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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청년 Dec 23. 2023

트라우마 극장

저항과 투쟁에 대한 막연한 향수

출처: 연합뉴스

만약 서울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 및 수도들과 차별화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근현대에 와서 상당부분을 복원한 고궁들이나 성벽이 다 잘려나가 길 한복판에 무인도처럼 보존되어 있는 남대문이 아니라 정기적 행사처럼 반복되는 광화문 앞 광장의 집회이다. 가끔씩 전국구 이슈가 되어 다수대중의 지지 및 참여로 이어졌던 2016년의 탄핵집회나 2019년의 반일불매운동, 아니면 2008년의 미국산 소고기 불매운동 등의 사건을 제외하고도 시민단체, 종교단체, 사회적약자 및 소수자를 대변하는 비영리기관에서부터 이것들을 제어하려는 정체불명의 재단법인의 반집회집회에 이르기까지 1년 내내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이익집단의 권리 및 이익은 상시화된 집회로써 시도때도 없이 주장된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 집회들이 합법적 집회로 '허가'를 받으려면 사전에 신고를 해야 되는데 매 주말마다 대형집회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모르긴 몰라도 관할경찰서의 집회 예약명단은 아마 1년 내내 빼곡히 차 있는 인근 파인다이닝의 그것을 방불케 할 것 같다. 만약 집회와 시위가 민주주의사회의 상징적인 지표라면 광화문은 가히 세계적인 명성의 민주주의 맛집이라 불릴만도 하다.


이러한 집회들이 제도화되어 '합법적 집회', '합법적 시위' 등의 역설이 사회질서와 규범의 일부로서 자리잡은 것은 문민정부 수립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6공화국 헌법이 수립되기 이전 87년의 항쟁, 대학가의 학생운동, 그 이전 80년 광주항쟁은 경찰서에 신고하고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하며 시간이 되면 해산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최승자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머리 위에 하늘처럼 드리운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빼앗긴 무언가를 되찾기 위한 저항 및 투쟁이었다. 빼앗긴 무언가, 즉 '진정한 민주사회'라는 목표는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기표였기 때문에 운동에 참여하거나 공감했던 사람이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렸을지 몰라도, 이들이 익명의 대중으로서 한 목소리를 내고 10여년에 걸쳐 지속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던 근거는 공통의 적이 항상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공영방송과 법률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매일매일의 일상을 애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체제에 대한 저항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5공화국 당시 국가권력과 정부가 확실한 적으로 선정되어 있었고, 그 적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미디어를 통해 통치대상에게 가시화시키고 있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의 집회는 적은 고사하고 타겟으로 할 대상이 항상 불분명하다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당장 단체적 여론형성과 집결행동이 필요한 과제인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겠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집회는 공권력을 대상으로 하는 저항이 아니다. 국가기관 역시 이들을 제지할 근거는 없다. 과거 군사정권이 시민집결 자체에 대해 신경증적으로 예민하게 진압을 했던 것에 반해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명목의 정부는 시위를 허용함으로써 공신력을 유지 및 확산시킨다. 말하자면 오늘날 운동주체와 공권력의 관계는 적대관계라기보다는 민주정치라는 상태 또는 과정의 겉모습을 유지하는 협업 및 공생관계에 있다 (민주주의 정부에게 시위대가 필요한만큼 시위대 역시 경찰에 저항하는 모습으로써 대중에게 어필한다). 다만 기성사회구조 안에서 공권력기관의 역할인 '치안유지' 및 '공익보장'은 서비스의 대상이 시민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목적성이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는데에 반해서 사회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의 선전과 집결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투쟁인지, 대상에게서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성을 매번 임의로 설정해야 하는 난제를 맞았다.


만약 오늘날의 사회운동에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경찰이나 공권력이 아닌 시사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인 시민들이다. 광화문 앞 광장에 모이는 것이 일상화 되어 매주말마다 농성하는 집단을 보는 것이 시민들에게 익숙해졌다면, 다음은 찻길을 가로막고 지하철역에 전단지를 뿌리고 회식자리 옆에서 훼방을 놓으면서 시민들의 의식에 특정한 메세지를 각인시킨다. 이익집단과 비영리 시민단체는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일상에 불규칙적인 리듬을 더함으로써 본인들의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고 스스로의 존재를 알린다. 이러한 전략과 기능은 기업의 브랜딩 및 마케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사회운동이 타겟으로 삼는 시민 또는 '잠재적 정치주체'와 기업의 광고 및 마케팅대상인 잠재적 고객 또는 소비주체는 상호교환가능한 개념이며, 오늘날의 사회운동과 영리비즈니스는 방법론과 기능에 있어서 유사하나 활동영역이 '약간' 다른 상호보완관계에 놓여 있다.


