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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관점으로 본 동덕여대 사태

젠더 갈등의 정점이자 끝이 아닐까?

 최근 정치, 경제, 트럼프 당선 등을 제외하고 가장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일이 아마 동덕여대 사태(?) 일 겁니다. 학교 측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했다는 사실에 반발하며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가 폭력 양상을 띠면서 그 이후 이어진 여러 일들에 다들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입니다. 이 분위기를 틈타(?) 저도 한번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학생들의 주장이 맞다 아니다 하는 비판적인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을 겁니다. 

 제삼자로서 속속들이 알지도 못할뿐더러 동덕여대 학생들과 그에 동조하는 다른 여대들의 입장이 그다지 이해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를 비난하는 글이나 영상들도 사실 완전히 객관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사태가 진화론의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흥미롭기에 한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진화의 정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진화'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잘못 쓰고 있습니다. 진화란 신체적이나 지능 등이 점점 발달하는 과정이라는 뜻으로 쓰이곤 합니다. 사실 진화는 그게 아닌데 말이죠. 

 인간의 진화 단계로 많이 회자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아래) 1965년에 출간된 Early Man이라는 책에 실린 인간의 진화 단계 그림입니다. 이 그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원숭이에서 유인원을 거쳐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고 잘못 알고 있기도 합니다. 

Rudolph Zallinger ’42BFA, ’71MFA, from Early Man (Time-Life Books, 1965)


 진화(進化. Evolution)라는 단어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기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라틴어 "evolutio”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펴다” 또는 “전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18~19세기에 “evolution”이라는 단어는 생물학 이전에도 이미 변화와 발전의 단계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예컨대, 기계 공학이나 철학에서 “evolution”은 발전 또는 개선 과정을 암시하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이상 Chat GPT 4o의 대답)

 그래서인지 아직도 이렇게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 진화라고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 아니 생물의 진화는 나무가 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영장류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오래전에 원숭이가 갈라졌고 유인원도 갈라졌고, 인간까지 갈라져 따로 번식해서 현재의 서로 다른 종이 된 겁니다. 

 시간이 지나 점점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다양한 종이 멸종했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종(種)이 있을 뿐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속(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일뿐입니다.


 DNA가 복제 때마다 아주 작은 돌연변이가 생기고 그중 일부는 돌연변이의 형질을 이어갑니다.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나의 유전자 절반과 다른 성의 유전자 절반을 합쳐서 2세에게 복제해 줍니다. 이 과정에서 후손을 많이 남기지 못하면 도태됩니다. 이렇게 종 전체가 도태되어 사라지는 것을 멸종이라 합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종보다 멸종한 종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멸종과 번식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을 다윈은 자연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어느 종의 멸종 또는 번식을 '선택'하는 주체가 아닙니다. 그보단 차라리 자연스럽게 걸러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왜 진화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을까요? 여자대학이라는 하나의 종은 과연 번성할 것인가 멸종할 것인가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원숭이부터 인간까지 계통이 갈라져온 도표 (출처 : 고등과학원)


2. 개방하지 않으면 어차피 소멸한다. 


 다시 동덕여대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동덕여대가 일부 단과대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을 논의하려 한다는 소문에 학생들의 반대시위가 시작됐지요.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데 수험생의 절반을 대상으로 뽑아야 합니다. 게다가 이공계 학과가 적어 취업률에서도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공학 전환을 검토했다는 학교의 고민이 이해가 갑니다.

 여대의 정체성을 지키고 성폭력의 두려움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한다는 학생들의 주장이 이해는 잘 안 가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위의 폭력성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을 하나의 생태계라고 한다면 학생들의 주장과 행동으로 인해 어떤 미래가 다가올까요?

 시위의 대표적 구호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인 모양입니다. 

 마치 조선 고종 때 단발령이 내려지자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던 유생들의 외침을 떠오르게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투를 자르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었나, 그저 시대착오적인 수구세력이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일본의 강압에 저항한다는 상징적 의미라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하던 조선은 결국 외세도 이겨내지 못하고 발전도 못하다가 국권을 상실했습니다. 


