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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인 Oct 11. 2024

마트료시카 오믈렛 만들기

나의 대학에 관하여

1.


오믈렛과 주스 한잔으로 허기진 속을 달랜 뒤 카운터로 갔다. 처음 보는 식당에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그 맛이 만족스러워 옅은 웃음이 지어졌다. 머리를 뒤로 묶은 캐셔는 포스기 화면을 손톱으로 두드리며 명쾌하게 외쳤다.


“일 억 삼천만 원입니다.”


문보영의 시, 「캐셔」에 나오는 식당은 오믈렛과 주스를 먹기 위해 1억 3천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 터무니없는 가격에 항의를 해보아도, 캐셔는 요지부동이다. 식사가 값비싼 이유는 “이곳에 방문함으로써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식당의 음식값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캐셔」에서 오믈렛은 가능성의 요리로 표현된다. 이를 느껴보기 위해, 푼 달걀 3개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뒤 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직접 오믈렛을 만들어 보자. 당신은 그곳에 잘게 자른 햄을 넣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탈리아식으로 베이컨과 치즈를 넣을 수도 있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양파와 당근을 한 움큼 쥘 것이고, 모처럼 기억에 남는 식사를 하고 싶다면 새하얀 설탕을 달걀물 위에 흩뿌릴 것이다. 당신이 어떤 식재료를 선택했던지 오믈렛은 여전히 오믈렛으로 남아있기에, 오믈렛은 너그럽다. 그 수많은 가능성을 노란 입 속에 감춘 뒤 묵묵히 익어갈 뿐이다.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오믈렛 속에는 일 억 삼천만 개의 식재료가 담겨 있다. 아직 맛보지 않았기에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캐셔가 말한 “일 억 삼천만 원”은 가능성의 값어치일지도 모른다. 길거리에 있는 수많은 식당 중에서 하필 처음 보는 식당에 들어가고 싶었고, 메뉴판에 있는 수많은 음식 중에서 하필 오믈렛을 먹고 싶었던 그 가능성 말이다. 나는 「캐셔」의 화자가 처음으로 오믈렛을 맛본 그 순간을 상상한다. 모든 것이 확정된 그 순간을 한번 떠올려 본다.




‘내가 어쩌다가 처음 문학을 시작했지?’

⎯그것은 오믈렛에 관한 시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

‘내가 어쩌다가 오믈렛을 좋아하게 됐지?’

⎯오믈렛으로 가득 찬 나의 글을 읽다가 생겨난 걱정.

‘아무래도 나는 오믈렛 인간이다.’

⎯그것은 오믈렛을 씹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질감. 나만 내릴 수 있는 결론.



2.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오믈렛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취향껏 다양한 재료를 손질하는 중이다. ‘재수’라는 이름이 붙여진 오믈렛을 나이프로 잘라보면, 달걀지단 한 겹이 흘러내리며 ‘대학’이라는 오믈렛이 등장한다. 오믈렛 속에 오믈렛을 만드는 일. 그것은 나의 삶에 문학을 집어넣는 일이다.


나의 재수 기간은 남달랐다. 빈 말이 아니라 그간에 있었던 몇몇 에피소드를 여러 친구에게 들려줄 때마다, “너 어떻게 합격했냐?” 라는 순수한 의문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 이야기를 대략 간추리면 이러하다. 실기 시험이 4개월 남았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지난 일 년간 준비했던 산문을 접어두고 실기 방식을 운문으로 변경한 일. 낯선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낯선 사유를 가지고 싶어서 7박 8일 일본 자유여행을 떠난 일. 생활감이 느껴지는 시를 쓰고 싶어서 3개월 동안 편의점 야간 알바와 중국집 서빙 파트타임 알바를 함께 한 일. 오롯이 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자 노량진 고시원 방에 들어간 일……. “어쩌면 나는 이렇게 해야만 합격했을 지도 몰라.” 친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대학에 합격하고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너는 대학 가서 진짜 다행이라고, 결과가 안 좋았으면 어쩔 뻔했냐고. 매번 웃어넘기기만 했던 그 말을, 이 자리를 빌려 한번 반박하고자 한다.


얘들아, 내게 대학은 목표가 아니야. 증명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고 그냥 과정일 뿐이지. 대학에 가든 안 가든 나는 똑같이 책을 읽고 똑같이 글을 썼을 테니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나의 ‘대학’은 조연호 시인의 「배교」, 교토 금각사에서 찍은 사진 몇 장, 편의점 테이블에 엎어진 컵라면, 고시원 베개에서 맡아지던 퀴퀴한 곰팡이 향, 그리고 일 년 동안 읽은 모든 소설집과 시집 들이 재료가 되어 만들어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믈렛이다. 그 맛을 느껴보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학과 과방으로 가서 글을 쓴다. 최근에는 ‘문학 오믈렛’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것이 참 쉽지가 않다. 만족스럽지 않은 글을 자꾸 써서 같은 자리만 맴도는 기분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려 할 때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일억 삼천만 개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전공 중에서 하필 문학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생각하고, 또한 문학을 선택하며 사라진 수많은 가능성을 상상한다. 아무래도 나는 오믈렛 속에 사는 오믈렛 인간이다. 오믈렛 인간은 과거를 반추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매 순간 선택하며 사라지는 값어치를 알기에 가능성으로 가득 찬 현재를 소중히 살아간다. “어차피 평생 문학을 할 것도 아닌데 뭐, 나중의 일은 모르는 거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꿋꿋이 글을 쓰는 일. 어쩌면 오믈렛 인간은 조금 모순적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문학을 할 거라 확신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만의 가능성을 채워 넣는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나의 문학은 지금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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