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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조현병 환자와 대통령

대통령 대국민 담화로 떠오른 군시절 경험한 조현병 환자 이야기

 오래전 소위 임관 후 병과학교 초군반(초등군사반. OBC) 교육 중의 일이었습니다. 

 같은 구대에 내무실은 달랐지만 키 순으로 맞춰지는 군의 특성상 대부분 수업에서 같이 했습니다. 

 이 친구는 평소 상당히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일과를 마친 후 저녁식사 전에 항상 단독군장에 4열 종대로 4km 구보를 했습니다. 저와 그 친구는 맨 앞줄에서 항상 같이 뛰었습니다. 

 군에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의 대열은 항상 키 순으로 서기 때문에 앞줄은 뒷줄을 생각해서 스피드를 조절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뛰기 시작하는 겁니다. 

 같은 줄의 우리는 천천히 뛰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초급장교가 이렇게 천천히 뛰면 어떡해? 열심히 뛰어야지" 하면서 스피드를 내는 겁니다. 그렇다고 대열을 흩트리면 안 되니 우리는 말리면서도 그 친구의 페이스를 맞춰야 했고 뒷줄은 쫓아가느라고 허덕이다가 급기야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구보를 마치고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죠. 장교가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평소 조용하던 그 친구는 수업 중 쉬는 시간이 되니 수다쟁이가 됐습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포경수술을 했는데 아직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놈들은 남자도 아니라면서 다른 동기들에게 수술 여부를 묻더군요. 저는 다행히(?) 남자였습니다^^

 며칠 뒤엔 자기가 대통령이라고도 했는데 웃기는 놈이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어느 날은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대열을 이탈하더니 주특기 교육을 받으러 가는 이등병들에게 왜 장교에게 경례를 안 하냐면서 혼을 내는 겁니다. 단체로 이동하는데 무슨 경례를 하냐고 우리가 말려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이 친구 좀 이상하네 했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작스러운 내무실 점검에 빨아서 침대 난간에 널어놨던 양말이 걸려서 저 같은 자잘한 위반을 한 동기 여러 명과 군장을 싸서 연병장을 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사 바깥에 있는 샤워실에 불이 켜지더니 몇 명이 침대시트를 들고 샤워실로 뛰어가는 겁니다.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침대시트로 누군가를 감싸서 내무실로 데리고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뺑뺑이를 마치고 내무실에 돌아오니 아까 그 친구가 자기 내무실 침대에 묶여있다고 하더군요. 

 물어보니 자신이 대통령인데 자기를 암살하러 온다면서 샤워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답니다. 

 그래서 동기들이 대통령 경호원인데 '각하를 구하러 왔습니다'라고 하고 들어가서 데리고 들어온 겁니다. 

 이후 혹시라도 자살 등 사고가 있을까 봐 침대에 묶어놨다고 합니다. 


 다음날 멀쩡해진 것 같아 수업에 들어갔는데 중간에 벌떡 일어나더니 강의실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 친구는 그 이후 같이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군 병원 정신과에 입원한 거지요. 

 나중에 들으니 조현병(당시엔 정신분열증)이었다고 합니다. 

 진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조현병의 원인이 포경수술 후 처방받은 항생제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먹어서라고 합니다. 

 문제의 그날도 일과 후 병원에 다녀오다가 퇴근하는 대위의 차를 세우고는 장교중대로 가자면서 뒤통수를 때렸다고 합니다. 그 대위가 이상하다는 직감에 장교중대로 데려갔고 그 이후 사달이 났던 겁니다. 


 그 친구를 다시 본 건 전역을 앞두고 취업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였습니다. 

 다른 동기들 말로는 완치되어 병과학교에 남아서 무사히 군생활을 마쳤다고 합니다. 

 잘 지내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조현병의 증상 중 하나가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을 오가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감정 조절이 안되고 자신을 공격한다고 믿다가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장교의 권한을 과도하게 생각하고 나서더니 급기야 스스로를 대통령이라고 믿게 됐고 다시 암살위협을 받고 있다며 소동을 일으킨 것이 전형적인 조현병 증상이었던 겁니다. 


 그동안 윤석열을 보면서 좀 이상한데 정도만 생각하다가 지난주 비상계엄 후 진짜 정신이 이상하구나 했는데 오늘 대국민담화를 보니 군 시절 그때 그 동기가 떠올랐습니다.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과 같이 근거도 없는 부정선거가 있다고 믿고 자신과 아내를 곤혹스럽게 하는 야당을 파렴치한 종북세력이라고 믿고 내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도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원인은 항생제 말고 뭘까요? 짐작은 가지만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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