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길
참된 삶은 소박한 꿈이든 원대한 꿈이든 희망을 품고 현실에서 꿈과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이유가 본인의 올바른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아닌 스승님, 또는 선생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선생님으로서의 교육 목표와 지표가 바로 서고, 교육 현장에서 가장 최적의 상태로 실천하고 그 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즉 선생님은 선한 마음(善意志)으로 출발하여 올바른 자세로 학생과 부대끼며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교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올바른 사도의 길을 정립하고 실천하기 위해 많은 생각과 깊은 사색에 잠겨도 교육의 지표가 올바른 인격 함양이 아닌 현실의 경제적 이득에 함몰된 사회적 인식 때문에 뚜렷한 답이 없는 것이 현재의 선생님 위치이고 현실이다. 답이 없다고 순수 교육지표를 내팽개쳐서는 안 되는 것이 선생님의 길에 주어진 책임이고 의무감일 것이다.
선생님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발해야 하는가?. ‘학무상사(學無常師)’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교직에 출발하자. ‘배움에 스승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늘 선생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는 뜻이다. 선생님의 열정과 책임이 깊어지면 학생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혜택을 많이 줄 것 같아도 실제로는 반대일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음식이 많이 차려져 있어도 먹는 사람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자식들을 키우는데 ‘과잉보호’와 ‘방임형’을 비교해 보면 결과는 방임형이 과잉보호보다 좋다. 방임형은 틀이 갖추어지지 않는 단점은 있지만, 창의력, 문제 해결력, 순발력, 처세술이 뛰어나고, 과잉보호는 모든 일에 수동형으로 현실 적응이 어려운 것이 많다. 물론 과잉보호나 방임형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의 과잉 열정이 학생들을 과잉보호로 몰아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이 나아갈 방향을 학생과 함께 머리 맞대고 협의하여 제시하는 것은 선생님의 몫이고 이것을 체험하고 몸에 익히는 것은 학생의 몫임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은 명심하자.
어떤 자세로 학생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가? 「不患人之不己知, 患不之人也(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論語의 學而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평소 존경받는 교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권위를 지키는 선생님에게 일침을 가하는 구절이다. 선생님의 합리적 권위가 없으면 선생님 할 자격이 문제가 되지만 전통적 권위로 선생님의 길에 임하면 문제가 많을 것이다. 선생님으로 첫발을 내디딜 때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답습하며 매를 들고 다니며 힘으로 강제로 학생들을 제한해야 교육이 되는 줄 알았는데 1년이 가기 전에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는 늘 학생의 다양성과 개성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교직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주 젊은 선생님 생일이라 점심에 자장면을 같이 먹었다. 젊은 선생님이 첨 학교에 부임하여 주변 상황을 보니 내가 모든 학생에게 다 잘해 주는 것을 보고 버티어 낼 수 있을까 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아무 문제가 없고 학생들이 나를 더 따르는 것을 보고 자기도 닮아 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교사 생활에 대단한 칭찬이다. 점심을 사준다고 하는 말 같지는 않다. 젊은 선생님이 점심 먹고 3시간 후에 문자가 왔다. “몇 번 생각해도 모든 학생에게 잘 대해 주시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존경할 수 있는 선배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학생의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집에 묶여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참 못난 선생님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 자세로 선생님의 길을 가야 하는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로 대신하고 싶다. 선생님은 독불장군이 아니라 늘 배우고 익혀야 하는 사람이기에 학생과 동반 성장하는 교사라야 된다고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학문적인 측면과 인격적인 측면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학문적 측면에서는 늘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자도 논어 첫 구절에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듯 선생님은 대학 다니며 배운 전공지식으로 오랜 시간 마르고 닳도록 수업하면 안 된다는 말이하고 싶다. 같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생님이 실력 없으면 학생들은 선생님을 절대 따르지 않는다. 현재의 학교 교실에서는 선생님을 무시한다. 특히 현대 정보 사회에서는 지식이 넘쳐나고 온라인 명강사가 넘쳐난다. 그런데 교과서에 국한된 지식으로 학생들을 좋은 수업으로 유도하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늘 독서를 생활화하여 좋은 수업을 위해 꾸준히 배우고 익혀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격적인 측면에서는 권위적인 선생님이 아니라 소통하는 선생님이자 바른길로 인도하는 상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제든지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학생들에게 듣고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교사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교사로서의 최고 가치가 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인격과 실력을 갖추는데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는 말에 반대하거나 부정(否定)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인격은 첫 사회생활의 터전인 학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유아(幼兒)라도 모두 자기 생각이 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행동한다. 아이를 어른의 축소판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어린아이도 인격의 결정체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기반을 닦아주는 것이 선생님의 마지막 책임이다. 실력 제일주의에 사로잡혀 학생들을 우열로 편을 갈라 처음 사회 생활하는데 쓴맛부터 보는 학생들이 어떻게 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 몫을 다할 수 있겠는가? 시작부터 화가 치밀고 울분이 쌓이면 사회를 보는 시각도 삐뚤어지기 때문에 올바른 사회인으로 적응하기 힘이 든다. 그래서 인격도야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지성을 갖도록 선생님이 최선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인격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그 향이 만 리를 간다고 하여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다. 선생님의 고매한 인격은 제자를 한 인간으로 곱게 키워 다음 세대의 사람들까지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음을 자각하자.
2020. 5. 15. 憲
※患-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