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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F Feb 02. 2024

낙타는 포기하지 않는다

episode 5: 비효율의 낭만을 좇는 연극 연출가, 김남언 대표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양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영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는 인터뷰팀 ONF입니다.


한 사람의 ON과 OFF를 함께 조명하며

그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ONF의 의미이자 목적입니다.


ON: 직업, 일. 사회적 시선에 노출되는 대외적인 모습의 ‘나’

OFF: 일을 제외한 일상, 휴식, 다소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Episode 5 : 초록빛 나라를 향한 ‘시작’



그들은 스스로를 낙타에 비유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동물로 낙타를 꼽는 이는 정말 드물지 않은가. 혹시 그가 낙타에 대한 조금은 독특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 잠시 생각했다. 과연 그는 내게 단봉낙타와 쌍봉낙타의 차이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연극, 예술,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는 생소한 낙타만큼이나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는 어떤 점에서 낙타와 닮아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프로젝트 그룹 낙타에서 공연 연출가이자 문화기획자로서 다양한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남언입니다.



What is your ON?



Q. 프로젝트 그룹 낙타는 어떤 팀인가요. 또 ‘낙타’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 그룹 낙타는 연극, 뮤지컬과 같은 공연을 만드는 창작 집단으로 2019년도에 만들어져 벌써 5년 정도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저희 팀은 연출가이자 대표인 저를 비롯해, 무대 디자이너, 여러 분야의 감독과 PD, 세 명의 배우, 그리고 포토그래퍼 등으로 이뤄져 있어요. 100명 남짓의 다른 대규모 공연 팀에 비하면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에요.


낙타라는 이름은 어렸을 때 읽은 <아기 낙타와 초록빛 나라>라는 동화책에서 따왔는데요. 아기 낙타가 초록빛 나라를 찾아 떠난 엄마를 만나기 위해 사막에서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이야기예요. 가끔 연극계가 처한 환경이 꼭 사막 같다고 느껴요.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수익과 보상을 얻을 수 없는 기형적 구조를 띠고 있죠. 이런 사막에서는 아무리 강한 육식 동물이라도 버티기 힘들어요. 오직 낙타처럼 묵묵하게 제 길을 걸어가는 동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도달할 초록빛 나라를 향해 척박한 연극계를 끝까지 헤쳐 나가보자는 각오로 짓게 된 이름입니다.



Q. 그간 해 온 여러 작품 중에서 팀 낙타에게, 그리고 대표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작품 하나씩 소개해 주세요.


낙타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공연은 제주 해녀의 항일운동을 담은 연극 <불턱>이에요. 처음 작가님이 이 작품의 연출을 제안해 주셨을 때 흔히 아는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아닌 숨겨진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갔어요. 그게 민초이자 여성들의 저항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웠고요.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한 실화 극인 만큼 고증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어요. 열심히 논문을 찾아보고, 10번 넘게 제주도를 방문하며 모든 불턱을 찾아다녔죠. 그런데 점차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이지 연극이 아니잖아요. 다른 무엇도 아닌 연극으로 이것을 보여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지요. 전위적인 표현과 담담한 전달 사이에서 연극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그런 계기가 되었습니다.  


*불턱 – 해녀들이 불을 지펴 추위를 녹이거나 잠수복을 갈아입으며 쉬는 장소


저에게 개인적으로 뜻깊은 작품은 <나를 불러내>라는 연극인데요. 커피를 좋아해서 어른이 되어 카페를 차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 생기는 힘든 지점들을 그려내고 있어요. 이 작품을 연출할 당시가 저에게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에 부치던 시기였는데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연극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보니 관계 속에서 부딪히는 때가 종종 있어요. 친한 사람들과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고 때로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조금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죠. 그래서인지 주인공에게 제 모습을 투영하며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네요.  


2022년작 <불턱>, 2021년작 <나를 불러내>


연출 중인 김남언 대표



Q. 창작 연극부터 뮤지컬까지, 또 2024년에는 스페인의 극작가 팔로파 페드레로의 자전적 희곡을 번역해서 올리려고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이렇듯 다양한 작품과 활동을 기획하고 시작할 때 염두에 두는 기준이나 가치가 있다면요?


