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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Jan 14. 2022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날 때

새해를 맞는 동시에 새로운 업무로 이동해서 정신없는 2주를 보냈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기 회의에 참석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신경 쓰고, 정기적으로 돌아가는 업무를 익히는 것이 적지 않게 긴장이 되었나 보다.


일이 익숙지 않아 그 새 약간의 좌절도 했다. 평소에는 최소 7시에는 퇴근하곤 했지만, 9시에 늦은 퇴근을 하고 헛헛해져서 잘 먹지도 않는 라면을 끓여먹었기도 했다.


신입사원 시절이 생각났다. 연차가 쌓이면서 업무 이동을 하게 되면 처음에 설레는 마음도 잠시 곧 빠르게 업무에 적응해서 내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 사실 2주 동안 스트레스가 조금 있었고 약간 주눅 들기도 했었다. (나란 사람 왜 이렇게 잘 쪼그라드는가.)


오늘 아침 메일함을 열어보니 어제 내가 보낸 메일에 해외 주재원이 답메일을 보내왔다. 그분은 내가 10여 년 전 해외영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같은 해외지역 업무를 맡은 선배였다.

해외 영업하던 시절의 감각이 여전히 남아있네~^^


라며 시작한 메일에는 무려 꽃웃음이 있었다. 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성스럽게 문의했던 질문에 대해 관련 자료까지 이미지로 캡처해서 첨부자료와 함께 보내주셨다.


그 메일이 왜 이렇게 기뻤는지 모르겠다. 잠시 낮아졌던 나의 자존감이 쑤욱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단순 질문하면 답이 안 올 것이 뻔해서, 나 나름대로 자료를 분석해서 보냈더니 성의껏 회신해주신 것 같다. 왠지 모르게 2주간 신입사원으로 돌아간듯한 서러움(?)이 있었는데, 위의 한마디에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해외 주재원과 파트너십을 맞춰 가야 하는 업무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한 회사에서 업무로 쌓은 인연은 생각지도 못한 큰 힘이 되어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10년 전에 쌓은 인연이 내가 업무상 힘들 때마다 위기에서 나를 구해줬었다. 2년 전 신임 팀장님이 우리 팀에 부임했을 때, 그는 내가 신입사원 때 인사만 하고 지내던 팀장이었을 뿐인데, 그때의 나를 좋게 봤는지 나를 기획부서로 끌어주었다. 그리고 주요 업무를 주셨었다.


5년 전 새로 이동한 팀에서 완벽히 새로운 업무라 낯설기만 할 때, 유관부서에 꼭 나와 과거에 함께 일했던 분들을 만나게 되어 좋은 인연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었다. 이번 담당업무 이동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파트장은 내가 제3 외국어를 하는 것을 잘 알아 내가 그 나라 업무를 맡도록 배정해주었다. 나중에 출장 가게 되면 좋을 거라고 덧붙이며.


어쩌면 힘들어하면서도 나는 일을 꽤 좋아하고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으로 내 아이덴티티를 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전 일에 열정적이었던 '나' 덕분에 지금의 '나'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 시간이 지나도 좋은 모습으로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이렇게 지금의 '나'는 20대, 30대의 일하던 '나'를 만난다. 물론 너무 잘하려고 애쓰는 과거의 내 모습을 만날 때면 너무 안쓰러워서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오늘처럼 뿌듯하고 기분 좋게 과거의 나를 만나도 너무 잘살았다고 엉동이를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안쓰러운 나도, 열정적인 나도 다 괜찮으니 그냥 젊은 날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해도 나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어찌 됐든 오늘의 나는 오래만에 마음 편히 잠들  있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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