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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Oct 24. 2021

퇴사 전날 만난 여자 선배에게 쓰는 편지

과장님, 책임님, 선배... 아니... 언니!

(이제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호칭부터 헤맵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어떻게 나의 퇴사를 알리는 메일을 쓸지 살짝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남들처럼 진부한 한마디,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마땅하나 그렇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게 될지 상상하기도 했었어요.


퇴근 무렵 '퇴사 인사'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설마...' 하며 열어보았더니 제가 한창 해외영업사원으로 열 일하던 시절 함께 했던 전설의 여선배였던 당신의 퇴사 메일이었습니다. 당신을 떠올리면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만, 우선 당신이 퇴사를 한다는 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바로 메일로 답장을 했었죠.

"퇴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고, 앞날에 꼭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상투적인 인사말을 보냈을 뿐이었습니다.


퇴근 후 휴대폰을 보니 당신에게 카톡이 와 있었습니다. 퇴사 전 시간이 하루 이틀 남았는데, 기회 되면 얼굴 보자고 하셨었죠. 그리고 오늘 한창 모니터를 보며 보고서 만들기와 씨름하던 중, "여기 있었구나..." 하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당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잠깐의 티타임을 갖았죠.


당신은 건강상의 이유와 조직개편 시 타이밍의 문제 등으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저는 "힘든 결정 하셨겠네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하고 말씀드렸었죠. 당신은 해외영업을 함께하던 시절의 팀원들은 뭔가 정말 끈끈했다고 돌이키며 저에게 다음의 말을 해주었어요.

'아는언니', 여자는 길면  50살까지는 일할  있는  같은데,
 45세쯤 되면 정말 쉽지 않은  같아.
혹시 '아는 언니' 네가 계속 일한다면, 일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회사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하면서,
 부분에 대해 준비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일해.
그리고 회사에서 일한 이후의 '2 인생' 대해  생각해보고,
그때는 네가 어떤 좋아하는 일을   있을지 많이 생각할  있길 바라.


당신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결정을 했는지 느껴졌어요. 함께 일할 때 정말 꼬장꼬장하고, 무섭고,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듯 무서웠던 당신이 저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당신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함께 일하던 때, 당신은  팀 내 유일한 여자 선배로 저를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던 '하늘 같던 선배'였습니다.

"아는 언니, 일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잘해야 돼."

당신에게 끌려가 훈계를 들을 때면 제 심장은 쪼그라들고 저는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어요.   


물론 해외영업 시기를 마무리하고 팀이 나뉘고, 당신과 제가 각각 해외영업을 떠나 다른 길을 가고, 그 이후에는 종종 만날 때마다 함께 일하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저 따뜻하고 저를 많이 알고 또 이해해주는 진짜 아는 게 많은 언니였어요.


제가 회사를 오래 다니고, 회사의 분위기가 점점 바뀌는 게 눈에 보인다는 글을 많이도 썼지만, 함께 일하던 당신이 퇴사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색다른 일이네요.


해외 영업 사원 당시 함께 일했던 수없이 많은 남자 선후배들이 해외 주재원을 나갔다 들어오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있지만, 이렇게 40대 중반에 퇴사하는 여자 선배를 보는 마음은 또 다른 싱숭생숭함을 불러일으키는 일입니다.


당신과의 짧고도 긴 티타임을 하고, 당신을 배웅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일을 마무리하는 바쁜 손놀림의 순간에도 자꾸 당신의 투명하던 눈물이 떠오릅니다.


함께 일하던 시절 당신은 저에게 정말 '강철의 여인'이었습니다.


2020.12

한때 당신을 저의 하늘이라 생각했던 후배, '아는언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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