관성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면 곧 관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지금까지 해 온 것이고, 앞으로도 별일 없이 해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그저 모든 게 당연해져 버리죠. 그런 안일함 속에서 작품을 하다 보면 결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 그렇기에 새로운 작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우리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끊임없이 되뇌죠.



그의 작품에 대해 낙타스럽다, 혹은 김남언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것이 그를 가장 어지럽히는 고민이라고 답한다. 꾸준히 새로운 걸 시도하기 때문에 하나의 고유한 색깔을 형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색을 소화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색깔일 수도 있지 않냐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낙타가 어쩌면 초록색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꼭 그들이 향하는 곳이 초록빛 나라여서만은 아니다.


초록은 가장 선명하면서도 가장 다채로운 색이다. 자연의 생기로움을 머금은 초록은 언제라도 희망을 상상하게 하는 색으로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사람의 이야기를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그려내는 그들의 작품을 보며 느낀 감정이 바로 그랬다. 그러나 동시에 차분하고 깊으며 때로는 강렬하기도 하다. 오직 노란색과 파란색을 혼합해야만 나올 수 있는 초록은, 5년간 꾸준히 발맞추어 무대의 조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 융화해 온 팀 낙타가 만들어낼 유일함을 닮아있다. 초록이 가진 원만한 빛깔처럼, 이들 역시 낙타만의 짙은 다양함을 개척하기를 바란다.



What is your ONF?



Q. 연극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처음 연극을 시작한 때부터 낙타를 창단하기까지 어떤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 있나요. 또 어떤 어려움들이 따랐는지요.


연기를 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소속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티비 광고를 통해 데뷔했죠. 그러다가 스무 살 때 처음 대학에서 연극이라는 장르를 경험했는데요. 그간 해 온 매체 연기와 연극에서 사용하는 근육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영화의 연기가 100m의 단거리 질주라면 연극은 마라톤 같아요. 슛이 들어가는 순간 찰나의 집중력으로 감정을 끌어내는 매체 연기와 달리 연극에서는 오랜 시간의 호흡이 필요해요. 그때, 내가 배우로서 연극 무대를 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연극이 좋았기 때문에, 배우 대신 연극 연출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 거죠.

연출을 공부하다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여느 졸업생들처럼 고민이 많았어요. 다른 극단의 연출부로 들어가 선배님들의 밑에서 더 배워 나가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던 찰나에 주변 동료와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저는 그저 남의 아래에서 배우고만 있기에는 스스로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아 보인다고요. 하고자 하는 게 많은 사람이 큰 나무 아래에 머물다 보면 더 큰 나무가 되지 못한다고 했죠. 그 말을 듣고 나니 내 팀을 꾸려서 내 얘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그렇게 낙타를 만들게 된 거예요.



Q. 창작에 대한 욕심과 더불어, 창작 활동을 위한 현실적인 것들을 함께 고민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연출가이자 연극인으로서의 욕심과 대표의 책임이 부딪힌 적은 없었나요?


연출가 김남언과 대표 김남언은 거의 항상 싸우고 있어요(웃음).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그걸 다 하려면 그만한 돈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보통은 연출가 김남언이 대표 김남언을 이기더라고요. 일단 하고 싶은 예술부터 하고, 돈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라도 모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요. 제 꿈은 연극인이지 대표가 아니잖아요.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이 분명한데 단지 돈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음에도 현실적인 이유로 타협했다며 저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사비를 들이기도 하고 많은 것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끝에서는 하고 싶은 걸 해야만 직성이 풀려요.


팀 낙타의 김남언



Q. 사막 같은 연극계를 묵묵히 버텨내게 해주는 힘은 무엇인가요. 끝내 초록빛 나라를 기대하게 되는 건 연극의 어떤 매력 때문일지요.


연극이란 참 비효율적이에요. 약 1년의 기획 과정을 거쳐 두, 세 달 매일 모여 연습하고 쏟아부은 시간들이 겨우 5회 남짓의 공연으로 휘발되어 버리죠. 공연장에 보통 150개의 객석이 있다고 생각하면 총 750명의 관객만을 만날 수 있어요. 이후에 이 작품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죠. 영화처럼 찍어 놓고 두고두고 볼 수도 없잖아요. 그런 점이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바보 같으면서도, 또 그래서 지극히 매력적이에요.

