에 동감할 수 있었다.
자신을 팔레트에 비유한 마지막 답변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실패해도 괜찮다, 시작을 주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탁월한 비유로 유쾌하게 전했던 그의 말처럼 물감이 많을수록 우리는 다채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어떤 색의 물감이 짜일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의 팔레트엔 검은색 물감도 필요하니까.
진관우 작가와 숨탄것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이 궁금하다면?
진관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
https://youtu.be/tc-XSLXk1LE?si=Uu_y9KNrPTT6y7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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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