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一期) : 한 평생 살아있는 동안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하다보면 황당 답변을 자주 듣습니다. 고학년들은 문맥 상황에 따라 적당히 넘겨집기라도 하는데 저학년은 좀 어렵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들렸다가 조선시대 명재상이셨던 황희 정승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2학년짜리 아이가 보였습니다. 기특해서 황희 정승을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89세에 돌아가셨더라구요. 아이한테 말했지요.
아이가 저를 빤히 처다보더니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아이는 황희 정승이 89세까지 일기를 쓰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즘은 개인의 사생활 및 인권 침해 가능성 때문에 일기(日記) 검사를 거의 하지 않지만 가정에서 부모님이 일기쓰기를 지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안 쓰는데 나만 쓴다고 생각하면 '일기'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그래서 반문하였나 봅니다.
하긴 2학년 아이한테 한 사람의 전 생애에 해당하는 '일기(一期)'가 아이 귀에는 일상의 기록인 '일기(日記)'와 같은 단어이겠지요. 경험하지 않는 언어이기 때문에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제 잘못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2학년 아이에게 '일기(一期)'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도서관에 있는 '표준 한글 대사전'을 들고 소리없이 교장실로 돌아왔습니다. 문해력 향상에는 책읽기나 신문읽기가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 바탕에는 어휘(단어)의 양이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야 문해력이 저절로 길러집니다. 그 날은 2학년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한 날로 일기(日記)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