비효율의 낭만이랄까요.


우리가 유튜브로도 충분히 옛날 노래들을 들을 수 있지만 굳이 LP 바에 가서 LP를 꺼내 듣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기어코 먼 길을 찾아가서 오래된 것을 끼워 넣는 그 순간의 낭만을 기대하는 거죠. 이 공연장, 이 관객,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말 이 하나뿐인 순간이 곧 연극의 미학인 것 같아요.



Q. 더 새로운 것들, 더 다양한 것들을 연출하기 위한 고민이 끊이질 않으실 것 같아요. 창작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더 나은 창작자가 되기 위해 어떤 힘을 길러내고 싶으신가요?


창작의 힘은 거창한 곳, 새로운 곳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에 깃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거나 외면하던 것들을 새로운 관점과 진실한 시선으로 대면할 때 영감이 오지요. 당장 우주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고 생각해 봐요. 우주에 대해 아는 것도, 경험한 것도 없는 상태에서 써 내려갈 피상적인 상상의 이야기가 과연 사람들에게 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요. 먼 우주의 이야기가 와닿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 다름 아닌 사람의 감정과 깨달음이 울림을 주는 것이죠. 제가 자전적 이야기나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역시 그 이유예요. 부모님, 반려견, 친구 등 모든 일상적인 소재 안에 무한한 깊이가 있어요.

앞으로 진실한 얘기들을 더 많이 그려내려면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할 것 같아요. 다양한 작품을 기획해 보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그들의 관점과 생각을 넉넉히 품고 싶네요.


창작에 몰두한 김남언 대표


같은 공연이라도 매회 객석의 분위기는 무척 다르다고 한다. 그들과 어떤 호흡을 주고받는지에 따라 무대의 전개와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 일회성의 전율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리워하는 이들만이 다시 한번 공연을 찾아가거나, 혹은 직접 공연을 만들어낸다.


우리 마음 안에도 미묘하게 다른 수천, 수만 개의 감정들이 매일 떠밀려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부분이 놓치고 마는 그 감정들을 지긋이 어루만진 후에 다시 한번 펼쳐놓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로, 몸짓으로, 무대로.


김남언 대표는 그렇게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우리가 놓치고 만 감정들을 무대 위에 다시 올려놓는, 그렇게 우리가 잃고 살아가는 비효율적인 삶의 낭만들을 재현하는 사람이다.  



What is your OFF?


 

Q. 평소 가장 좋아하는, 혹은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장기하예요. 특히 <얼마나 가겠어>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의 곡에는 장기하만의 철학이 담겨있어서 좋아요. 고유한 철학과 생각을 담은 노래들은 자칫 듣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요. 연극 작품을 만들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도 그것인데요. 관객들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게 맞아’라고 충고하는 듯 보이지 않아야 하죠. 장기하는 그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전혀 강압적이지 않아요. 가끔은 이미 냈던 노래에 대해서 ‘아 그때 이건 잘못 생각했더라고!’ 하며 다른 노래에서 고백하기도 해요. 그런 변화무쌍한 모습마저 너무 솔직하고 재밌지 않나요.


연극계에서는 고선웅 연출가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존재하는 민간 극단들 가운데 가장 초록빛 나라에 근접한 극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단원들이 큰 어려움 없이 오직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고, 그렇게 작품에 참여하는 모두가 창작가로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에 걸맞게 작품 자체도 정말 훌륭하죠. 너무나 닮고 싶은 연극인이에요.



Q. 대표님에게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대표님을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어떤 상황 속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시죠?


연극 작업을 할 때도 행복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좋은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좋은 술을 함께 페어링하며 즐길 때가 인간 김남언으로서 가장 행복하고 힐링되는 순간인 것 같네요.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서인지 뜨거운 우동에 시원한 생맥주 생각이 나더라고요. 하하하. 그리고 요즘 한창 빠져있는 주짓수를 할 때도 건강한 마음이 가득 들어요. 원래 취미를 잘 지속하지 못하는 편인데요. 한 번 확 빠졌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복싱과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해 온 덕분인지 주짓수만큼은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건강한 몸이 있어야 건강한 정신이 드리우니까요


저는 반드시 행복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타입은 아니에요. 오히려 평생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평생 행복만 하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낄까 싶어요. 어둠이 있어 빛이 있듯이, 가끔은 고된 순간도 있어야 행복이 실감 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바쁜 삶 안에서 소소하게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술로 생기를 더하는, 그런 시간이 행복으로 와닿아요.


