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의악오름
올해 상반기까지는 집이 애월에 있다보니 동쪽오름보다는 제주의 서쪽 내지는 시내까지 코스를 주로 다녔다. 그러던 중에 ‘아라동 역사문화탐방로’ 트레킹코스를 찾아냈다. 산천단부터 관음사까지 5.5km 코스인데 중간에 1.6km의 ‘삼의악 트레킹 코스’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이 둘을 혼합하여, 관음사에서 출발해 칼다리 폭포를 기점으로 고사리 평원을 지나 삼의악 오름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코스를 걷기로 했다. 작년까지 ‘오름올래’ 팀은 보통 6~8km를 다녔기에 우리에게 딱 적합한 코스라고 생각했다. 그 숲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날씨 좋은 5월의 어느날 관음사의 넓다란 주차장에 호기롭게 주차하고 6명이 모였다. ‘아라동 역사문화 탐방로’ 안내판을 확인하고 시멘트로 포장된 널찍한 비탈길을 올랐다. 누군가 ‘길이 계속 이렇게 잘 되어있나?’ 라고 물은 후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보통 오름에도 올레처럼 곳곳에 다양한 리본들이 나무에 걸려있어서 정상까지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몇 번 경험을 하니 걷다가 습관적으로 리본을 찾게 된다. 이번에도 초입에 ‘절로가는길’이라고 새겨진 노란색 리본을 확인한 후 직진본능을 쫓아 열심히 걷고 있었다. 별 생각없이 걷다가 언젠가부터 리본이 실종되어 다시 초입까지 돌아온 후에야 시멘트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우리에겐 쉬운 길은 허락되지 않는구나….’ 그렇게 헤맨 후 숲길로 들어섰다.
사실 ‘아라동 역사문화 탐방로’는 자세한 지도가 없다. 사람들이 올린 블로그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어 가는 지라 안내판에 기재된 신령바위, 노루물, 칼다리폭포가 정확히 얼마나 가야하는 지도 모르고 어느 바위가 신령바위인지도 모른채 이따금씩 깃발만 확인하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너른 고사리밭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다…여기가 거기인가…. 이 코스는 걷는 내내 의심하며 걸었다. 그렇게 의심의 꼬리를 문 채 걷다가 사진을 통해 눈에 많이 익은 계곡에 다다랐다. 말이 계곡이지 제주의 계곡은 대부분 물이 없어 커다란 바위와 돌들이 엉킨 돌길이나 다름없다.
이 계곡에 다다르니 세 갈림길이 나왔다. 골때린다. 어디나 갈림길이 제일 힘들다. 우리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선택을 한다.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까, 몇 시에 출발할까, 무엇을 입을까 등등 사소한 선택부터 오늘 하루 또는 인생을 좌우하는 선택까지 무수한 결정을 일상에서 마주한다. 오름에서도 많은 갈림길을 만난다. 이제는 안다. 이 갈림길들이 어디를 선택하든 결국은 한 점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림길 앞에서는 확신이 의심과 불안으로 변모한다. 특히나 나무가 우거진 어두컴컴한 갈림길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내 뒤에는 5명의 회원들이 이런 나의 불안을 눈치채지 못하고 마냥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내 불안보다 결심이 앞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겉으로 보기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미지가 뿜어져 나오는데, 사실상 많은 결정을 촉에 의지한다. 촉이 틀리는 경우도 많은 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 바보다. 인간이란 잘못된 습관이나 성격적 결함을 인지하면서도 수정하지 못하는 존재니 바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결함이 있는 나를 리더랍시고 따르는 회원들에게 참 감사하고 미안하다.
이번에도 나는 호기롭게 왼쪽 길로 촉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또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계속 걸었다. 갑자기 조릿대밭이 나타나더니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나왔다. 뭔가 찜찜하지만 계속 걷는다. 뒤에서 “이 길이 맞아?” 내 결정을 확인하는 물음표가 계속 쏟아진다. 나도 내가 의심스럽다. 다른 회원분을 앞세워 걸어본다. 그 분에게 총대를 쥐어 준 셈이다. 결국 그 분도 두손을 들었다. “여긴 아니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우리는 길을 개척하며 걸었던 것일까?
나의 호기로움이 부끄러워 쏙 들어가 버린채 다시 갈림길로 돌아왔다.
