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6: 글쓰기로 리추얼을 실천하는 심리 상담가 슝슝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양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영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는 인터뷰팀 ONF입니다.
한 사람의 ON과 OFF를 함께 조명하며
그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ONF의 의미이자 목적입니다.
ON: 직업, 일. 사회적 시선에 노출되는 대외적인 모습의 ‘나’
OFF: 일을 제외한 일상, 휴식, 다소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벚꽃이 만연하던 4월, 기다리던 만남을 향한 발걸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리추얼 메이커’라는 신선한 직업, 심리상담가라는 늘 궁금하던 직업 그리고 작가라는 동경의 직업을 모두 가지고 계신 분과 인터뷰를 통해 만나 뵐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 일타 삼피, 세 마리 토끼를 잡은 것처럼 정말 큰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꿈 안에서 살고 있다고 말씀하시던 슝슝님과의 대화는 꿈결같이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이따금씩 파도같이 밀려오는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슝슝님의 직업 때문이었을까, 2시간가량의 대화 동안 슝슝님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셨다.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확실하고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의 답변들이 궁금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순간마다 나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부풀기도 했다.
봄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던 그날의 날씨처럼, 따듯하고 다정했던 슝슝님과의 대화가 ONF 독자분들에게도 무사히 닿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슝슝님. ONF 독자분들께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6년 차 심리상담가이자 마음 성장 플랫폼 ‘밑미’에서 4년 차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슝슝입니다. 2020년에 첫 책을 출간한 이후로는 작가로도 지내고 있어요.
슝슝님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요.
슝슝을 한 문장으로 풀어내면 ‘마음껏 슝슝 자유롭게 날아라.’ 예요. 슝슝으로 사는 순간만큼은 좀 더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닉네임입니다. 제게 슝슝이란 이름은 내가 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겠다는 선언 같은 거예요.
‘리추얼’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리추얼 메이커로서 리추얼이란 어떤 개념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리추얼이란 ‘습관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에요. 인간은 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존재잖아요. 좋은 습관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상으로 그 행위가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면서 더 큰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슝슝님께서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을 시작하신 개인적인 계기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저는 일상에서의 작은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리추얼의 가치를 굉장히 높게 추구하는 성향이에요. 먼 미래에 있을 성장, 성숙보다는 현재에 집중해서 지금 내게 의미가 있고, 즐거운 것을 누리고 살자는 게 저의 모토이다 보니 리추얼이라는 개념이 저와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밑미와 함께하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당시 스타트업이던 밑미에서 마침 심리상담가와 협업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고 저의 성향을 잘 알고 있던 동료 상담가의 추천으로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슝슝님께서 진행 중이신 리추얼 프로그램 중 ‘매일 다정한 쪽지 쓰기’라는 프로그램이 인상 깊었어요. 간단한 소개와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신 계기를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실 제가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은 ‘나를 껴안는 글쓰기’ 예요. 4주 동안 20개의 주제를 가지고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응원하는 글쓰기를 리추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죠. 그런데 주제가 정해져 있다 보니 4주 동안 프로그램을 참여한 뒤에는 습관으로 이를 지속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속가능한 리추얼 프로그램을 고민하다 만든 게 ‘매일 다정한 쪽지 쓰기’에요.
이 프로그램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 스스로 매일 다정한 쪽지를 남기는 리추얼’이에요. 리추얼과 심리 상담의 정신이 ‘내가 받고 싶은 걸 남에게 요구하지 말고 나 스스로에게 해주자’거든요. 그래서 매일 다정한 쪽지 쓰기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이죠.
슝슝님의 리추얼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슝슝님께서 프로그램 참가자분들이 꼭 얻어 갔으면 하시는 것이 있다면요.
제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연민’이에요. 여기에는 나를 향한 연민, 남을 향한 연민이 모두 포함돼요. 연민이란 누군가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잖아요. 우리는 누군가가 안쓰럽다고 여겨지면, 더 관대해지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친절하게 행동해요. 내가 그 사람보다 나은 존재라서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에서요. 저의 리추얼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연민을 가지고 관대하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나 자신과 서로를 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 우리를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고 믿어요.
의외의 답변이네요. 저는 가끔 자기 연민에 빠지는 순간이 있으면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라며 그 감정을 덜어내려고 노력하거든요. 저처럼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밑미에는 열심히 살면서 리추얼까지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모여요. 그래서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리추얼을 하기도 하고요. 어떤 분은 리추얼을 갓생의 일환처럼 여기기도 하세요. 그런데 나를 돌보는 것까지도 일로 여기는 것이 저는 조금 짠하기도 해요. 나에게 엄격한 삶 속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이 지치고 번아웃을 겪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 해, 나만 힘든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반대편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힘든 나를 조금만 가여이 여겨주라고, 나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다고요.
