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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Aug 21. 2024

연극을 향한 애정 차는 1초?

연극 〈햄릿〉

ⓒ 신시컴퍼니


  “비로소 침묵이 허락되었다. 모든 대사가 끝났다. 모든 것이 지나갔다.”


  마지막 대사다. 짧은 세 문장을 긴 호흡으로 내뱉고 햄릿은 돌아선다. 오늘날의 햄릿은 이러한 모습일 거라는 확신을 주는 배우 강필석. 그가 등을 보인다. 이제 쓰러져도 될 듯하다.     


  연극 〈햄릿〉 포스터를 접하고 이 작품은 반드시 관람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밀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캐스팅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열된 배우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면서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수 있었다. 한 작품으로 당대 연극사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 〈햄릿〉은 이를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연 수익금은 전부 기부된다고 한다. 창작예술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연극인들이 본업에 전념하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뜻에 함께하려는 배우들이 반짝인다.    

 

  홍익대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최연장자와 최연소자의 나이 차는 족히 오십 년. 수백 년을 유기체로 존재한 연극에 대한 열정 차는 1초? 그것도 넉넉하게 쳐준 것일지도. 이를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배우들은.     


  눈빛과 몸짓의 언어로만 말하는 선왕 전무송,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죄를 감추기에 급급한 클로디어스 정동환, 욕정의 와인잔을 내려놓고 죽음을 탄 와인잔을 마시면서, 아들이 삶 쪽으로 이어지도록 선택한 거투루드 길해연. 가벼움의 미학을 보여준 폴로니어스 남명렬, 화폭에서 물의 재생력을 시험하게 하는 오필리어 루나, 그리고 아버지 죽음의 비밀에 둘러싸여 끝없이 고뇌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주검을 끌어안아야 하는 햄릿 강필석.    

 

  차례차례 죽음으로 내모는 장치인 ‘극 안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 1, 2, 3, 4 역 박정자 손숙 손봉숙 정경순은 활자 안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끌어당겼다. 무대 안의 원으로. 원 안의 사각형. 사각형을 품은 동그라미를 따라 불이 켜진다. 그 안으로 죽음이 걸어온다. 뒤를 따라서 침묵이, 그 뒤를 따라서 배우가 걸어온다.     


  모든 배역이 각자의 무덤 같은 의자를 들고 자리를 잡는다.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앉는다. 손짓으로 무엇인가를 그리는 듯하다. 그 윤곽이 비석 같아진다. 

   

  죽인 자도, 죽임을 당한 자도 조용하다. 다만 의자에 앉아 침묵할 뿐이다. 비로소 침묵이 허락되었으므로, 모든 대사가 끝났으므로, 모든 것이 지나갔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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