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가 두 번이나 찾아왔건만
나의 큰 단점은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닥치면 순간적으로 버벅거린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에 두었던 "수미"와 가깝게 지내는데 까지는 성공했었지만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자신을 찾아와 할머니들 앞에서 당당하게 데이트 신청을 하라고 말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멘붕에 빠졌다.
그동안 수미에게 충분히 작업을 했었으니 내가 전화를 하면 그녀는 순순히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할머니들 보는 앞에서 자기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라니...
내가 만약 "전구형 남자"였다면 즉시 여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꽃다발 하나 들고 그녀를 찾아갔겠지만 아쉽게도 나는"형광등형 남자"이기 때문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번이고 깜박거리다가 그만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바로 내 앞에 왔는데 앞머리카락을 움켜 잡지 못하고 지나간 후에 미끄러운 뒷 통수만 보았던 것이다.
29살 때 "카이로스"는 두 번이나
왔었고 내게 먼저 온 카이로스는"민혜"였다.
여자는 남자가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민혜는 내가 양로원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했었던 것 같았다.
사실, 그런 것들은 수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작업에 불과했었지만 순진했던 민혜는 그런 나의 음흉한
검은 속 마음을 알리가 없었기에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좋아했었다.
그렇지만 자기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오로지 수미만 쫓아다니는 나를 짝사랑만 하고 있었다가
어느 날, 큰 용기를 내서 내게 다가왔었는데 그런 민혜의 마음을 나는 알아보지도 못하였다.
나의 또 하나의 치명적인 단 점은 여자든, 일이든, 어느 한 가지에 필이 꽂히면 거기에만 올인한다는 것이다.
"수미"에게 필이 꽂혀 있었던 나로서는"민혜"란 여자가 내 안중에는 없었다.
민혜도 내게는 정말 좋은 여자였다.
비록, 키는 조금 작지만 천성적으로 착한 여자였기에 그녀를 잡았어도 내 인생은 활짝 피었겠지만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는데 뒤에서 손 아무리 흔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민혜"도 놓치고 내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 했던"수미"조차도 용기 부족으로 놓쳐버렸다.
29살에 장가를 갈 수 있었던 기회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내게 찾아왔었지만 나는 그 "카이로스"의 긴 앞머리카락을 움켜 잡지 못하고 지나간 후에 미끄러운 뒤통수만 바라보고 말았던 것이다.그렇게 나는 20대에 결혼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허무하게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