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다시 치료를 시작해야겠다는 큰 결심!
오늘은 재판이 있었다. 홍길동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서면을 직전에 또 제출했다. 지겹지도 않나. 나는 그런 소모적인 것에 대응할 여력도 없거니와 이렇게까지 질질 끌려온 사실만으로도 이미 지쳤다. 그래서 반박하는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변호사에게 제발 종결만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오늘은 홍길동의 생일이었다. 공교롭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그게 이제 나랑 무슨 상관이람. 되짚어보니 이혼소송이 벌써 2년이 지났다. 결혼 생활보다 이혼부터 먼저 하게 된 경우라 신혼이혼은 막연히 쉬울 줄 알았는데 여러 지정학적 상황에 끌려 여기까지 왔다. 이혼 소송만큼은 시간이 -4배속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다.
오늘은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 댓글이 달렸다. 구독자분의 노크 덕분에 몇 달간 잠잠했던 브런치에 알림이 울렸다. 그동안 나는 의도적으로 글쓰기를 피했다. 더 이상 글 쓰는 게 즐겁지 않았다. 말하기는 최대한 덜어낼수록 좋은 스피치가 되지만 글쓰기는 정반대다. 발가벗는 심정으로 작가의 내면을 관통해서 전부 다 쏟아내야 한다는 어린 시절 교수님의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브런치를 개설하고 첫 몇 달은 곪아가던 상처를 끝없이 토해내느라 매일 글을 썼다. 주제도 순서도 없이 중구난방 의식의 흐름대로 뇌가 반응하는 대로 꾹꾹 한글 자판을 눌렀다. 왜 이제는 그렇게 쓰지 못하는 건지 생각해 보면 내심 짐작 가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가 브런치를 우연히 알게 됐고 이곳도 그 옛날 싸이월드처럼 됐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쓴 글을 어쩌진 않아도 새 글을 쓰는 데는 주저하게 됐다.
회사일은 이쯤 되니 꽤 적응되었으나 시골살이에는 아직도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명확한 근거와 정량적인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역시 가장 어렵다. 오히려 서울보다 몇 천 원은 싼 소주값, 부동산에 붙어있는 아파트 매매가, 도로 위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수. 이런 것들에는 빠르게 익숙해졌고 서울보다 만족스럽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막막함을 느끼다 보니,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지 표현하는 건 더 까마득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나이인 것도 맞지만, 단순히 나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문화적 이질감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말이 잘 통하는 곳에서의 이방인은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다. 차라리 못 알아듣는 외국어는 귓가에 감미롭게 들리기라도 할 텐데.
다행인 건 여름이 되니, 평생 바다가 귀했던 서울촌년에게 매일 공짜로 펼쳐지는 집 앞바다는 더 이상 '그냥 바다'가 아니라 '진짜 천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해가 길어진 덕분에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옷 갈아입고 혼자 바다로 뛰어들어가기를 거의 매일. 하와이안의 삶이 이럴까? 언제든지 어지러운 한국 따위 버리고 해외로 도망갈 상상을 했다. 멍하니 하늘 위에 떠있는 구름을 따라가거나 파도의 시작과 끝을 좇으며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여름날을 보냈다. 얼마 전에는 본격적으로 바다 수영을 하겠다며 오리발도 마련했다.
재판이 끝나고 변호사는 내게 드디어 종결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깝게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종결 이후 선고기일까지 앞으로의 소송 진행 방향, 최악의 시나리오 예측, 이혼 이후의 일상 준비 등.
그동안 소송 과정에 대해서 따로 자세히 쓴 적은 없기에 변호사에 대해서 말할 기회도 없었다. 사실 나는 변호사를 조금 신기한 루트로 선임하게 된 경우다. 2년 전, 어떤 네이버 카페에서 심리상담 관련 내용으로 우연히 쪽지를 주고받을 일이 있었다. 나중에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때 쪽지를 주고받은 사람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사실이 불현듯 생각났다. 내 마음조차 추스르지 못한 때라 홍길동의 정신병과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기운도 없었던 나는 다른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다녀볼 생각도 없이 바로 그녀와 계약했다.
