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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24년 결산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2024년을 결산한다 

 2024년은 모두에게 커다란 2개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사건과 무안공항에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를 벗어나 폭발해서 179명의 희생자가 나온 제주항공 참사일 겁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상처를 안겼습니다. 

 저에겐 연초부터 정말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딱 맞는 한 해였습니다. 제 개인에게 일어난 굵직한 사건으로 2024년을 결산해 보겠습니다. 


1. 권고사직


 2023년 12월 15일에 무릎 연골 파열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해가 바뀌어 출근한 지 며칠 뒤 인사를 담당하는 경영지원팀장이 회의실에 보자더군요. 

 제가 권고사직 대상자랍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통보에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IMF, 2008년 금융위기 등 때 구조조정을 잘 피해왔지만 어느덧 제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습니다.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연말 조직개편 때 대외업무라는 애매한 직무가 배정되고 평가에서 최하점수를 받았을 때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해가 바뀌자마자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수술을 받고 목발을 짚고 출근해서 권고사직을 당하니 조금 더 서러웠던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법정 정년인 60세를 채우는 직장인이 거의 없고 영원히 직장생활을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2011년 건설사(DL E&C)를 나와 과감히 NC 다이노스 창단과 함께 이직했던 약 13년간의 기억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나의 피 땀 눈물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던 창원NC파크를 마지막으로 찍어봤습니다. 


2. 브런치를 시작하다


 작년부터 같은 팀 젊은 직원이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곳에 글을 써보면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고민하다 브런치를 선택하고 첫 글을 쓰고, 작가신청을 승인받아 첫 글을 올렸습니다. 

 첫 글의 제목이 'IMF의 추억'이었습니다. IMF 때 처음으로 실직의 공포를 겪었던 이야기를 쓰고 이제 나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시작했고 시간적 여유를 바탕으로 36개의 글을 썼습니다. 이 글까지 하면 37개군요. 

 돌아보면 아쉬운 글이 많았고 생각만큼 구독자나 좋아요 숫자가 늘지는 않았지만 내년에도 꾸준히 써가겠습니다. 

 아쉬운 점은 4월에 다녀온 미국 개기일식 여행기를 열심히 쓰다가 8월부터 다시 시작한 일이 바빠지면서 마무리를 못한 것인데요. 글쓰기 자체도 많이 줄었습니다. 여행 다녀온 지 1년이 되기 전에는 마무리하겠습니다. 


3. 미국 개기일식 여행


 권고사직 대상 통보를 받은 날 출장이 있어 운전을 해서 서울로 향했습니다. 구독해서 즐겨 듣는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운전을 하는데 4월에 미국에서 있을 개기일식 여행단 모집을 한다고 했습니다. 

 아직 권고사직 조건을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사실상 다른 길이 없음을 알고 있었죠. 

 언젠가 한 번은 개기일식을 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고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도 결심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과학관 관람 등으로 짜인 일정이 맘에 안 든다고 같이 안 가서 혼자 가기로 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2월부터 서울로 돌아와서 쉬었지만 3월 말일자로 퇴사하고 4월 초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어울려 개기일식이라는 장엄하고 황홀한 경험도 하고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서 전설적인 비행기들의 실물과 아폴로 11호 귀환 사령선 모듈을 직접 본 건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생물학자 이정모 관장님, 천문학자 이강환 박사님,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님과 함께 한 시간도 좋았습니다. 

 공식일정 후 이틀을 추가한 뉴욕 자유여행도 참 좋았습니다. 센트럴파크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9.11 메모리얼, 뉴욕 양키스 경기 관람도 권고사직의 아픔을 잊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개기일식의 장엄함은 사진으로 표현이 안됩니다. 


4. 다시 일을 시작하다


 4월 말부터 실업수당(공식용어는 구직급여) 신청을 했습니다. 

