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의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 달성에 대한 생각
여기 평범해 보이는 부산 출신의 야구선수가 있습니다. 아니 야구선수로서는 174cm로 작은 편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천재타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작은 체격 탓인지 2007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고향팀에게 4라운드가 돼서야 뽑혔습니다.
그래도 개막전부터 출전 기회를 얻어 안타를 기록했지만 시즌 중 투수의 공에 맞아 손목뼈가 부러지며 데뷔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년차에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름도 바꿔봤습니다.
개명이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입단 3년차부터 1군 주전으로 도약합니다.
매년 수많은 안타를 때려내고 최다안타왕도 3번 차지하고 성공적인 FA 계약도 했지만 타격왕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습니다. 급기야 두 번째 FA를 앞둔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성적이 떨어지자 고향팀은 좋은 제안을 하지 않았고 그를 필요로 했던 지역 라이벌팀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이적 첫해 다소 부진하자 겨울 휴식기에 사비로 미국으로 향합니다. 부진했다 해도 현역 선수 중 누구보다 많은 안타를 기록 중인 선수가 오랫동안 몸에 밴 그만의 타격을 바닥부터 다시 뜯어고치기로 한 겁니다.
시즌이 끝난 뒤 남들이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하던 30대 중반인 17번째 시즌에 4번째 최다안타 타이틀과 타격왕과 골든글러브를 거머쥐고야 맙니다
역대 최초로 8년 연속 150안타 이상을 쳐내는 등 안타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습니다. 결국 만 36세이자 18번째 시즌인 2024년 6월 20일 드디어 2,505번째 안타를 쳐내면서 KBO 리그 통산 최다안타라는 금자탑을 이루게 됩니다.
손아섭 선수 이야기입니다.
항상 리그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아왔지만 그렇다고 리그 최고의 선수라고 하기엔 우승도, 메이저 타이틀도 없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묵묵하면서도 악바리같이 달려온 그는 최소경기 2,500안타를 기록하더니 그 흔한 아홉수도 없이 전인미답의 2,505안타의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제 은퇴 전에 꿈의 3,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을지 기대하게 됐습니다. 메이저리그는 33명, 일본에선 장훈 선수 한명만이 기록한 3,000안타를 KBO에서 기록한다면 한동안 도전자가 나오기 힘들 위대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150년 전통의 메이저리그에서 위대한 기록을 꼽으라면 보통 칼 립켄 주니어(Cal Ripken Jr.)의 2,632경기 연속 출장 기록과 조 디마지오(Joe Dimagio)의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꼽습니다.
배리 본즈(Barry Bonds)의 통산 최다 홈런(762개), 피트 로즈(Pete Rose)의 통산 최다 안타(4,256개)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리 본즈는 약물 의혹으로 명예의 전당에 결국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피트 로즈는 감독 시절 자신의 팀에 불법 베팅하여 야구계에서 영구 퇴출됐습니다.
그에 비해 칼 립켄 주니어의 연속경기 출장 기록이 칭송받는 것은 바로 그의 성실함과 꾸준함 때문입니다.
당연히 꾸준히 선발로 출장할 정도로 좋은 기량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큰 부상을 당하지 않고 오랜 기간 체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려 21 시즌 동안 통산 400개 이상의 홈런과 3,000개가 넘는 안타를 치는 강력한 타격과 함께 190cm가 넘는 거구임에도 40대까지 커리어의 대부분을 내야수비의 핵심인 유격수로 뛸 정도로 좋은 수비력도 유지했기에 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손아섭 선수는 어떨까요?
매년 큰 부상 없이 항상 주전으로 나서며 정도의 꾸준함은 기본입니다.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했지만 체격이 작으니 홈런이 적을 것 같지만 이 글을 쓰는 날(2024. 6. 24) 기준 통산 홈런이 181개로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강하고 빠른 스윙을 하는 선수입니다. 발도 빨라 통산 232개의 도루로 역대 공동 22위에 올라 있습니다. 수비 범위가 좁고 외야수로서 어깨가 다소 약하다는 평이 있어서 최근에는 주로 지명타자로 많이 나오지만 그래도 평균 정도의 수비는 충분히 소화해 냅니다.
하지만 마치 손흥민 아버지의 '흥민이는 아직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라는 말을 스스로 실천하듯이 2023년 KBO 리그 최초로 8 시즌 연속 150안타를 기록했을 때 인터뷰에서 "단언컨대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타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며 매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지만 오히려 그의 장점은 철저하게 루틴을 지키는 것입니다. 매일 일찍 출근하여 자신만의 훈련 스케줄과 단백질 위주의 식단 관리까지 야구를 잘하기 위한 모든 것을 매일같이 철저하게 지킵니다. 운동선수에게 루틴이란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루틴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틴이야말로 지키기 어렵습니다. 루틴은 같은 행동의 반복이고 반복은 지루합니다. 사람은 지루함을 참기 힘든 동물입니다. 이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한 유혹이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예전처럼 강제로 합숙을 하는 시대도 아닙니다. 프로선수라면 사생활은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 뛰어난 선수가 말도 안 되는 일탈을 하다 추락을 하기도 합니다. 꾸준함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저부터 자신을 돌아보며 절감합니다.
손아섭 선수의 별명이 된 '오빠'는 중학생 때 SNS에 올린 흑역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흑역사로 남을 수 있는 이 글에서 보인 자세를 가장 많은 안타를 친 30대 후반에 접어든 오늘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손아섭 선수는 야구에 임하는 자세가 정말 진지합니다. 하지만 유쾌하고 대인관계도 좋으며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면서도 필요할 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카리스마도 있습니다. 일부 몸값 비싼 선수는 야구는 잘해도 구단 마케팅이나 유튜브 영상에 협조를 잘하지 않는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손아섭 선수는 자신의 흑역사인 '오빠 므찌나'를 구단 상품으로 만들 때도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매년 1,000명 정도의 선수들이 신인 드래프트에 나와 10% 정도만 지명됩니다.
여기서 다시 입단 3년 내에 방출되는 선수들이 절반은 됩니다. 10년이 지나면 입단 동기 중 현역은 팀별로 1~2명이거나 아무도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아섭 선수와 2007년 신인 드래프트 동기 중 현역선수는 김광현, 양현종, 이용찬 등 6명밖에 없습니다. 입단부터 1군 선수가 되는 좁은 길을 뚫고 10년 이상 현역으로 뛰는 것만으로도 성적은 물론 성실성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갖고 있는 마리아노 리베라는 자서전에서 은퇴하는 그날까지 항상 루틴을 유지하고 생활을 단순하게 하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신의 결과보다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공 하나 하나와 그 과정에 집중했더니 어느 날 대기록을 세우게 됐다고 합니다.
손아섭 선수 역시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운 뒤 인터뷰에서 3,000안타에 도전하겠냐는 질문을 받자 한 번도 구체적인 숫자를 목표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매 타석 최선을 다해 임할 뿐이라는 그의 자세가 언젠가 3,000안타로 스스로를 이끌 것이라 확신합니다.
꾸준함은 위대해지는 유일한 길일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손아섭 선수의 대기록 달성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