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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Dec 11. 2023

나의 내러티브

with 인어공주

   

  들어가며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동화 속에 들어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노제운. 2004). 1913년 프로이트가 저술한 「The Occurrence in Dreams of Material from Fairy Tales」에 의하면, 성인기에 꾸는 꿈 중의 많은 부분은 어린 시절 인상적인 흔적으로 남아있는 전래동화의 한 장면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예술작품의 본질적 의미는 작품을 창조한 작가의 무의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 떠오르는 이미지, 생각 등은 작가의 무의식에 접속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하였다. 

  나의 첫 책을 기억하고 그 기억에 공유된 감정을 그리워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작가의 무의식으로 접속함과 동시에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3차원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그동안 강의에서 짧게 소개한 나의 첫 그림책 ‘인어공주’를 글로 소개한다는 것에 부담은 있지만,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듯이 생생하게 남기고 싶다.       


  1. 인어공주를 만나다     

  6살, 엄마의 어깨너머로 눈치껏 익힌 한글은 꽤 쓸모가 있었다. 엄마에게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시작되었던 한글 읽기는 내 삶을 풀어내는 시작이었으며 나를 세우는 도구가 되었다. 읽기를 시작하고 갇혔던 울타리를 나온 염소들이 풀을 뜯듯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책을 읽어나갔다. 책에 빠져 배고픔도 슬픔도 잊었던 것 같다. 

  동화를 읽는 과정이 내게 그러했다.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발산되는 그것, 화산이 폭발해 버리는 것과 같은 감정들이 분화구를 통해 터져 나왔다. 그때 누가 나에게 책을 주었는지, 집에 어떤 책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책의 내용과 책을 읽으며 경험한 감정들만이 남아있다. 올망졸망 4남매가 있었지만 넉넉하지 못했던 경제적 상황과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은 책보다는 4남매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것에 만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화를 읽고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집과 가족에 대한 나의 감정들-무서움, 두려움, 소외된 존재감-을 인식하게 했다. ‘헨젤과 그레텔’을 읽으며 정체 모를 거대한 공포감이 나를 덮쳐 두 번 다시 읽지 못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엄마와 형제에 대한 감정을 자각하게 했다. 엄마를 따라 같이 가고 있고 엄마로부터 양육을 받지만 외로운 마음, 형제들이 자꾸만 나와 달라 보여 같아지고 싶었던 마음을 고스란히 자각하면서 외로움이 깊어졌다. 

  아동 문학가들은 ‘아동이 동화에 대한 흥미와 그 속에 담긴 환상을 통해 무의식적 억압에 대응하고 이를 극복하는 독립적인 대처능력을 기르게 되는데,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보면 아동들이 동화를 읽으면서 주인공의 상황과 사건에 몰입하는 과정은 무의식적 동일시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자 출구가 된다’고 하였다(노제운 2004). 일곱 살 전후의 나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억압하고 회피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사실인지, 환상인지 구분되기도 어려운 50여 년 전의 풍경이다. 마당 수돗가에서, 어머니는 빨래를 하는지, 배추를 씻는지, 집안일을 하고 계신다. 다른 형제들은 보이지 않는다. 햇살은 따뜻했고 조용했다. 품에 동화책을 안고 엄마에게 다가간 나는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 인어공주가 죽었어, 물방울이 되었어.”

  “......”

  “내가 커서 안데르센을 만나 부탁을 해야겠어. 왕자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안데르센은 죽었어.”

 나의 눈물은 더 많이 흐르고 목소리는 더 커졌다. 

  “아니야. 안 돼.”

  “저리 가, 힘들어 죽겠구만, 왜 귀찮게. 그건 동화야.”

  “안 돼. 그럼 내가 동화작가가 돼서 이야기를 바꿀 거야.”

  “......”

  엄마는 마당으로 빗줄기처럼 시원하게 커다란 대야의 물을 부었고 깜짝 놀란 나는 마루로 도망쳤다. 안데르센에 대한 분노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바꾸겠다는 결심도 찬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인어공주’는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다른 책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주었다. 동화를 읽으며 공주가 살아가는 삶에 가슴 조여야 했고 입으로 내뱉지 못하고 눈으로 말하며 알아주기를 바라는 답답한 나를 만나야 했으며, 마치 내 발끝을 송곳으로 찌르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물방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동화의 마지막을 본 순간 나는 절망했다. 많이 울었고 그 뒤로 다른 동화를 읽지 않았던 것 같다.     


  2. 안데르센과 인어공주     

  잘 알려진 것처럼 인어공주의 저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년~1875년)이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문학과 연극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불우한 삶을 견뎌낸다. 그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 했지만 시인으로 동화작가로 성장한다.  

  오늘날까지 동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두 인물은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이라 할 수 있다. 그림형제가 민담과 설화를 연구하고 채록하여 동화로 탄생시킨 것과 달리 안데르센은 순수 창작으로서의 동화를 정착시켰다. 그의 동화는 안데르센 자신의 삶을 동화로 녹여냈다고 평가받는다. ‘성냥팔이 소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것으로, ‘인어공주’는 자신의 실연 경험이 이야기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평생을 혼자 살았던 안데르센은 늘 사랑을 그리워했고 결혼을 꿈꾸었다.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대개 소외된 사람들로 그들이 받는 고난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풀어나간다. 

