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 뉴미디어 중계 유료화, 기타 변화에 대한 생각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KBO의 큰 변화는 뉴미디어 중계 유료화입니다.
2024 시즌 개막을 얼마 앞두고 KBO는 3년간 1,350억 원이라는 거액을 베팅한 티빙(TVING)을 뉴미디어 중계권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간 평균 450억 원입니다. KBO는 중계권을 10개 구단에 1/10씩 분배하기 때문에 연간 550억 원으로 재계약한 TV 중계권료를 포함하면 구단별로 연간 매출 100억 원의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네이버 등의 기존 사업자들과 금액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네이버 등이 허용하지 않던 유튜브 숏츠 등 영상 재가공 활용을 연 것이 선정에 큰 이유가 됐다고 합니다. 그동안은 구단 자체 제작 영상에도 중계화면을 사용하지 못했고 심지어 경기 장면을 직접 찍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3044424g
구단은 환영했지만 10년 넘게 프로야구를 네이버, 다음 등을 통해서 무료로 보던 것에 익숙해 있던 팬들은 초반에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시즌 초반에 비해 지금은 이슈에서 비껴 난 듯 하지만 네이버 등에서 무료로 보던 인터넷, 모바일 중계를 티빙에 매월 구독료로 최소 5,500을 내고 봐야 한다는데 불만인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특히 준비 시간의 부족이었는지 시범경기부터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충분히 예측을 못했는지 서버가 견디지 못해서 중계품질도 좋지 않고 야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중계가 끊어지기도 하고 하이라이트 영상은 늦게 올라오고 자막에서 야구용어를 잘못 쓰거나 팬들이 부르는 특정팀 멸칭이 사용돼서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477/0000478343
저는 가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뭐냐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오지만 제가 생각하는 차이는 '돈을 벌기 위함'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프로 스포츠는 스포츠를 보여주고 돈을 버는 비즈니스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는 말만 프로였지 적자에서 한 번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프로 스포츠는 무엇으로 돈을 벌 까요?
전통적으로 프로 스포츠의 3대 매출원은 중계권료, 스폰서십 수입, 운영 수입입니다.
스폰서십 수입은 구장 내 광고, 유니폼 스폰서, 스폰서 업체의 금전 및 물품 지원, 구장 내 스폰서 존 등을 운영하는 대가로 받는 수입 등입니다.
운영 수입은 티켓 판매, 구장 내 식음료 판매, 임대매장이나 기타 수익시설 운영, 유니폼 등 굿즈 판매 등이 포함됩니다.
여기서 해외 프로팀들에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중계권료입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연간 전국중계는 리그 사무국이 계약하고 구단별로 지역 방송사와 전담 중계 계약을 최소 10년 이상 장기계약 하면서 거액의 중계권료를 받습니다. LA 다저스나 뉴욕 양키스 같은 부자 구단은 아예 자체 방송사를 세우고 중계 제작한 영상을 방송국에 판매합니다. 이때 방송국은 지역에 독점적 중계권을 가지고 유료 중계를 하고 경기 전후, 이닝 중간 광고 외에도 포수 뒤 광고판 AR 광고도 가져가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보통 방송사들은 다시 이 중계를 재판매하는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해외 경기를 그렇게 사 오게 됩니다.
아래 2015년 메이저리그 매출 비중 그래프 참조 (자료 출처 : https://www.quora.com/How-much-money-does-an-MLB-team-earn-per-game-on-average-Is-there-a-difference-in-earnings-between-wins-and-losses)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연고팀 경기를 보려면 경기당 돈을 내고 케이블 TV나 위성 TV 중계를 보는 PPV(Pay per View) 가 오래전부터 당연시되어 왔습니다. 경기당 비용도 절대 싸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스포츠 바나 영국의 펍이 활성화되어 있기도 하다고 봅니다.
MLB TV 등 뉴미디어 중계의 경우 연간 구독료를 내더라도 연고팀 경기를 연고지에서 볼 수 없습니다.(Black out 정책이라 합니다) 경기장에 가서 보거나 경기당 돈을 내고 보라는 거지요.
