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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Jun 05. 2024

카탈루냐에서 바로크 청중 되기

오페라 <리날도>


  카탈루냐 음악당.


  이쯤 위치하지 않을까, 오른손 검지를 동그란 창에 갖다 댔다. 지중해가 드러나자, 항공기는 해변을 따라 비행하며 고도를 낮추었다.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그나다 파밀리아 성당은 저기구나 싶을 때 몬주익 언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우디는 자신의 역작이 신이 창조한 몬주익보다 높으면 안 된다고 고집했다지. 그렇게 도시의 가장 높은 두 곳이 되었다. 거대한 이정표 두 개, 그 가운데쯤을 짚으면서 바르셀로나가 내게 안기는 것을 허용했다.


  꽃의 건축가 몬타네르의 작품이다. 1908년 개관하는 날, 수많은 카탈루냐인은 만개한 꽃의 표정으로 입장했을 터다. 오래지 않아 카탈루냐의 프라이드가 되었다. 공연장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독특한 아름다움이 내부를 둘러싸고 있다는데, 관객으로서 그 눈부심에 기꺼이 눈멀 준비를 마쳤다.


  땅거미가 질 무렵, 조명으로 노랗게 물드는 로비를 지났다. 계단참에서 읽힌 티켓 바코드를 들여다봤다. 흑백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공간의 채도가 티켓을 물들이고 있었다.


  하우스 오픈에 맞춰 입장했다. 내키는 객석에 앉아보았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일어났다. 2층 객석에도 같은 행동의 흔적을 남겼다. 3층 객석에서는 중앙 통로 계단 끝까지 올라갔다. 돌아서서 무대를 내려다봤다. 오른쪽 끝으로, 이어 왼쪽 끝으로 자리를 옮겨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기둥들은 천장이 아닌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기둥은, 죄다 꽃나무였다. 색색의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는 햇볕 한 줌 받을 수 있는 틈만 생겨도 피어나는 꽃이었다.


  예약한 좌석을 찾았다. 눈을 감았다. 화려함의 잔상이 떠다녔다. 앞자리에서 스페인어가 들렸다. ‘ㅁ’ 발음이 명확한 호칭. 덜 늙은 딸과 더 늙은 엄마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살짝 옆얼굴도 보였다. 딸이 음악을 재생한 스마트폰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울게 하소서’의 선율이 흘렀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이지? 오늘 여기서 들을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처럼 내가 카탈루냐음악당과 더불어 기억하게 될 무대는 헨델 오페라 <리날도>. 1711년 런던 퀸즈 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대표적인 바로크 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아리아 선율이 하도 유명하여 오페라 입문용으로 인식되어 버리다시피 한. 이는 실존했던 카스트라토의 생애를 다룬 영화 <파리넬리>의 영향도 한몫하고 있다. ‘울게 하소서’를 부르는 소름 돋는 영상으로 이 곡을 저장한 이들이 상당할 것이다.


  2024년 2월은 리날도의 연인 알미레나(소프라노)의 아리아보다 리날도의 ‘축제의 나팔을 불어라’를 더 새겨야 했다. 팡파르로 시작하는 아리아를 한동안 무한반복 감상할 것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마우스피스에 불어넣은 바람이 트럼펫 몸통을 통과하면 경쾌함만 남는지도 모르겠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승리를 만끽하면서, 그 영광을 자신의 군대에게 보내는 노래는 순도 높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그런 까닭에 한 이름을 각인해야 했다. 리날도 역을 맡은 카운터테너 카를로 비스톨리. 그의 음성은 갑옷의 단단함과 망토의 휘날림이었다. 치켜올린 두 주먹을 펼치면 부드러움이 쏟아질 것 같다. 가슴에 와닿는 연주를 선사한 성악가에게 보내는 객석의 갈채는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한 청중으로서 박수와 환호에 동참하는 마음은 트럼펫 연주를 닮아갔다.


  음악 전용 홀에서 펼치는 콘서트오페라. 오케스트라와 그 앞에서 서사의 흐름을 연기하는 성악가들의 호흡.


  전막 공연을 만나기 어려운 오페라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값진 시간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보면대 악보를 넘길 때마다 음표들이 일제히 튀어나올 것 같은, 그리하여 실내 각각의 모자이크 한 점, 한 점으로 박히는 상상을 가능케 하는 음악당에서, 세 시간 동안 바로크 시대 청중이 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방문 시기와 맞춤으로 잡힌 공연 일정도 인연의 힘이 작용한 결과겠지. 더 특별한 인연은 내 옆자리에 앉은 타인. 그와 주고받은 말들,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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