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경 Feb 09. 2024

피로한 만큼 꽉 찬 날들

일주일 근황

목이 안 돌아간다는 글을 쓴 후 일주일.


이제 목 슉슉 잘 돌아간다. 기록하고 싶은 날들이 많았음에도 정말 글 쓸 여유가 없는 날이었다. 말에는 시댁에 갔다소람친구 아린 자매 운동화를  백화점에 갔다.

친구 선물 사러 간 소람이
월 : 소람 어린이집 OT
화 : 소람 문화센터 / 오후 아린이네
수 : 저녁 아린이네(남편동반 식사+맥주타임)
목 : 오전 여고동창 J / 오후 아린이네
금 : 시댁
토 : 친정
일 : 경주여행
월요일

집에 손님이 오면 집 곳곳 누추한 것이 없나 놓친 것이 없나 청소나 정리를 한번 더 점검하게 된다. 화요일은 강원도에서 아린이 친구 놀러 오기로 했고, 수요일 저녁에는 아린이네 부부가 함께 집으로 오기로 했다. 남편들도 함께하는 저녁식사, 맥주시간. 우리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서 그런 자리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밖에서 자리한 적은 있지만.. 소람이가 28개월, 아린동생 아진이는 8개월. 요 귀염둥이 세 마리와 바깥식사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란 어려울듯해서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어린이집 오티를 가기 전 긴장보다 집에 손님이 온다는 마음에 여기저기 쓸고 닦는데 아이가 지나간 자리는 집안 전체가 금세 놀이방?이 된다. 하루가 길다.

소림이 놀이방
어린이집 오티, 문센 다녀온 날
화요일

문화센터를 다녀와 아린이가 왔다. 8개월에 만난 단짝친구가 28개월이 되고, 아린이 동생은 8개월이 되었다. 아린이 동생 아진이를 처음 만났는데 내가 신기한 만큼 소람이도 신기해했다. 신비하다고 해야 할까. 소람이를 저맘때까지 키울 때까지는 정말 두렵고 무섭고 힘든 기억인데 지금 저 둘째를 보고 있자니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J가 보내 준 명절 곶감세트, 기분전환용 매일 다른 더치커피

미혼시절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소람이를 키워보니 더 어린 아가들을 안아보고 싶다. 아기냄새도 맡아보고 싶고, 소람이보다 훨씬 가벼워 품에 쏙 안기는 느낌도 느껴보고 싶다. 아진이를 처음 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단전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서러움이 북받친 소람이의 표정, 울음이 처음엔 귀여웠다가 마음이 아파 아진이를 내려둬야 했다. 내가 아진이에 무관심한 척했더니 소람이가 아진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아린이랑은 매일 만난 친구처럼 양보하며 싸우지 않고 잘 논다. 아이 세 명이 집에 있으니 집안이 꽉 찬 느낌이다.

수요일

아린이 아빠육류를 좋아한단다. 소람아빠는 집에서 고기를 굽자고 한다. 식구끼리 고기 굽는 것도 기름에 냄새에 설거지에.. 반기지 않는 나인데, 아이들 셋이 있는 와중에 고기라니. 설거지도 하지 않으면서 마음이 앞서는 소람아빠 입을 막고 쪽갈비를 주문한다. 맥주는 소람아빠가 종류별로 골라서 냉장고에 채워뒀고, 샤인머스캣, 딸기, 견과류, 치즈, 주전부리를 준비했다. 낮에는 아이와 함께 은행 볼일 보고 재활용을 했다. 문방구에 가서 부모님 용돈 봉투도 사고.. 하루가 순삭이다. 저녁 7시. 어른 4명, 아이 3명이 집에 모였다. 왔다 갔다 아이들 덕분에 정신없지만? 마음이 풍만한 하루였다. 새로운 사람을 집에 들이면 내어두는 그릇, 컵, 수저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차림은 단출해도 함께해서 더 넉넉한 하하 호호 깔깔대는 두 집안의 저녁시간이었다.