  안데르센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계급이 낮은 출신으로서의 열등감, 못생긴 외모로 갖는 수줍음, 배우지 못함으로 인한 수치감 등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행을 다닐 때면 여권을 잃을까 불안해하고 호텔에서 불이 날까 밧줄을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강박적인 성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런 안데르센의 삶에서 그가 사랑했던 경험은 ‘인어공주’로 ‘나이팅게일’로 우리에게 그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런 작가의 무의식이 책을 읽는 나에게 감정으로 이미지로 접속하게 된다. 

  안데르센은 아동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그의 동화를 아동에 국한시킬 수는 없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자신의 동상에 아이들 동상을 함께 세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평생 어떤 아이도 무릎에 앉혀 보지 않은 사람이다. 내 동화는 아   이들과 함께 성인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은 내 동화의 줄거리를 보고 즐   거워한다. 인생을 살아본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동화 속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3. 인어공주가 안내하는 나의 내러티브     

  ‘인어공주는 아버지와 여섯 자매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동화 이야기에 인어공주가 아버지와 언니들과 행복했다는 대목에 어머니는 없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궁금해했을 텐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린 나의 무의식은 아버지만 있으면 엄마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내 인생에서 제외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말부부였던 부모님은 함께 있는 주말이면 늘 싸웠다. 한 주도 조용히 지나간 날이 없을 만큼 매 주가 전쟁이었다. 어린 나는 주말마다 집으로 오는 아버지를 기다렸었다.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는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인생책이라 말하는 것에는 어머니를 제외시킨 나의 무의식이 보인다. 나를 만들었으며 나를 낳아준 엄마이지만 끝없이 화내고 반항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어공주가 15살 생일이 되어, 물 밖으로 나가게 될 때까지 인어공주는 행복했고 평온했다. 인어공주가 물 밖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왕자였으며 한눈에 반해버렸다. 인어공주는 오로지 왕자 옆에 있고 싶어 했고 그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 호기심 많고 밝았던 인어공주의 삶이 왕자를 만나게 되면서 한 순간에 바뀌게 된다. 

  내 삶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부분은 7살 때인데 그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사람들은 남동생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고 잘생긴 외모를 칭찬했으며 존재만으로도 행복감을 주었다. 그동안 딸만 셋이었던 집안에 남동생은 태어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자라오면서 ‘아들인 줄 알았더니 딸이어서 실망했다’고 무수히 듣던 이야기들의 실체를 그 순간 보게 되었다. 5대 독자인 남동생 곁에는 할머니가 지키고 있어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동생의 성기를 자랑스럽게 내놓고 닦아주면서 나를 돌아보던 할머니의 모습, 내 슬픔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막연했던 나의 감정. 그 슬픔을 ‘인어공주’를 통해 확인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서 젠더로서 남자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밤이 늦었지만 인어공주는 그 배에서, 혹은 잘생긴 왕자에게서 떨어져 나올 수가 없었다.’     

 

  안데르센은 ‘인어공주’에서 왕자가 공주가 자신을 구한 것을 알지 못하고 결국 공주를 버리는 스토리를 구성하여 기존의 공주이야기와는 다른 반전을 선사했다. 그것은 안데르센이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카타르시스적 글쓰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경험을 제공했다. 첫눈에 왕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사랑을 얻고자 목숨까지 바치고자 한 공주는 남자가 되고 싶었던 내 마음이 동일시된 것이며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는 절망감을 경험한 것이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너는 남자가 될 수 없어.’

  동화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부분은 공주가 목소리를 잃고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타의에 의한 것만 같아 화가 났으며 내가 경험하는 고통이 감정이입 되었다. 3녀 1남 중 둘째 딸은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 존재하나 아무도 그 존재에 관심이 없는 시간, 그래서 항상 소리를 내야 했다. ‘나 여기 있다고, 나 아프다고.’ 그런데 인어공주는 말을 하지 않고 견디어 낸다. 책을 읽으며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인어공주는 언니들이 머리카락을 주고 구해온 칼을 버리고 물거품을 선택한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었을 때 나의 슬픔은 매우 격렬해졌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는 내 모습을 본 어머니와 언니는 어리석다는 듯이 비난했고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세상을 다 산 것과 같은 슬픔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 시간의 슬픔을 표현한다면 이러하다.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네 삶은 변하지 않는다. 시작을 위해 끝내야 한다.’ 어린 나는 그 슬픔의 무게를 정확히 몰랐겠지만 눈물로 감정으로 동요했다. 처음 경험한 큰 슬픔이었고 남자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었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자로서 경험할 큰 삶의 무게에 대한 짓눌림이었던 것이다.    


  나가며

  ‘나의 첫 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내러티브를 풀어보았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나에게 어떠한 감정들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감정을 통하여 자기 인식의 확장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억들이 지금 나에게 어떠한 생각과 느낌으로 남아 있는지를 이해하면서 다시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예술작품의 정신분석적 가치를 예술가들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이해를 통해 자기 인식의 확장에 기여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이창재 외, 2010). 아동기의 책 읽기 경험이 50년 후에 만들어낸 자기 인식의 확장을 경험하듯 한 권 한 권 내 삶에 들여놓은 책들과 소중한 경험을 해 나가야 한다. 

  ‘인어공주’ 이후로 공주이야기에 흥미를 가져본 기억이 없다. 문화의 콘텐츠로서 영화나 뮤지컬로 만들어진 스토리를 보면 흥미롭게 보기는 하지만 그때 만난 인어공주와 만남의 감동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의식적 보고를 탐사한다. 문학과 소통하면서, 예술가들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다시 이야기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경험하는 나의 무의식들을 만나며 나의 내면세계를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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