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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Nov 26. 2024

내가 해외 살면서도 한국이름을 쓰는 이유

찬조출연: 알라딘의 지니옹 감사합니다

먼저 이 글을 쓰면서 누가 맞고 틀리고를 논하고 싶지 않음을 밝힌다. 나는 그냥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을 적었지, 너는 왜 서양이름 쓰니라고 누굴 저격하는 글이 아니다.


16년째 와플국에 살고 있는 나, 나의 이름은 당연히 고추장와플도 유교녀도 아니다. 본명을 밝히는 것은 조금 꺼려져 내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지극히 한국스러운 이름이 있다. 나, 우리, 이서 같은 받침 없는, 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은 아니고 세자 다 받침이 있다. 그래서 발음하기가 색목들에게는 혀에 쥐 나도록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내 이름이 홍진영(예를 들기 위해 사용한 가명이다) 정도라 치자.


이름이 뭐야?

(마음의 준비를 시켜 둠) 내 이름은 머리 좋은 사람들만 외울지 있지. 려워. 

그래서 뭔데?(이미 궁금해져 있음) 

내 이름은 홍진영이야. 성은 홍이고, 이름은 진영. 진영이라 부르면 돼.

지니옹? 지니옹. 지니옹.지니옹.

(내가 알라딘의 지니 할배냐? 지니옹이 뭐임? 하지만 그 정도도 용썼으니 그냥 인정)

알라딘의 지니옹,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머리 좋은 사람만 외울 수 있다 했으니, 머리 모자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외운다.


나는 알라딘의 지니할배, 지니옹이 되더라도 서양이름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국에서 20대 중반까지 홍진영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이곳에 와서 캐롤린, 캐트린, 앨리스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새로운 인생을 새로운 국가에서 시작하면 리셋을 해서  최대한 그들의 편의에 맞추어 주는 것도 맞고, 나처럼 고집부리며 내 이름을 고수하는 것도 맞다. 애초부터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선택이다.


나는 나로 살고 싶을 뿐이고, 내가 이곳에 있어도 홍진영이고 싶다. 지니옹 지니옹 지니옹 무한반복하며 날 부르기 위해 연습을 하건 말건, 그건 그들의 사정이다.


지가 필요하면 내가 지니옹이던 지니옹의 할배든 알아서 부르겠지. 내가 그 사람들 발음까지 신경 써 줘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그냥 나이고, 그들이 나를 그냥 나인 나로 봐주고 불러 주었으면 한다. 싫으면 부르지 말던가.


또 한 가지 문제는 우리나라 이름에도 나름 이미지가 있듯이, 서양에도 이름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 다르다. 외국인으로서 그 이미지를 다 알아내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고르게 될 수도 있다.


중학교 때 절친과 함께 영어시간에 반장난으로 영어이름을 골라 서로 불렀던 적이 있다. 나는 엔젤라/Angela였고 나의 절친은 신시아/ Cynthia였다.


돌이켜보니, 나랑 전혀 안 맞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이미지도 아니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앙겔라 메르켈이 되지 않아서... 유럽에서 Angela라는 이름은 나이 꽤 드신 백인 여성을 생각하게 된다. 독일 전 총리의 이름 앙겔라 메르켈은 Angela이다.

독일의 전총리 앙겔라 메르켈, 가만히 보니 우리 시어머니 닮았다.

하마터면 앙겔라 메르켈이 될뻔했다. 론 정치인으로서 그녀의 카스마와 능력은 존경한다. 우리나라 용산에 계신 분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랑 저분이랑 공통점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그냥 정말로 없다.


내 이름을 그냥 썼을 때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거르기도 수월하다. 다행히도 내 친구들과 동료들은 아무 문제 없이 내 이름을 부른다.


이렇게 나는 유럽생활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냥 내 한국이름으로 살고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내 이름의 발음을 잘하던 못 하던 그냥 내 이름으로 사는 게 나는 제일 편하다. 그게 또 제일 나 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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