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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일상

- 일상 에세이

by 흰칼라새


신영복 선생은 '새벽'을 '밤과 아침 사이, 아픔과 기쁨 사이, 새날이 동트는 곳, 우리가 서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늘 사이좋게 놀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들과 싸우지 말고 노는 것이 사이가 좋은 것이다. 사이는 너와 나 사이의 빈칸에 있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오지 말고 이 빈칸에서 만나자. 한가운데, 그 사이에서 만나려면 힘이 든다. 나도 너도 아닌 그 사이에 네가 있고 내가 있다.'


신영복 선생은 '과정'으로의 '사이'를, 이어령 선생은 '관계'로서의 '사이'를 말한다.


생각해 보면 토끼야말로 ‘사이’의 존재다. 토끼는 바다와 육지 사이를 넘나들며 생존의 지혜를 말하고,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내리며 희망을 전한다.


용왕에게 간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 “간은 육지에 두고 왔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위기를 벗어나고, 이윽고 달에 올라 달토끼가 되어 사람들의 소원을 절구로 찧어 고운 희망의 빛가루로 빚어내는 존재가 되었다. 토끼는 땅과 바다와 하늘을 오가며 삶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전한다.


사기(史記)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서 땅에 사는 토끼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 하여 세 개의 굴을 판다고 한다. 하나는 평온한 일상의 굴, 하나는 위기에 대비한 비상의 굴, 그리고 하나는 퇴로를 위한 굴이다.


토끼가 파는 세 개의 굴은 삶의 균형을 지키는 내면의 공간이다. 하루를 지탱하는 일상의 굴, 개인적인 실수와 관계의 어긋남에서 나를 지키는 비상의 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퇴로의 굴이 있을 때,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토끼는 보여준다. 토끼가 그 굴들을 파고 굴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지혜일 것이다.

결국 삶이란 수많은 사이를 건너는 일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 아픔과 기쁨 사이에서 성숙을 배우며, 엄마와 아빠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너와 나 사이의 빈칸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토끼처럼 우리도 그 사이를 살아내는 존재다.


어쩌면 진정한 삶의 자리는 사이의 틈새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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