"은연주님, 제가 변호사로 벌써 2년 넘게 봐왔잖아요. 조금만 팩폭을 할게요.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고, 기회가 되면 나중에 심리상담도 다시 받아보세요. 이게 트라우마가 됐을 거예요. 트라우마 치료 한 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놀라지도 않았고 기분 나쁠 이유도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불교 공부에 심리학 책을 수십 권쯤 읽어보니 어렴풋이 느끼던 이 상황의 인과관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홍길동이란 인간을 연구하고 탐구하던 일을 멈췄다. 대상이 나 자신으로 바뀌었다.
2년 전쯤, 다니던 정신과 선생님은 내 방어 기제가 각종 정보를 검색하거나 책을 읽는 등 지식 습득을 통해서 이성적으로 소화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것 같다고 했었다. 그걸 지성화라고 했다. 또, 상담 선생님은 내게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다고 한 적도 있었다. 다른 장면의 대화들을 구슬꿰기 하듯 하나둘씩 연결해 보니 어떤 퍼즐을 맞춰야 하는지 내심 알 것 같았다. 다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얼마 전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와―브런치에서 내가 유일하게 구독하는―대화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그랬다. 지금 니 말은 감정이 너무 정제되어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감정이 너무 정제되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아서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감정이 지나치게 정제되어 있다”라는 말은 다음 몇 가지 층위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결이 사라진 상태
울거나 목소리가 떨리는 등 날것 그대로의 감정적 반응 대신, 마치 보고서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로 이야기하는 걸 말할 수 있어요.
-이미 소화·해석이 끝난 듯한 말하기
실제로는 힘든데, “그건 내가 다 이해했고, 그래서 괜찮아” 같은 톤으로 설명하는 식.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감정의 무게가 잘 안 느껴집니다.
-스스로도 힘들지만 감정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태도
: 감정을 차단하거나 거리를 두고 말하면 ‘안정된 나’를 유지할 수 있죠.
-타인에게 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억제
: 힘들다는 걸 솔직히 드러내면 상대가 무겁게 느낄까 봐, 감정을 “정리된 말”로만 내보내기도 합니다.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기제가 연결됩니다.
-지적화(intellectualization, 지성화)
: 감정 대신 생각과 분석으로 접근함. 예: “나는 그때 분노했어. 하지만 그건 어릴 적 경험 때문에…”처럼 정서 대신 논리 구조로 설명.
-합리화(rationalization)
: 힘든 감정을 “그래도 이런 의미가 있었지”라며 정리해 내는 방식.
-억제(suppression)
: 감정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건 아니고, ‘지금은 안 느끼는 쪽’을 택하는 것.
-격리(isolation of affect)
: 사건 자체는 잘 기억·서술하면서, 감정적 반응만 따로 떼어내 말하는 것.
변호사와 통화를 끝내고, 지난 2년 동안 나의 무의식 한편에 숨어서 빼꼼 고개만 내밀고 있던 내면아이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었던 심리상담센터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문제로 상담이 필요하신 거냐는 수화기 너머의 친절한 목소리에 아주 간단한 대답조차 말문이 막혔다.
'어린 시절 얘기부터 해야 하나? K-장녀? 아 홍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님 지금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자기소개부터 해야 하나? 어... 어....'
횡설수설 설명을 하고 나서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상담 선생님을 추천받았다. 50분에 9만 원. 월급쟁이에게는 부담되는 큰돈이지만 그렇게 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당장 시작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땡빚을 끌어와서라도 더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비단 소송뿐만 아니라 또 다른 끝이 다가오나 보다.
아무래도 새 시대를 맞이할 시간이다.
새 시대에는 나와 조금 더 친해져야지.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더 이상 가까이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