인터넷보급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을 기점으로 지난 십수년간 기업 마케팅의 주요공간이 상당부분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간 것처럼 사회운동 역시 거점을 온라인으로 옮겼다. 이전의 운동이 단체행동과 집회를 통해 저항의 의도를 현실의 행동으로 표출시켰다면 오늘날의 운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얼마나 많은 팔로워와 지지를 이끌어내느냐, 얼마나 많은 액수의 펀딩을 끌어내느냐 등의 성과가 곧 실천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다시 말해 사회운동은 더이상 오프라인의 공간을 필수요소로 삼지 않고, 오프라인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책무를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전의 운동이 모의했던 집회와 오늘날의 집회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오늘날의 운동이 집회를 하지 않고도 여론형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집회를 하더라도 마땅히 저항해야 할 대상이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회가 더 이상 사회운동의 일환 또는 주요도구로서 기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집회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집회라는 형태, 즉 기존 정치구조에 대한 시민사회의 형식적인 대립상태를 유지하는 허울이 미적 관습으로 자리잡았음을 시사한다. 교인에게 있어서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듣는 것이 설교의 내용을 기억하고 실생활에 응용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듯 광화문 앞 광장의 집회는 정치적 대립의 지속을 집단적 차원에서 논증하는 의식이자 민주주의정치를 지향하는 사회의 일상으로서 자리잡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러한 집단의식이 어디까지나 형식으로서 유지되어 사회내에서 통용되는 이상적가치, 즉 토론과 타협이라는 모범예시를 마치 공익광고나 교육방송처럼 시연 및 재연하는 기능을 할 뿐 개개인의 일상이 민주적으로 바뀌는, 이를테면 오늘 당장 직장상사에게 내 소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직접적 지원이나 동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오늘도 광화문에서 모종의 이유로 싸우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당장 사무실에서 상사에게 말대꾸하지 않아도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어딘가 민주적인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 즉 민중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사회에 대한 이념이 실재한다면 그것은 헌법이나 법률, 통념의 차원에서 미리 규정해놓고 시민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설립된다기보다는 기술, 기후, 자원 등 물질적조건의 변화에 따라 정해지고 바뀌는 사회구성원들의 실제경험들이 법을 포함한 기존의 관습과 풍조를 끊임없이 심판대에 올리고 해체시키는 상태, 조건, 구조따위로 가시화된다. 이런 맥락에서 광화문 앞 광장의 제도화된 집회는 실질적인 기능보다도 민주주의사회가 유지되고 있다는 논증을 시민사회로서 시민사회에게 끊임없이 시현하는 상징적인 기표로서 주요하다. 반면 이것을 사전에 신고해야 할 행정의 의무를 요구하고 전투경찰을 투입하는 공권력의 규제는 저항과 투쟁의 겉모습은 유지하되 그 집회가 기관의 현상유지에 위협을 가하거나 집회의 규모가 통제가능한 범위를 벗어났을 때에는 무력진압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즉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반작용으로 봐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다수의 시민에게 오늘날 일상화된 집회가 갖는 의의는 나와 맞닿아 있는 현실이라기보다는 강건너의 불구경, 내지는 TV 스크린 뒤에 펼쳐지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매일, 매주, 매달 펼쳐질 수는 있어도 나의 일상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고, 오직 삶의 한 가능성을 예시로 듦으로써 이상적가치를 제시하고 확산시키는 '구경거리'(spectacle)로서 합의되고 인정된다. 이러한 구경거리, 즉 민주주의 극장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문민정부라는 386세대의 유토피아를 '오늘의 현실'로서 가능하게 한 항쟁의 기억 또는 역사적 경험의 재구성과 각색이다. 만약 오늘날 한국시민에게 저항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더이상 집회가 성립할 수 있었을까?


만약 이런 집단차원의 암묵적인 합의와 관습을 우리 개개인의 인격과 습관에 대입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본인도 모르게, 또는 지적을 받아도 원치 않게 반복하는 어른들의 나쁜 버릇과 닮아 있기도 하다.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란 할머니는 필요없는 음식과 물건을 받는족족 쟁여오고, 이리저리 채이면서 힘들게 살아온 아버지의 매너는 어딘가 필요이상으로 거친 부분이 있지만 이것들은 그들이 살면서 습득한 생존방법이기 때문에 더이상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 상황과 환경에서도 원치 않게 반복되고 설령 누군가 지적을 한다고 하더라도 의지대로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만약 집회를 하는 단체와 집회를 통제하는 공권력기관에 어딘가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쉽게 떨쳐내지 못해 그저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는 꼴이 아닐까? 아기가 태어날 때 들이쉰 첫 숨이 배꼽에 탯줄을 잘라낸 영구적 상처로 남아 줄곧 태어난 순간과 삶의 징표로서 회자되듯 역사적 전환점이 된 사건들은 사회적 차원의 고통 또는 집단트라우마로서 끊임없이 곱씹어진다.


의식을 "'나'에 대한 전지적 시점"으로 표현한 데카르트의 "의식극장". 그가 공간을 평면 위에 표현하여 드넓은 지상을 손아귀 속의 좌표로 쥐게 한 공헌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의 트라우마 치료로 효과적인 방법은 사이코드라마다. 어렸을적 겪은 아픈 경험을 무대위에 올려 연극으로 구경함으로써 기억은 더 이상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그 사건을 비로소 회상할 수 있게 되고 억울했던 기억은 '억울했던 어렸을 적의 나'에 대한 기억으로 승화한다. 술자리에서 본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은 사실 그 마음을 위로받는 것보다도 억울했던 기억을 객관적으로 주시함으로써 지금의 나와 나의 위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다.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면, 오늘날의 사회운동과 집회를 평가할 때, 또 집회에 대처하는 공권력의 정당성에 대해 논의할 때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옛날의 향수와 고통을 극복하는 거시적인 관점이다. 이는 곧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으로 귀결되는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거대한 힘 앞에 무력했던 기억은 진압당했던 시위대와 과거의 위신을 잃어버린 공권력 모두에게 극복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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