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애 6시간전

괄호 안의 답은 (김미애)였다.

《미애의 사유》2024.11.25.

나는 내가 늘 궁금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나는 (      )다.

그동안 이 괄호 안에 얼마나 많은 수식어를 바꿔 왔을까. 불안정한 나를 느낄 때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며, 그렇게 흔들리는 나를 잡아두곤 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니까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고. 수없이 다그쳐왔다.


하지만 그렇게 쓰인 괄호 안의 답은 시험지에 잘못 쓰인 오답처럼 지워지고 다시 쓰이기를 반복했다. 고쳐 적은 답은 새로운 나를 만날 때마다 또다시 나를  흔들어놨다. 시험지의 답을 고칠 때마다 '이 답이 맞나?' 하는 마음망설이듯이, 어쩌면 '이전의 답이 원래의 내가 아닐까'하는 마음은 기다렸다는 듯이치고 올라왔다.


한동안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우주를 걸으며, 스스로도 놀랄 만큼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낯섦이 불안이 아니라 재미로 느껴졌고, 자꾸자꾸 살고 싶어 졌다. 그렇게 주가 지나자 나는 왠지 모르게 기운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우울이나 무기력까지는 아니지만, 아래로 아래로 다운되는 내가 되었다. 혹시 이게 원래 나의 무드인 걸까? 그렇게 다시 발견한 나는 이전에 적은 답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살고 싶다느니 재미있다느니 하는 나는 오답이 아니었을까? 우울과 불안사이 어디쯤을 서성이는 내가 정답인 걸까.


아니다. 나라는 우주의 공간은 무한하고, 그 안의 별은 다양하다. 그저 우주에 수만은 별들 가운데 하나 둘을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것일 뿐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시공간에서의 내가 있고, 차분하고 조용한 시공간에서의 나도 있는 것이다. 우주를 걷기로 한 후부터는 새로운 내가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다. 적어도 그 낯섦이 불안하지는 않다.


미래의 진짜 나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온 원래의 나도 없다. 그저,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있을 뿐이다. 이제 내가 사색하는 이유는, 진짜 나를 찾기 위함이 아니다. (괄호) 안의 답을 찾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괄호 안의 답



나는 (          )다.

평생을 찾아 헤맨 질문,

그리고 매번 고쳐 적은 답.


원래의 나는 없다.

내가 나라는 우주를 걷는 건,

진짜 나를  찾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 여기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나는 (           )다.

(괄호) 안의 답은 김미애였다.




2024.11.25. 김미애.

작가의 이전글 시(詩)의 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