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줄거리는 왕따인 여중생 천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이후 엄마와 언니가 천지의 죽은 이유를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나에게는 여러 장면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몇몇 부분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천지가 교실에서 항상 뜨개질하는 부분이었다.
빨간색 털실로 겉 뜨기와 안뜨기만 반복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친구가 물었다. “뭘 뜨는 거야?” “그냥 넓고 긴 거” “그게 뭐야?” “마음이 이제 됐다 싶을 때까지 떴다가 다시 풀어.”
나는 뜨개질을 잘 못했다. 아는 방법은 안뜨기, 겉뜨기, 코 만들기뿐이었다. 뜨개질의 시작은 학창 시절부터였다. 뜨는 것은 목도리였고, 털모자나 장갑을 도전해 본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 풀고 말았다. 뜨개질 유행이 지나가고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다가 남자친구를 위해 또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성되기 전에 헤어졌고, 다시는 뜨개질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몇 년 후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를 낳고 다시 시작한 뜨개질도 목도리였다. 첫째 딸은 빨간색으로 둘째 아들은 파란색으로 목도리를 떴고, 추운 겨울 아이들 목을 따뜻하게 지켜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커가면서 내가 떠준 목도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팍팍한 삶에 치어 한동안 뜨개질을 잊고 살았는데,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영화를 봤고, 둘째가 고3이 되면서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시작한 뜨개질에 나름 무늬를 넣고 싶어서 겉뜨기, 안뜨기 번갈아 뜨는데, 복잡한 머리도 비우고, 나중에 다시 이어서 떠도 헷갈리지 않게 다섯 코씩 계산해서 떴다. 예전의 그 평범한 목도리가 아닌 제법 모양이 생긴 목도리로 실력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무념무상을 위해 시작했지만, 뜨는 내내 멍 때릴 수 없다. 속으로 계속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며 겉 뜨기와 안뜨기를 번갈아 뜨지 않으면, 혹시라도 무념무상으로 뜨다 보면, 마지막 안뜨기가 5코가 아닌 4코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생긴 적이 있어서이다.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집중하고 뜨다 보니 이제 제법 긴 목도리가 되었는데, 뜨기를 멈출 수가 없다. 이대로 계속 뜨다가는 목도리로 쓸 수 없지만, 내 목적은 목도리가 아니었으므로 계속 뜨던가 그냥 멈추던가 선택을 해야 한다. 뜰까? 말까?를 고민하는 순간에도 손은 계속 겉뜨기, 안뜨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되고, 뜨게는어느새 방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커다란 구렁이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며칠을 더 보내고, 드디어 뜨개질을 멈췄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종이가방을 가득 채운 뜨게 뭉텅이가 놓여있는데, 볼 때마다 거슬린다. 내가 먼저 좋아라 해놓고 관심을 두지 않는 내 못된 성격이 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