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회장실 속 웃픈 사건사고

― 유머로 버틴 비서의 하루

by Writer Sol

회장실과 임원실에서 일하다 보면, 작은 실수나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웃음이 터질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회장실 속 하루는 늘 웃기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사건사고로 가득하다.

그런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직원 이름을 부르시는 회장님의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김양 사건


우리 회장님은 나를 부를 때 항상 “권양아~” 하신다.

남자 직원은 “김군아~”, “박군아~” 이런 식이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어르신 특유의 다정한 말투로 부르신다.


문제는, 우리 회사에 ‘김양’이 세 명 있었다는 거다.

그날도 회장님이 갑자기 말씀하셨다.

“그… 김양 좀 불러봐.”

그 한마디에 머릿속이 쏜살같이 돌아간다.

‘어떤 김양이지…?’

회장님은 기다리실 줄 모르신다.

대답이 늦어지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지기에,

나는 어떻게든 회장님 말씀의 뜻을 빠르게 알아차려야 했다.

“예, 회장님. 키 큰 김양이요? 키 작은 김양이요? 안경 쓴 김양이요?”

이렇게 하나하나 맞춰가며 정답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한계는 있었다.

직원 수가 많고, 지방 공장에도 직원이 있다 보니

도무지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모를 때가 태반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그 짧은 순간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금 돌아보면 참 웃기면서도 애간장 타는 웃픈 사건이었다.

그땐 매일이 긴장 속의 퀴즈쇼 같았지만,

이제는 그때의 회장님 목소리까지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김양 말이야, 그 김양!”

그 한마디로 시작된 하루는 언제나 드라마였다.



네팔 전통 모자 사건


이름 퀴즈로 하루를 시작했다면,

다음엔 예고 없는 해프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네팔 바이어들이 회장님을 찾아왔다.

그분들이 정성스레 포장한 네팔 전통 모자를 선물로 가져왔는데,

회장님은 “오, 고맙네!”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모자를 쓰셨다.

그 모양이 꼭 중국집 주방장 모자처럼 생긴 거다.


직원들은 눈을 마주치면 터질 것 같아서 서로 눈을 피했고,

나는 서류를 들고 허리를 숙인 채 조용히 사라졌다.

웃음이 올라오는데, 웃을 수도 없고 정말 혼났다.

더 놀라운 건, 회장님이 잠깐 썼다 벗은게 아니라

바이어들이 회사에 머무는 내내 그 모자를 쓰고 다니셨다는 거다.


회의 자리에서도, 식사 중에도, 심지어 사무실 복도에서도 그 모자 그대로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셨던지, 다들 웃음 참느라 혼이 났다.

하지만 그 속엔 회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상대국 문화를 존중하고, ‘당신의 선물을 진심으로 받았다’는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거니까.

웃기면서도 왠지 찡했던 그 장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고구마 사건


또 하나의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회사에 에어프라이기가 선물로 들어와서 시험 삼아 고구마를 구워드렸는데,

그게 그렇게 인생 간식이 될 줄은 몰랐다.


회장님과 임원 어르신들이 “이거 진짜 맛있다~!” 하시며 너무 좋아하셨고,

다음 날 회장님이 고구마를 박스째로 사 오셨다.

그날 이후 매일 오후가 되면 들려오는 단골 멘트.

“권양아~ 고구마 없냐?”


그때부터 내 하루 루틴에 ‘고구마 굽기’가 추가됐다.

고구마 사오랴, 씻고 굽고, 내어드리고, 접시 치우고 뒷정리까지…

처음엔 귀엽고 뿌듯했는데, 나중엔 솔직히 힘들기도 하고.. 내 인생 고구마 굽다 끝나겠네.. 하며 현타가 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뭐 별수 있나.

세상에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정도로 스트레스 받지 말자 하고 나 자신을 계속 달래가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어르신들이 고구마를 호호 불어 먹으며 “맛있어~” 하시는 모습이 나름 귀엽기도도 했으니까~


가끔은 어떤 임원분이 “김치 없냐?” 하시며 은근히 김치를 사오라는 부담을 주실때면,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도 있었지만..

그저 속으로 '여긴 사무실입니다!!'라고 혼자 외치며, 그분께만 좀더 작은 고구마를 드리는 등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엔 분명 고생스러웠는데, 이제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이 다 추억이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웃픈’ 장면들이었다.

KakaoTalk_20251031_093948513.jpg 문제의 에어프라이기


이처럼 회장실에서의 하루는 매번 예측 불가였다.

작은 이름 하나, 작은 모자 하나, 작은 간식 하나에도

웃음과 긴장, 분노가 함께 섞여 있었고,

실수도 많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배우고, 웃고, 울며 또 단단해졌다.

회장실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웃프지만 소중한 생존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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