4년 차 리추얼 메이커로써 좋은 리추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좋은 리추얼은 ‘나에게 맞는 리추얼’이라고 생각해요. 밑미 내에서만 해도 피아노 음악 감상, 요가, 달리기, 제철 음식 먹기 등 수십 개의 리추얼들이 있어요. 다양한 걸 시도하면서 나에게 잘 맞는 것을 찾아다니거나, 다양한 경험 자체를 즐기는 리추얼 여행자분들도 많으시고요. 할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리추얼, 계속하게 되는 리추얼이 나에게 맞고, 좋은 리추얼이죠.
말씀해 주신 것처럼 다양한 리추얼을 시도하면서 나에게 잘 맞는 리추얼들을 많이 만들어 놓을수록 나의 주변으로 안전장치들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굳이 하나에 깊게 빠지지 않더라도 다양하게 발을 걸쳐두면 더 다채로운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탐색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수 있죠. 저도 하나의 리추얼을 계속하는 것보단 새로운 걸 탐색하는 타입이에요. 한 분야에 몰입해서 깊게 파고드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스페셜리스트’가 있다면 반대로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 연결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제너럴리스트’도 있어요. 둘 중 정답 같은 건 없어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몰입하는 삶을 사는 스페셜리스트가 맞는 사람이 있고 탐색하는 삶을 사는 제너럴리스트가 맞는 사람이 있는 거죠. ‘몰입하는 삶’과 ‘탐색하는 삶’ 중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중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해서 둘 사이에서 내 위치를 잡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터였을까,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선 막막하던 길에 이정표가 세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탐색은 늘 몰입을 위한 과정이라고만 생각해 ‘왜 나는 한 가지에 몰두하지 못하는 걸까’라며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들을 내려놓은 채, 탐색 자체로도 내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따금씩 인터뷰이의 답변을 듣다 보면 이런 번뜩이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상담 수업에서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상담가는 정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답은 내담자 스스로에게 있다. 상담가는 내담자가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이다.’
ONF 또한, 독자분들께 답지가 아닌,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기를, 번뜩이는 순간을 전해줄 수 있기를 늘 바라고 있다.
벌써 독립 출판으로 4권의 책을 내셨어요. 처음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을 기억하시는지요.
사실 책 질문은 제게 ON보다는 OFF에 가까워요. ‘취미로 글을 써야지’라고 마음먹은 뒤에야 책을 낼 수 있었거든요. 저는 국문과를 전공해서 글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늘 글을 쓸 때 ‘나는 전공자니까 더 잘 써야 해’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어요. 그래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심리 상담으로 방향을 바꿨지요.
그런데 코로나로 상담 일이 줄면서 시간이 많이 생겼고 당시에 유튜브로 낭독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영상 대본을 쓰듯이 단상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았고 그 글들을 모아서 <슬프고 야하고 다정한>이라는 첫 번째 독립출판물을 만들게 된 거예요.
제가 독립 출판 수업 들으면서 다른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너무 좋아서 품고 있는 말이 있어요. ‘열 번째 책은 명작을 쓸 테니 아홉 권까지는 그냥 써봐라.’ 예요. 비록 열 번째 책이 명작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나는 그동안 열 권의 책을 쓴 사람인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성장하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거죠. 물론, 명작이면 더 좋겠지만요. (웃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슝슝님께서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정답은 없겠지만, ‘나를 잘 알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떤 답변을 하실지도 궁금해요.
‘내가 이걸 진짜 좋아하는구나’라고 운명처럼 깨닫는 순간이 오기만을 바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내가 하는 여러 활동 중에 ‘이거 좀 재밌네, 더 궁금하네?!’ 이런 생각이 드는 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나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고 계속해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는데 내가 그걸 계속하고 있다든지, 그걸 할 때마다 즐겁다든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단서들이거든요.
저는 이런 단서들을 바탕으로 내가 지금 시작할 수 있는 크기에서 뭐든 해 보라고 하고 싶어요. 현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5년, 10년 뒤에 똑같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요. 그런 경험들을 쌓아가는 것도 나를 알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심리 상담과 글쓰기를 연계한 다양한 활동을 하시잖아요. 슝슝님께 글쓰기의 의미도 조금 특별할 것 같아요.
글쓰기는 제게 가장 편안한 표현 방법이에요. 대화하는 것보다 글로 주고받는 게 제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더 편하고, 글로 만난 사이가 말로 만난 사이보다 더 애틋하기도 해요. 저에게 실시간적인 대화는 조금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라서, 내 마음을 내가 원하는 만큼 정리하고 고민해서 나만의 정제된 표현으로 할 수 있는 글이 저에겐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방식이기도 해요. 물론 저도 마감이 있는 글을 쓰거나 계속 글을 퇴고하는 과정은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요. (웃음)
16년 차 상담가로서 지금까지 쌓아온 내담자와의 경험이 개인적으로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상담을 통해 제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삶을 아주 심도 있게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담가라는 직업이 정말 고마워요. 그 과정을 거치며 제 삶의 폭이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부장제에 충실한 경상도 문화에서 자란 제가 가부장제로 고통받고 피해를 당한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페미니즘, 여성 인권 등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해외파, 국내파도 아니고 동네파라고 말하곤 하는데, 상담을 통해서는 동네파인 저도 다양한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어요. 장애, 동성애 등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이만큼이나 심도 있게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죠.
