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청년 Nov 30. 2023

어떤 문제를 내야할까?

답으로서의 문제

일론 머스크는 본인이 13살쯤 됐을 때(그는 만나이를 이야기하는 거니까 중2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삶이 무의미해보이는 실존적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그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철학 책, 종교서적 등 손에 닿는 인문서적은 다 읽어 봤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개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는데, 이 책에서는 지구가 거대한 컴퓨터라는 설정으로,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지구는 "42"라는 답을 한다고 한다. 조금 의아하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 결론에 머스크는 "유머를 가장한 실존주의철학"이라는 코멘트를 하는데 이 책의 요점은 만약 모든 문제의 답이 임의로 정해져 있다면 진짜 문제는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어떻게 문제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질문의 답은 우주이고, 좋은 문제를 내려면 지구보다 더 큰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머스크가 강조하는 문제만들기의 중요성은 이전부터 줄곧 제기되어 왔었다. 아인슈타인 역시 "문제를 만드는 것이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조금 덜 알려진 현대철학자 들뢰즈도 본인의 박사논문에서 철학의 주과제가 기존에 없던 대답이 나올 수 있도록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라고 했고, 이는 사실 19세기 철학자 헤겔의 '해결책이 문제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다시말해 문제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답의 숫자나 가능성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기가 힘드니 구체적인 예를 한 번 살펴보자.


국내 명문대의 모 교수는 본인의 강의에서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여자들도 취업을 열심히 해야 하나요? 그냥 시집 가면 되는데..." 얼핏 봤을 때도 성불평등을 지향하는 이 질문에 대한 피상적인 대답은 "여자들도 일을 하고 싶어하고, 그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다. 학생과 선생이라는 맥락 안에서 질문을 가장한 이 문장의 전제에는 단순히 '취업을 하지 못하면 결혼을 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여자의 특권'에 대한 지적이 아닌, 사회활동의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애쓰지 말고 전통사회의 성역할인 집안일과 내조로 돌아가라는 명령과 강압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학생의 질문에 숨겨져 있는 "진짜 문제"는 '시집가는 대신 취업을 하려고 하는 요즘 여자'인 것이다. 따라서 학생의 질문에 여자들이 취업을 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대답을 했다가는 기존의 통념적 성역할을 거부하는 여자들이 문제임을 인정해버리는 꼴이 되어버린다. 폭력적 언어에 대해 나름 일가견이 있는 교수는 이를 간파하고 "맞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취직을 하지 못하는 판국에 직업도 없는 남자하고 무작정 결혼하는건 무리가 아닐까요?"라고 되묻는다.


우문현답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의 되물음은 취업을 하는 문제가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공통과제라는 논박을 넘어서서 성역할에 대한 학생의 인식이 현세의 정황과 매우 동떨어져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말을 주고 받는 것은 단순히 자기표현에 머무르는 메아리가 아니다. 나의 말부림은 상대에게 닿는 순간 여파를 남긴다. 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문제를 낸 교수의 예는 마치 복싱에서 스파링 상대가 연마한 콤비네이션에 가드를 올리거나 피하는 대신 상대보다 더 빨리 움직여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것과 같다. 만약 질문이 물어진 그대로 답했더라면, 다음 수를 예상했던 학생은 그 다음 움직임으로 응수했을 것이고, 두 사람은 여성에게 주어진 옵션이 취업 또는 결혼이라는 전제 아래에 인터넷 어디를 뒤져도 흔히 볼법한 논쟁을 하는데 그쳤을 것이다. 교수가 학생의 물음에 응수로써 낸 또 다른 문제는 당장 취업을 하지 못해 고뇌하고 있던 그의 명치가 저려올 정도로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인 대미지를 입혔을 것이다.


영화로 유명한 "파이트클럽"의 원작 소설의 저자인 척 폴라닉은 썰을 잘푸는 사람은 상대방을 입다물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 듣는이로 하여금 관련된 썰을 풀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대화의 불을 지피기 위한 도구로써 썰을 푼다고 말한다. 그가 글을 쓰면서 지향하는 바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파이트클럽"은 폭력이 절대악으로 규정된 도시사회에서 '거친 놀이'를 갈망하는 어른들의 지하동호회를 그려냄으로써 독자 및 관객으로 하여금 '때리고 맞는 것을 너무나도 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들 모두'에 대한 성찰을 요구했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폴라닉의 주된 가치관은 기존 사회통념의 규범 안에서 불가능했던 대화를 새로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처음 보는 상대와의 어색함과 긴장을 깨기 위해 우리는 스몰톡을 하는데, 커피를 하루에 몇 잔 마시는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 자주 먹는 점심식사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은 공통된 화제를 찾아 다양한 답으로 이어나가고자 하는, 아무런 맥락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 어디까지 그림을 그려야 할지 정하는 틀잡기 또는 프레이밍의 시작이다. 만약 당신의 소개팅 상대가 당신의 질문에 올바른 대답만 한다면 어떨까? "하루에 두 잔 마셔요"; "점심은 회사건물에 있는 데에서 간단하게 해결해요". 애초에 당신의 의도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소개팅상대는 점점더 멀게 느껴질 것이다. 대학진학, 취업, 결혼, 내집마련, 가족부양의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우리들은 삶이 던진 스몰톡에 너무 진지하게 단답형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묻는 것에 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묻는 것 뒤에 감춰져 있는 '진짜 문제'와 그 대화가 시작된 앞뒤맥락을 보고 따지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당신의 삶의 관계는 아마 방금 만난 소개팅보다는 진지한 관계를 전제로 만난 장기연애 커플 또는 결혼 10년차 이상 부부에 가까울 것이다. 좋았던 때도, 멀어졌던 때도, 어색했던 적도, 미워서 대판 소리치고 싸웠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연인관계가 막다른 곳에 이르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고, 부부관계가 차가워지면 오로지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유지하는 데에 관련된 이야기밖에 오고가지 않는다. 만약 지금의 당신이 당신의 삶과 어색한 대화를 몇년, 몇십년째 거듭하고 있다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그이가 묻는 것에 대답만 내놓기보다 그의 정곡을 찌르는 카운터펀치같은 되물음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재치있게 화제를 돌려 새로운 썰을 풀어 나갈 수 있다면 삶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설레는 감정처럼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지피울 수 있을 것이다.


Amor fati(제 팔자를 사랑할 것)를 강조한 니체를 떠올리면서 나를 괴롭고 아프게 하는 그이인 내 삶과 더 멀리 갈 각오를 해보자. 어렸을 적 독일철학을 읽고 더 우울해졌다는 머스크는 분명 그 책들을 어설프게 읽었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불편하게 사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