주짓수 중인 김남언 대표


그렇다면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하세요? 5년째 함께한 여자 친구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대표님이 얻는 행복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요.


주로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 편안하고 행복해요.

여자 친구는 본업 외에 저희 팀의 포토그래퍼로 함께 해주고 있는데요. 처음 만난 건 밀양 시립극단에서 1년간 연출부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포토그래퍼인 그 친구를 처음 보았죠. 아무래도 서로의 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만큼, 그 친구가 저를 많이 이해해 줘요. 연극에 종사하다 보면 여느 직장인처럼 시간을 고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고, 가끔 유난히 바쁜 시기에는 예민해지기도 해요. 그 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절대로 참아내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제 여자 친구는 저의 오랜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람이자, 앞으로 가족이 될 사람으로서 그런 저의 모습들까지도 많이 보듬어주고 있어요.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느낌, 그 애정이 정말 큰 의지가 되어요.



Q. 대표님의 인생에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초록빛 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그곳에서의 연극, 일상, 삶은 어떠할까요?


당장 가까운 저의 바람들을 떠올려보자면, 우선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겠어요. 지금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연극 생각을 주로 해요. 자연스럽게 연극으로 가득 채워진 이 일상이 꼭 싫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나의 삶을 챙겨보고 싶네요. 다시 여행도 다니고 스스로 온전히 투자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일 생각이에요. 그리고 낙타의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이 ‘오길 잘했다!’하는 생각을 품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각자의 삶과 경험에 따라 그들이 깨닫는 것이 모두 다를 테니 무엇을 느끼게 하겠다는 욕심은 없고요. 그저 이 연극에 시간을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만 들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팀이 더 알려지고, 현실적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예술을 마음껏 하는 게 물론 가장 중요하겠죠. 그러나 더 최종적으로는 예술로 타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초록빛 힘을 기대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연극이 너무나 하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하거나,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혹은 재능이 출중함에도 여러 사정상 예술을 포기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을 위해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팀 낙타이자, 김남언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실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새로운 시작을 앞둔 모든 사람에게 시작에 앞서 ‘감히 단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게 학업이든, 연극이든, 여행이든, 무엇이든지요. 가령 흔히들 연극은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편견으로 끝을 단정 짓고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연극을 하며 돈을 벌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나의 편견과 남들의 테두리에 갇히지 말고 시작하세요. 본인이 꿈꾸는 먼 곳만을 바라보며 시작하세요.


몽골에서의 김남언 대표





<Editor’s Note>

김남언 대표는 내게 최근에 다녀온 몽골 여행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몽골에서 시력이 정말로 높아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저 멀리 태양이 지평선에 걸쳐진 것이 고스란히 보이는 탁 트인 그곳에서 그는 먼발치를 바라보며 매일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거닐었다. 


낙타는 어떻게 오래 버틸 수 있는 걸까. 광활한 사막이 익숙하지 않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어쩌면 그곳이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매일의 지속적인 행복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고, 쏟아부은 노력만큼 당장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이 사막에 있었다.


멀리의 초록빛 나라를 바라보고 걷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막막한 길도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어렴풋한 여정. 그런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는 끝을 기다리는 대신 끝을 기대하며 걷는 천진난만한 마음에서 나온다.


초록빛 나라를 상상하며 긴 길을 거니는 김남언 대표의 발걸음 역시 느리지만 다부지다. 매발자국마다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아가는 그는 언제라도 지평선 끝에 걸쳐진 초록빛 나라에 닿을 것이다. 김남언 대표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낙타 같은 사람이었다.  


ONF 유튜브 영상 보러 가기

https://youtu.be/3iQf3UzfNGE?si=UZ7dZGlX6VJ1CniJ


프로젝트그룹 낙타 인스타 바로 가기

https://instagram.com/pg_nacta



당신의 소중한 인생 역사 중 한 페이지를

진심을 다해 기록해드립니다.


Editor: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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