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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eo Sep 07. 2024

하늘은 나를 착하게 만듭니다.

시답지 않은 시시한 시 한 편

공군에 복무하던 시절 주말이면 내무반 옥상에 올라가 침구를 털어 따사로운 햇볕에 말리곤 했다. 취침때 뽀송뽀송해진 모포를 덮으면 지난 날들의 눅눅한 추억은 아득히 사라지고 고실고실한 향기에 취해 꿀잠에 빠졌다. 그럴 때 시인은 시 한 편을 남기게 되는 것이리라.

어느날 부대에서 시화전을 한다고 시와 그림을 하나씩 출품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예술마저 명령으로 시행해야 하는 군대라는 조직이 너무나 싫었지만 시 한 편 내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림이야 뭐 그냥 배경으로 대충 그리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출품한 나의 작품명은 ‘하늘은 나를 착하게 만듭니다.’였다. 그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무반 옥상 위에 침구를 펼쳐놓고 그 위에 누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이 시려서 눈물을 흘렸는데 내가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으며 착해진 느낌을 갖게 되었다는 둥의 유치한 동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38~42도로 펄펄 끓던 똘레도가 오늘 아침엔 영상 15도 낮 최고 기온이 25도 정도로 뚝 떨어져서 완연한 가을날씨를 보여줬다.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렀고 물감 폭죽이라도 팡 터뜨린듯 힘차게 펼쳐지는 구름도 참 멋졌다.

하늘멍 때리다가 문득 제목만 기억나는 나의 오랜 시 제목이 떠올랐다. ‘하늘은 나를 착하게 만듭니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현실성 없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주로 하늘을 많이 바라보고 사진도 맨 하늘 사진을 찍는다고.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늘이 나를 착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똘레도의 가을 하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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