그에 비하면 그동안 KBO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무료 중계는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4대 프로 스포츠 종목 중엔 한때 방송사에 돈을 주고 중계를 맡긴 적도 있을 정도로 중계권료 수입이 미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돌파구가 바로 OTT였습니다. 미국에서 아마존프라임 비디오에서 NFL을 중계하고, 애플TV+ 등에서 MLB 경기와 MLS(메이저리그 사커)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OTT 입장에선 충성스러운 스포츠 중계를 통해 사용자 락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 이용자들이 많은 곳의 경우 스포츠 중계를 통해 남성들을 대거 유치할 수 있지요.
최근에 미국도 장기계약을 맺은 스포츠 케이블 TV의 실적 악화로 구단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OTT 구독을 하고 케이블 TV를 해지하는 코드 커팅(Cord cutting)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영향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김하성이 뛰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2023년에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적어지자 페이롤을 줄이기 위해 주력 선수를 대거 트레이드하기도 했지요.
https://www.yna.co.kr/view/AKR20240110116000007
우리나라에선 축구 K리그가 먼저 쿠팡플레이에서 전경기 중계를 시작했고 2024 시즌부터 드디어 KBO 리그도 OTT와 손을 잡았습니다.
넷플릭스의 독주에 국내 OTT가 힘을 못 쓰는 가운데 티빙은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개막 한 달이 좀 더 지난 시점에 티빙의 선택은 적중했는지 홀로 가입자 증가와 매출 증가로 나타나 구독자 수가 넷플릭스에 이은 2위라고 합니다. 합병을 추진 중인 웨이브까지 합치면 중복 구독자를 제외해서 넷플릭스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프로야구팬들의 유료 가입과 함께 오리지널 시리즈의 시청시간도 증가하는 등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합니다.
무료 시청 기간이 끝나고 유료화가 본격 시작된 5월이 되어 구독을 해지한 인원도 꽤 됐다고 하지만 신규 가입자도 있을 겁니다. 시간을 두고 봐야 알겠지만 OTT 구독이란 게 한번 하면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프로야구팬이라면 매일 궁금한 경기 중계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티빙도 많이 노력을 했는지 초기보다 중계품질도 좋아졌고 하이라이트 영상도 빠르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매주 한 경기씩 티빙 슈퍼매치라는 경기를 지정해서 자체 콘텐츠도 만드는데 처음엔 누가 얼마나 볼까 했지만 그 영상에서 나온 인터뷰 등이 SNS나 유튜브 댓글 등에서 자주 보이는 걸 보면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https://www.mk.co.kr/news/business/10986375
저는 뉴미디어 유료 중계 시작이 다른 변화보다 한국 프로야구를 한 단계 나아가게 하는데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가 실력은 떨어지면서 돈만 많이 받는다고 비난받지만 연봉 규모에서 미국,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리그 외형의 확장이 프로야구 비즈니스의 파이를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더 좋은 선수도 영입하고 구단이 과감히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뉴미디어 중계 유료화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직 프로야구단 직원이었으니 일반 팬들에 비해 팔이 안으로 굽었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저 역시 팬이었던 시절에 비해 야구판 한가운데 있으면서 관점이 많이 변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평범한 팬일 때와 달리 프로야구라는 비즈니스의 관점도 함께 갖추게 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젊은 층은 TV를 잘 안 보고 집에 TV가 아예 없는 집도 많아지는 추세에 PC나 모바일을 통해 무료로 보던 야구 중계가 유료화가 되니 반발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 가뜩이나 매달 구독료를 내는데 또 하나의 구독료가 추가되니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뉴미디어 중계 유료화는 시대의 흐름이며 매년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며 출범 40년이 넘도록 자생력이 없는 KBO리그가 모기업의 지원에서 독립하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티빙은 더 좋은 중계 품질과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KBO와 구단 역시 기존의 관점을 벗어나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자생력을 갖춰 명실상부한 '돈을 버는' 프로 스포츠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