목요일

어린이집에서 얼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보려는데 갑자기 아이가 책을 펴고 구연동화처럼 책을 읽어준다. 언제 이리커서 엄마한테 책을 읽어주는 아이가 되었나. 허허. 아이도 대견하고 나도 대견하다. 어떤 책 보다 재미나다. 책 보다 아이 입과 아이 표정이 더 재미있다. 글을 모르는 아이는 그림을 아이의 눈으로 해석하며 책을 읽어준다.

오전에 엄마에게 책읽어주는 딸랑구

여고동창 J.

오늘은 연휴 전 집 청소 및 시댁, 친정에 챙겨갈 짐과 선물을 정리할 예정이었으나, 근처 병원에 온 친구 J가 잠깐 들르기로 했다. 친구가 오기 전 문득 생각났다. J 집에 가면 항상 나에게 마음을 담은 티타임 트레이를 내줬다.

이거 먹어봐. 이거 마셔봐. 이거 좋더라.

항상 우와를 연발하며 "이거 뭐야?" 묻던 나는 아가씨 때는 뭘 몰라서 그냥 받아먹었고, 어린아이가 함께 할 때는 아이가 있으니 받아먹다. 나는 친구에게 기껏 해봐야 배달음식과 탄산수를 내어줬다. 문득 어제 아린이네 가족을 초대하고 과일과 주전부리를 준비하며 J를 위해서는 예쁘게 담은 주전부리 한번 내어준 적 없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오전에 잠깐 들른다는 J가 요청한 치즈, 당면 추가한 엽떡을 주문하고 견과류 트레이를 준비했다. 친구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었다. 근래 피로가 쌓인 친구가 몸에 이상이 느껴져 대학병원에서 씨티를 찍고 결과가 나온 날이다. 다행히 큰 문제가 없다는 희소식. 엽떡과 친구가 사 온 샌드위치와 함께한 배 터지는 시간을 갖고, 거실에서 빨래를 갰다. 내가 빨래를 갤 때 소람이도 함께 빨래를 개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J가 말했다.


햇살도 좋고, 너네 지금 광고 같다
지금 딱 너무 나른하고 참 좋네

아들 둘을 픽업 가야 하는 J. 며느리 J는 차례를 준비하러 간다. 지친 J에게 제발 좀 잠깐이라도 누워있어라고 했는데 곧 나도 쓰러져 누웠다. 15분 정도였나. 그렇게 햇살 만끽하며 거실에서 세 여자가 뒹굴거린 그 시간이 너무 달콤했다.

여고동창J 를 기다리며,

오후 2시 반 J가 아이들 픽업하러 가고 오후 4시. 아린이네가 왔다. 이제 강원도로 가면 한동안 못 볼 테니 볼 수 있을 때 마음껏 친구와 함께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첫 친구이자 나의 첫 아이엄마 친구인 아린 엄마, 이제는 꼬물이 아진이 까지 생겼다. 아진이는 너무 순둥이라 집에 8개월 아이가 있는 것도 깜박할 때가 있다. 집안이 행복, 사랑으로 꽉꽉 채워진 날들이었다.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어주고 싶었는데 눈으로 지켜본다고 사진으로 담은 것이 거의 없는 게 아쉽다.


몸은 피곤해도, 내가 움직이는 만큼 함께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웃음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린아, 이거 잡고 뛰어야 해. 알겠지?
아진아, 내가 쭈쭈 먹여줄게.
아린아, 같이 놀자. 이리 와봐.
아린아, 할머니댁 가야 해.
내가 양말 신겨줄게. 싸우면 안 돼.
사이좋게 놀아야 해. 알겠지?
다들 재미있게 봤나요. 다음에 또 만나요!

아이도, 나도,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즐겁고 행복한 일주일이었다. 8일 자정. 모두가 잠든 시간 집 정리 후 연휴 간 여행 짐을 챙겼다. 이번에는 KTX가 아닌 차로 움직인다. 얼마나 진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28개월 단짝 친구


매거진의 이전글 카레를 만든 오후 5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