어쩌지 우왕좌왕하던 참에 구세주를 만났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께 삼의악 가는 길을 여쭈었는데 동행해 주시겠다고 한다. 말씀은 없이 미소로 계속 대답을 하셔서 말씀을 못 하시나 싶었다. 제주에는 장애인들이 많이 거주하니 나의 예상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걸음은 엄청 빠르셨다. 우리는 이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귀인을 놓칠 세라 그렇게 좋아하는 수다도 못 떨고 바삐 할아버지 보폭에 맞춰 걸었다. 아까 그 세 갈림길에서 직진방향이었다. 이런!
길의 양쪽에 산수국이 봉오리를 봉긋봉긋 맺은 수국길이었다. 여름에 수국들이 색깔을 드러내면 아름다운 파스텔톤의 꽃길이 될 것 같다. 머리 속으로 꽃길을 상상하며 걷기를 얼마되지 않아 말들이 노니는 목장이 나타났다. 여기는 사유지라 펜스가 쳐져있는데 거길 통과하니 고사리 평원이 나타났다. 이 할아버지 아니었으면 우린 아마 하루종일 근처를 돌다 하산했을듯 싶다. 정말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걸 어떻게 역사문화 탐방로라고 안내판에 그려놨을까. 주최측의 농간에 놀아난 기분이다. 놀라움과 실망감을 동시에 안고 고사리 평원을 맞이했다. 진짜 진짜 진짜 넓은 고사리 밭이다. 저쪽은 끝도 보이지 않는다. 봄철에 제주는 고사리 따러 다니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참 많다. 고사리 복장도 있다. 긴 장화에 질긴 김장용 앞치마와 장갑을 착용해야 가시에 긁히거나 진드기에 물리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나도 오름다니며 고사리를 한움큼 따서 집에 가져갔으나 해 먹을 줄을 몰라 만날 실패한다. 당최 쓴 맛을 없애기가 힘들다. 제주댁이 되기엔 아직도 멀었다.
고사리밭에 감탄을 자아내며 걷는 우리를 보고 할아버지가 또 흐뭇하게 웃으신다. 그러나 고사리 꺾을 시간은 내주지 않으시고 다시 바쁜 걸음으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셨다. 얼마 안 가 또 갈림길이다. 처음으로 마음이 편하다. 길잡이가 계시니까 말이다. 처음 입을 여셨다. 둘다 정상에 가는데 갈 때는 왼쪽, 내려올 때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된다고 하셨다. 그때서야 그분이 장애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다. 사실 왼쪽 길로 선택한 순간부터 우리가 훈련당했다는 것을.
왼쪽 길은 험했다. 경사로가 가팔라 다들 헉헉대며 힘들어했다. 언제 끝나냐며 물음인지 비명인지 구분하기 힘든 헛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가장자리에 밧줄이 나타났다. 밧줄이 있는 길은 ‘너희들이 꼴딱거릴만큼 가파르니 이 생명줄을 잡으라’는 뜻이다. 밧줄과 나무를 눈에 보이는 족족 잡고 끌며 15분을 걸었을까, 작은 벤치와 샘물이 나타났다. 봄을 알리는 올챙이들이 그 샘물에서 놀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꺽꺽 숨 돌리며 물을 마시는 우리를 보고 할아버지는 또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때는 그 미소의 의미를 몰랐다. 5분정도 쉰 후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10여분 또 뜨악거리며 올랐나보다. 신기한 것은 오름을 아무리 많이 올라도 오를 때마다 힘들다는 점이다.
어느덧 나무 키들이 짧아지고 하늘이 보이는 것이 정상에 거의 도착했음을 감지했다. 힘들게 흘린 땀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정상 뷰는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웠다. 한라산이 정면에 서서 나를 반겨주고 반대편에는 먼 바다와 제주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한라산을 완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라산을 똑바로 마주하니 굽이굽이 굴곡을 자세히 볼 수 있고, 5월이라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삼의악 오름은 분화구 형태가 원형이라 주변을 빙 돌아서 내려가면 된다. 내려갈 때 깨달았다. 아까 갈림길에서 우리가 올라온 왼쪽 길은 급경사에 거리도 더 멀었다. 반면에 오른쪽 길은 훨씬 완만하고 빠른 길이었기에 할아버지께서 일부러 우리를 힘든 길로 안내했던 것이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얼마나 웃으셨을지 ㅎㅎ
그렇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마지막까지 안내를 받으며 잘 내려왔다. 길을 헤매느라 진땀흘리고 꼴딱고개넘느라 값진 땀도 흘리고 나니 몇 배로 애정이 가는 오름이다. 또한 큰 깨달음도 하나 얻어 간다.
‘잘 알려져있지 않는 트레킹코스나 오름을 갈 때에는 오가는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주저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