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을 보면, 꽃 모양과 크기와 위치가 모두 다릅니다.
달라야 어울립니다.
전에 저도 모르게 '틀리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아들이 '다르다'가 맞는다고 알려줘서 요즘은 제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름은 외부로 드러난 자신만의 시각적 프레임이라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주장 즉 정체성이라 하고요, 고정관념입니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것만 인정합니다.
프레임 밖은 무의식적으로 거부합니다.
남이 하면 불륜(프레임 밖), 내가 하면 로맨스(프레임 안)입니다.
남이 잘못하면 잘못(프레임 밖), 내가 잘못하면 실수(프레임 안)입니다.
내 자식을 때리면 처벌(프레임 밖) 해야 하지만, 내 자식이 때리면 그럴 수도(프레임 안)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프레임 밖), 나만 살면(프레임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종교는 이단(프레임 밖)이고, 내가 믿는 종교만 진리(프레임 안)라고 합니다.
남의 분야의 글은 모르겠고(프레임 밖), 내 분야의 글만 인정(프레임 안) 합니다.
자기 계발은 현실적(프레임 밖)이고, 의식의 확장은 비현실적(프레임 안)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수없는 모순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자연스럽게 보고 듣는 내용들입니다.
어쩌면 저도 같은 문제가 다가오면,
무의식으로 위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기심과 같이 어느 때에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 사람의 95프로를 움직이는 무의식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저장된 기억들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순과 고정관념과 자기주장으로 만든 프레임이,
엄청난 결정을 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선지자요,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 데 사용됐다는 겁니다.
전도 목적은 아니니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위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는지요?
사람들을 사랑하고, 각종 병을 치료하고 도덕적으로 죄가 없다는 것을 다 아는 의인(프레임 안)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모함(프레임 밖) 해서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모함의 주동자들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로마와 결탁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다름의 무서움입니다.
작게는 내 주변의 문제에서만 프레임이 작동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에서는 히틀러를 추종(프레임 밖) 하는 결정을 할 수 있고요,
우리가 의인을 죽이는데 소리치며(프레임 밖) 동의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프레임 밖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야 조금 그 사실이 이해됩니다.
사실, 그들은 그들의 결정에 잘못이 없습니다.
제대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들의 무의식에 저장된 정보 즉 기억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시겠는지요?
저들에게는 프레임 밖에 일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배웠기(기억)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 올바른 정보의 교육이 중요했던 겁니다.
어른이 돼서도 진리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기억의 피해자입니다.
저들은 저들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입력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음의 정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해되어야 정화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리로 마음에 새로운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겁니다.
저장된 잘못된 기억이 없어지고,
진리로 새로운 기억이 입력되어,
마음이 변하면,
프레임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삶의 목적이 돼야 합니다.
그럴 때 진리가 여러분에게 다가와 자유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