해외파, 국내파도 아닌 동네파라는 신박한 표현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슝슝님께서 단순히 동네파에 그치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도 벽을 지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기꺼이 변화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글로벌적 태도가 아닐까.
계속해서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을 하시는 슝슝님께서는 일 외의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혼자만의 재충전 시간을 선호하시는지,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기를 선호하시는지요.
특정한 방식을 선호하기보단 그때그때 원하는 방식을 택하는 편이에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종종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럴 땐 혼자 영화관에 가거나 웹툰을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지는 거죠.
늘 내가 지금 뭐가 결핍돼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관적으로 혼자만의 시간, 함께하는 시간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순간에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 하니까요.
직업 특성상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 본인에게 고민이 생길 때는 주로 어떻게 해소하는지 궁금해요.
주변 친구들이 상담가다 보니 친구들에게 고민이나 힘든 얘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수 없는 순간들에는 수영을 하는 편이에요. 기분 좋게 땀 흘리면서 물에 뜨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내 고민이나 상념들을 생각할 틈이 없어요. 대부분의 고민이 그 고민에 휩싸이는 순간이 지나면 사실 별거 아니기 때문에 좀 괜찮아진 마음이 들면 일단 한숨 자고 보기도 하고요.
땀을 흘리는 신체 활동, 숙면, 맛있는 음식 먹기와 같은 일상적인 고민 해결 방법에는 어쩌면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인간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겪어온 시행착오들의 최종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에디터 본인은 주로 고민이 있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면 일기장 속에 솔직한 감정, 생각들을 적어 내리며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해내곤 한다.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간 머릿속은 비가 갠 하늘처럼 차차 맑아진다.
자신에게 맞는 고민 해결법을 찾는 것은 결국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일이다. 다수의 검증된 고민 해결법도 좋고,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라도 좋다. 내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기특하게 여겨주는 마음이 중요할 테니까.
보드게임이 취미 셔서 종종 오프라인 모임까지 주최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슝슝님께서 보드게임에 빠져들게 된 매력은 무엇인가요?
보드게임은 굉장히 부담 없는 만남이에요. 대화의 주제나 관계의 역동을 살필 필요가 없고 단지 서로가 상대방의 플레이어가 되어주는 거죠. 한편으로는 보드게임이 굉장히 안전한 역할 놀이 같기도 해요. 보드게임 모임에서 만난 분들은 저를 굉장히 장난꾸러기에 다른 사람 놀리기 좋아하고, 거짓말도 잘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저를 리추얼 메이커로, 혹은 상담가로 알고 있는 분들이 저를 보는 시선과는 굉장히 다른 거죠. 상담사는 다른 사람에게 이상적인 삶이나 관계의 모범을 요구받는 직업이기도 한데 보드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서 좋아요. 보드게임 속에서는 지구를 구하는 일부터 도박이나 거짓말, 고백까지 일상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도 마음껏 할 수 있어요. 자주 짜릿하고 조마조마하고 무엇보다 아주 신나는 취미예요.
슝슝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시선으로 삶을 대하고 싶으신가요?
연민의 시선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민의 시선으로 나, 나의 삶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어요. 더 시야를 확장해서 동식물이나 지구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 다 애쓰면서 존재하고 있으니 해 끼치지 말고 도우며 함께 살아야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연민의 시선,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게 지금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인 것 같아요.
<Editor's Note>
‘시선’ 프로젝트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인터뷰 진행 횟수가 쌓일수록, 인터뷰이 고유의 시선을 기대하기보단 답변을 예상하며 질문을 구성하는 일이 많아졌다. 혹자는 이를 노하우가 쌓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늘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슝슝님의 답변은 항상 나의 예상치를 벗어났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답변들은 나를 놀라게 하기도, 웃게 하기도 때론 감동시키기도 했다. 의외의 답변을 들을 때면 그간 꾸려온 내 나름의 사고 체계에 틈이 생기고, 미세한 빛줄기들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ONF의 이번 프로젝트 ‘시선’은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무수한 개인들의 차이점, 의외성, 고유함 등에 대한 이야기로 기사를 적어 내리다 보면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공통점은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것뿐이라는 말에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다름’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다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더 다채롭고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엔 우리의 다채로움을 더 빛내줄 거라고 오늘도 난 우리의 다름에 기대를 걸어본다.
격주 목요일 오전 8시, ONF "시소레터"가 새롭게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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