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된 첫 월요일,
폭우가 쏟아지는 아침에 B랑 검정고시학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껏 내가 만난 청소년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비 오는 날 그것도 이른 아침엔 늦잠이 일쑤다. B는 달랐다.
9시 40분에 학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혹시 길을 헤매다 늦기라도 할까, 늦잠으로 못 올까 봐 1시간 전에 카톡을 보냈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고, 아이는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서 원장님과 먼저 상담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점수가 낮은 수학, 과학만 수강할 계획이었으나 같은 수강료로 나머지 과목까지 수강하기로 했단다. 아이의 눈빛은 전신갑주를 입고 금방이라도 전쟁터에 나갈 병사의 위세로 의지에 불탔다. 지켜보는 내내 아이가 대견했다. 등록과 함께 수업은 바로 시작되었다.
“선생님, 수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재밌다는 말이 좀 그런가요? 히히.”
핸드폰 너머로 아이의 흥분이 전해져 왔다. 수업을 마치고 어린 사촌 동생들 하교시간에 맞춰 서둘러 집으로 가며 전화를 걸어 감회를 전해온 것이다.
“암튼 궁금한 걸 묻을 수도 있고... 선생님이 바로 답해주셔서 일방적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보다 답답하지도 않고 오랜만에 공부하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통화한 후, 파이팅을 외치며 전화를 끊고 사무실 자리에 앉았다.
가슴이 세제동력기를 가동이라도 한 것처럼 홍두깨질을 하며 마구마구 뛰며 주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일,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부가 하고픈 데. 배워서 꿈을 이루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없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아니야, 하면 돼. 우리 같이 해 보자”
등을 도닥여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예전 내가 그런 어른을 간절히 바랐고, 그런 어른 덕분에 지금 나름의 멋진 어른이 되어 있는 것처럼....
석 달이 지나 수시입학전형 결과 발표가 났다. 아이가 가고 싶었던 4년제 대학교 국어교육학과에 합격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며 직접 전화해 준 아이가 고맙고 어린 사촌 동생을 돌보며 잠을 줄여서 공부한 아이가 대견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가 너무나 멋졌다. 어린 나이에 부모사망, 고등학교 자퇴 등 상실과 좌절의 시간을 미리 맛본 아이다.
‟이렇게 살다가는 제 인생이 어떻게 될지 너무나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검정고시라도 봐서 대학을 가고 싶어요.”
도움을 요청한 아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 용기로 꿈을 향해 더 큰 걸음을 내딛기를 바라며 맑은 하늘을 보며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