 퇴사할 무렵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를 한 회사도 있었기에 조금 쉬다 보면 일을 하겠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는 차일피일 약속을 미뤘고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처음엔 인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여유였지요. 하지만 남들 일할 때 집에 있는다는 것이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결국 8월 중순부터 친구가 제안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시 50플러스센터에서 하는 4050 인턴십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친구 회사에서 일하며 활동비는 서울시 50플러스센터에서 지급받는 3개월짜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파트타임이라 활동비가 아주 적었지만 친구와 전혀 새로운 일을 하며 활력이 생겼습니다. 주로 반도체에 사용되는 열전달 물질(Thermal Interface Material - TIM) 영업입니다. 생소한 반도체에 대해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생소한 기술용어와 역시 거의 해본 적 없던 영업은 여전히 힘듭니다. 

 그래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세 번째 도전에 나서게 되어 삶의 활력은 생겼습니다. 


 그리고 허구연 KBO 총재의 요청으로 시설. 인프라 분야 어드바이저도 하게 됐습니다. 

 한두 달에 한번 모임에 나가고 야구장 점검이 필요할 때 출장을 다녔죠. 이전부터 참여했던 잠실돔구장 회의에도 꾸준히 참석하며 기본설계와 운영계획 완료까지 마무리해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회의나 출장으로 크지는 않아도 자문비, 출장비 등을 받아 생계에 조금은 도움이 됐습니다. 

 다만 아쉽다면 3개월이라는 기간 때문에 구직급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겁니다. 부정수급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겠지만 적은 돈이라도 열심히 일해 보려는 의욕을 꺾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5. '교수님'으로 불려보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 야구계에서 일하며 오래 알아온 교수님의 강사 제안을 받았습니다.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스포츠과학대학 스포츠경영학과 스포츠시설론 과목이었습니다. 전공필수 3학점짜리 수업으로 수강생이 80명이나 되어 오전 오후 2반으로 나눠 총 6시간짜리 강의였습니다. 

 대학이나 외부 단체에서 1회성 특강, 발표를 몇 차례 해봤지만 3시간짜리 강의를 한 학기 내내 끌고 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몇 년 전 창원대학교 건축과에서 강사 제의를 받았지만 시간도 안되고 자신도 없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진짜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천안을 가서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오전수업을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1시부터 3시 30분까지 수업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일상이 시작됐습니다. 

 강의계획 짜는 것부터 매주 강의교안 만드는 과정이 모두 난관이었습니다. 퇴근한 뒤 집에서 교안을 만들어야 했고 기존에 강의를 했던 것이 아니기에 전부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중간고사를 대체하는 조별과제를 주고 발표를 시키면서 평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말고사 후 최종점수를 매기는 것도 생소하고 상대평가라 엇비슷한 수준의 답안에 어쩔 수 없이 C학점을 줘야 하는 경우도 있어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학생들이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참 어색했습니다.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줬으면 싶었습니다. 

 일부를 제외하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수동적인 것이 참 안타까웠지만 학기 중간쯤 가니 그래도 서로 얼굴 익히며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모든 학사행정을 웹으로 했고 메일로 학생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생소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교수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니 기말고사와 함께 학기가 끝났습니다. 이제 최종성적에 대한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만 남았습니다. 

 

 강사료는 생각보다 적었고 교통비와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더 적었지만 인생에 한 번은 해볼 만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내년에는 아마 강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한 좋은 기억을 남겨준 단국대학교 체육관이여 안녕


6. 윤석열이 내란을 획책하다. 

 

 쓰리잡을 뛰며 정신없이 서울생활에 적응해 가던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이었습니다. 그날도 강의교안을 만들기 위해 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카톡이 하나 왔고 내용을 보니 비상계엄 선포라는 기사 링크였습니다. 들어가 보니 속보라며 내용은 없고 제목만 있어서 피싱사이트인가 했는데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니 몇 개가 급하게 올라와 있더군요. 급하게 TV를 켜니 대통령이 나와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말이 되나? 전시나 소요사태도 없는데 이 무슨 뜬금없는 비상계엄인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0대 시절까지 군사정권을 경험했던 저에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뒤이어 계엄 포고령 1호가 발령됐는데 '처단'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까지 들어있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로 회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뒤이어 국회에 헬기를 타고 나타난 무장군인들이 들이닥쳤고 계엄해제를 위해 국회로 들어가려던 국회의원들과 대치를 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지켜봤습니다. 