 여성들이 교육받을 기회가 거의 없던 시절에 태어난 여자대학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냐는 이야기는 오래됐습니다. 안 그래도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여대는 많이 사라져서 지금은 7개만 남았습니다. 이 와중에 '폭력시위'라는 프레임까지 스스로 만든 동덕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고 생각합니다. 


 생태계에서 다양성은 정말 중요합니다. 

 다양한 개체를 가진 종이라면 일부 개체가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아 다시 자손을 남기면 됩니다. 하지만 다양성이 떨어지는 종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 모든 개체가 한꺼번에 도태될 위험이 있습니다.  

 변화는 위험을 수반하지만 환경이 변할 때 주체적으로 변화해서 적응하지 못하면 제자리에서 말라죽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외부에 대해 개방성이 떨어지는 시스템은 다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개방하지 않으면 다양성이 없어지고 환경 변화에 취약해집니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겠다지만 개방하지 않으면 저절로 소멸하는 길을 앞당겨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덕여대 정문에 있는 이번 시위의 대표적인 문구 (사진출처 : 한경닷컴)


3. 표준편차 : 젠더 갈등은 오래가기 힘들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의 갈등이 참 많았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도 있지만 저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젠더 갈등이었습니다. 

 남녀가 본능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고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남녀가 나뉘어서 서로를 혐오하고 비난하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젠더 갈등은 도저히 해결될 기미는 안 보이고 악화되기만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은 앞으로 세대 갈등이 가장 큰 문제지 젠더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히 남녀가 갈라져 싸울 수도 없고 무엇보다 강고할 것 같은 진영도 이탈자가 생기면서 저절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게 생물의 본능이니까요.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과연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날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FtbOOfhUHh8?si=HFod6l9NtzUSL-X9&t=295

남녀갈등은 아무리 커도 결국 이탈자가 생기면서 와해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여혐과 그에 반발해서 나타난 남형들이 모두 온라인이라는 익명성에 숨어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안 보이는데 했던 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적에서 배척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번 동덕여대에서 집단적으로 한쪽 성이 다른 성을 배격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니 사회적 충격이 컸을 겁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남형, 여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표준편차 곡선에서 양쪽에 있는 소수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는 남녀가 서로 끌리고 협력하며 살아갑니다. 

 급격한 환경변화로 양 극단이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되면 한쪽이 쭉 올라가겠죠. 하지만 생태계에서 환경 변화는 생각보다 아주 긴 기간에 일어나기에 어느 날 갑자기 소수에게 유리한 환경은 잘 생기지 않습니다. 


표준편차 곡선


4. 젠더 갈등의 정점이자 내리막이 아닐까?


 진화생물학의 큰 주제 중 하나가 성 선택입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수컷은 더 많은 번식 기회를 얻으려 하는 것이 유전자 복제에 유리하고, 암컷은 새끼를 낳고 키우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에 내 곁을 지켜줄 수컷을 신중하게 고릅니다. 

 이 두 가지 욕구는 사실 상충되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서 만나서 평형을 이룹니다. 

 극단적 소수는 잘 선택되지 않아 유전적으로 도태되고 다수의 중간값에 위치한 개체들의 수가 증가하게 됨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동덕여대 사태가 젠더 갈등의 정점에서 이제 내려가기 시작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 선택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긴다면 일부 개체는 다수의 길로 이탈합니다. 이미 공개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2/3의 학생들은 살 길을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개투표이기에 반대할 용기를 내지 못한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강해 보이는 집단도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기 시작하면 깨지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강철대오를 강조하는 겁니다. 학생들의 대표인 학생회조차 이번 수업거부와 폭력적인 시위 방식이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는 무책임한 자세를 보면 얼마 못 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여대 학생들도 연대를 표명했지만 대장격(?)인 이화여대는 동참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그들은 다른 여대와 같은 급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우리끼리 잘 살아가겠다는 길을 선택한 걸까요? 


 역설적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과격한 주장이 힘을 잃고 진짜 남녀가 평등하고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저만의 희망을 봤습니다. 너무 긍정적인 자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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