 다행히 2시간 정도만에 표결로 계엄이 해제됐고 군인들도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됐음에도 대통령은 다시 TV에 나와 대국민 담화를 하며 자신의 계엄령이 정당했다고 강변했습니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내란을 획책한 윤석열 대통령은 당연히 탄핵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민의 힘이 모두 퇴장함으로써 정족수 미달로 한 번에 탄핵되지 못하다가 다음주가 되어서야 탄핵이 가결됐습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불법 계엄령 선포계획이 속속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구속됐지만 내란 우두머리인 대통령은 공수처와 경찰의 소환통보에 모두 불응하며 관저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계엄사태와 탄핵이 지연될 때마다 환율은 치솟고 주식시장은 폭락을 거듭했습니다. 탄핵을 심사해야 할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할 때도 환율은 뛰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잘못한 걸 결국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지켜내 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특히나 젊은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K-pop을 부르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희망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결국 이겨낼 것입니다. 

여의도 국회대로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7. 제주항공 참사


 내란사태로 국정과 경제가 어지러웠지만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던 12월 29일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무안공항에서 태국발 제주항공 비행기가 동체착륙을 시도하다가 활주로를 벗어나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새와 충돌한 뒤 문제가 생겼고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아 마지막 수단으로 동체착륙을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속도를 줄일 수 없었고 결국 활주로 바깥의 로컬라이저의 콘크리트 기초와 충돌하며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191명 중 꼬리칸에 있던 승무원 2명을 제외한 189명이 사망한 참담한 사고였습니다. 

 12.3 내란사태로 혼란스러울 때 일어난 대형참사에 모두가 가슴 아파했습니다. 

 연말 가족들 위주로 태국여행을 다녀오던 사람들이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몰랐지만 기아 타이거즈 팀장 가족도 있어서 더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 비전문가들이 무분별하게 의견을 내고 만약 이랬다면 하는 무의미한 가정이 난무합니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미리 계획된 사고 아니었냐는 식의 음모론을 펴나 봅니다. 

 사고조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의견이 혼란만 부추길 뿐이고 유족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애도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사고원인 분석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8. 난생처음 독감에 걸리다. 


 1년 전 수술하며 왼쪽 정강이에 박았던 핀을 빼는 수술을 12월 16일에 했습니다. 주말부터 감기기운이 있어 실밥을 뽑으러 간 12월 30일에 내과검진을 받으며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인플루엔자 검사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뇌까지 들어가는 듯한 검사를 받았고 결국 A형 독감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바로 열이 내리는 주사가 14만 원이라고 했지만 건강보험 적용되는 타미플루를 5일 치 처방받았습니다. 사무실 잠시 들렀다 퇴근하여 재택근무 쉬고 있습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지만 독감에 걸린 것이 억울한지 예방주사 덕에 증상이 비교적 가벼워서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술 때문에 면역이 떨어져서일까요? 이제 나이가 있어서 약해진 걸까요?

 어쨌든 처음 걸려본 독감이. 일반 감기보다는 확실히 독하긴 하네요. 크게 아픈 건 아니지만 몸이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수술하며 느낀 거지만 효과가 불확실한 비급여항목이 너무 많습니다. 1년 전 수술받을 때도 1천만 원짜리 줄기세포 주사를 맞지 않으면 연골이 그대로 재생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핀 제거 수술 때 찍은 사진을 보니 그대로 재생이 잘 됐더군요. 


5일 동안 하루 2번 먹으면 된답니다. 


9. 윤석열 체포영장 발부


 이렇게 우울하게 끝나는가 하던 2024년 마지막 날 윤석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공석인 헌법재판관 3자리 중 2자리도 임명이 됐습니다. 굳이 1명을 여야합의 후 임명하겠다고 한 건 아쉽고 속이 보이지만 그래도 이제 탄핵 심사에 큰 언덕은 넘어간 셈이죠. 

 물론 체포영장 발부 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고 여전히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될지도 말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믿고요. 

 하나하나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해 나가면 올해보다 뭐라도 나아진 2025년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저는 제가 겪었던 큰 일들, 예를 들어 대학입학, 장교 임관, 첫 입사, 결혼, 딸 출산, IMF, 금융위기, 첫 이직 등으로 연도를 기억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힘들고 아등바등했던 2024년으로 기억될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년엔 더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제 몇 분 안 남은 2024년을 추억 속으로 흘려보냅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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